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부지런한 사랑

[eBook]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대학을 졸업하고 논술 교사로 일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무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왕복 두 시간이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지방에서 두 시간은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출퇴근 시간이다. 이동 시간만 두 시간이지 일어나서 씻고 김밥 한 줄을 사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을 더 하면, 휴. 어쩔 때는 가기 싫어서 울기도 했다. 월급은 90만 원이었는데 그중에 차비로 30만 원이 깨졌다.


프랜차이즈 논술 학원이었다. 책 한 권을 읽고 교재를 풀어 나가는 식이었다. 책의 내용과 느낌을 묻고 주제에 맞춰 글을 써 내면 끝나는 얇은 교재로 가르쳤다. 훌륭한 교사는 아니었다. 훌륭해야 하는데 나는 학원의 문을 열기 전에 지쳐 버렸다. 차 멀미를 느끼며 뱃속으로 김밥을 욱여넣느라 땀이 났다. 구두를 신고 뛰어오느라 숨도 찼다. 원장은 학부모들 눈이 있으니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장과 구두를 강요했다.


『부지런한 사랑』은 글쓰기 교사로 일했던 이슬아의 몇 년간의 시간을 다룬다. 글 속에 이슬아는 내가 가지지 못했던 글쓰기 교사로서의 훌륭함과 다감함, 세심함을 가지고 있는 교사였다. 카페 알바와 누드모델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게 여의치 않은 이슬아는 전단지를 붙여 글쓰기 수업을 받을 학생을 모집한다. 두 살 터울의 형제를 첫 고객으로 모셨는데 강력한 포스를 가진 형제님들이었다.


서울에서 여수로 KTX를 타고 왕복 여덟 시간이 소요되는 글방의 교사로도 일했다. 여수 글방에서 만난 아이들의 글이 『부지런한 사랑』 안에 담겨 있다. 원고지에 쓴 아이들의 글. 때론 놀랍고 신기롭기까지 한 시선에서 쓰인 글. 글쓰기 보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이 더 즐거웠겠지만 아이들은 글을 써야 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네모 칸의 자신의 마음을 담는다. 스물다섯 살의 이슬아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역시 그들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열두 살 김시후는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면 종종 내가 좋아진다는 말을 한다. 열두 살의 그 아이는 알까. 나이를 먹으면 자주 내가 싫어진다는 것을.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느라 시간을 다 허비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열두 살의 시후에게 글쓰기가 종종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어서 일면식도 없는 내가 다행으로 느낀다는 것을. 『부지런한 사랑』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슬아와 함께 했던 어른들의 글쓰기의 장면도 포착되어 있다.


장비빨을 내세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문구점에 가서 연필과 연습장을 사는 일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 돈이 들지 않는 일 중에서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일. 응미, 응숙 자매님의 말처럼 '녹슨 몸을 실감하지 않고도 배워볼 수 있는' 일은 글쓰기. 책을 한 권씩 읽고 느낌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뭐라도 쓰겠다는 심정으로 리뷰를 쓴다. 문장을 잘 쓰겠다는 주제를 완벽하게 끌어내겠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버렸다. 그저 나를 위한 일로써, 쓴다.


글을 쓰고 나면 조금 괜찮아진다. 성취라는 보이지 않는 업적을 쌓은 것 같아서. 재능보다는 꾸준함으로 매일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서. 학원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문예지를 읽었다. 괜찮은 문장이 나오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막상 아이들을 보면 문장은 머릿속에서 휘발되었다. 겨우 찾아낸 문장을 들려주어도 아이들은 심드렁했다. 오해가 생겼고 그 오해를 풀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잊고 싶었던 시간이었는데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며 차라락 떠올랐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글을 쓰는 나 자신으로 그래서 내가 좀 더 좋아지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기회를 찾아 도전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누가 불러 주지 않아도 누가 알아 주지 않아도 나의 시간을 쓰고 싶다. 용기 있는 자들이 써 내는 글을 읽으며 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적힌 글을 읽는 배움의 자세로 말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