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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도서]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한밤의 기도


-김행숙


지금 내 어머니의 입술은 끓는 물 같습니다.


기도 중입니다. 불쌍한 여인이 불쌍한 여인을 이기는 중입니다. 작은 몸 안에 교회를 짓는 중입니다.


예배당 밖에서 나는 붉게 언 손을 비비며 어머니를 기다리다가……우리 동네의 미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는 달아났습니다.


그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은 일찍이 하얗게 타버렸습니다. 그에게 나는 십 년 전에 가출한 계집애로 보입니다. 내가 아부지다, 내가 니 아부지다, 괴성을 지르며 쫓아왔습니다.


겨울밤에 우우우 버림받은 짐승처럼 울부짖었습니다.


돈을 받지 못하거나 이제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듣거나. 내일의 알 수 없음으로 불안해질 때 기도를 합니다. 친구 따라 간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그날의 기도를 올리고 식당으로 들어가 밥을 먹었습니다. 그때가 제일 좋았습니다. 식판에 밥을 가득 담아 달라고 미역국을 더 달라고 말하지는 못했고 주는 대로 먹고 나오는 일요일 아침. 집에 전화가 없어 엄마가 연락을 줄 수 없어 교회로 전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잠깐 방에 들어가 전화를 받게 해달라고 말해야 했는데 그 말을 못 했습니다. 엄마는 하염없이 전화를 걸었다고 나중에 말했습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언제 만날지 몰라요. 만나는 건 확실해요. 미안한데 사랑한다고 말해야겠어요. 기도합니다.


열대야

-김행숙


한밤중에 지구는 미끄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중력은 썰매처럼 차들을 끌고 어디론가 마구마구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술과 침에 젖은 승객은 3일 중에 가장 깊은 잠에 빠지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기사는 앞만 보고 있습니다

앞에 뭐가 있길래?

밤 속의 밤 속의 밤 속의 밤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다가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왔습니다

나는 어떤 생물인가? 방충망 앞에서 독백을 시작하는 나는

방충망의 구멍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나는

날아가지 못하는 나는

작은 구멍을 들락날락하는 날벌레들에 대해

꾹 닫은 입에 대해

곡기를 끊고

7일 후 공기를 끊은 입에 대해


너는 중요한 것을 택시에 두고 내릴 거야

다음 날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시작되었다가고 중얼거리기……

끓어오르기……


달걀을 삶는 밤입니다. 삶은 달걀이니까요. 풋. 마트에서 보내오는 광고 알림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달걀 한 판에 2.990원.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삶기 시작합니다. 긴 낮잠을 자고 깨어나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여름에는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더운 척 연기하면서 리모컨을 찾는 하루였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야 해서 외출은 자제했습니다. 도시에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서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늘어가는 밤. 스티븐 킹을 읽었고 텔레비전을 샀습니다. 나의 밤에 가벼운 환희가 깃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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