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노인 하나가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주춧돌만 남기고 나무로 된 부분은 모조리 타버려서 형체만 간신히 남은 상태였다. 이후 복원작업을 거쳤을 때, 최대한 전통기법을 썼지만 현대에 만들어진 자재들이 섞여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도 숭례문을 보면 그을음 자국이 남아 있는 예전의 돌들과 새로 끼워넣은 돌들이 눈으로도 확연히 구분된다. 그럼 복원된 숭례문은 국보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테세우스의 배'라는 유명한 철학적 딜레마 문제가 이런 내용을 다룬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었던 테세우스가 모험을 할 때 타고 다닌 배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수공사를 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자 새로운 자재로 부품을 교체한다. 그런 행위가 계속 반복되어 나중에는 배 전체가 현대에 만들어진 부품으로 채워져 버렸다.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배라고 봐야 할까?
사라 게일리의 '일회용 아내'는 스릴러에 가까운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동시에 이런 철학적인 딜레마에 관한 부분을 건드린다. 과학자 남편은 항상 일에만 파묻혀 사는 과학자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와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고, 대신 가정적인 역할만 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본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을 건설하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아내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까? 나를 사랑했다고 봐야 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고 봐야 할지 의문스런 상황이다. 그러다가 복제인간의 연락을 받은 아내는 놀라운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언뜻 전형적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뒤집어진다.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내면 묘사에 지나치게 비중을 할애해서 지루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일회용 아내'는 그걸 뛰어넘는 사건 전개에 중심을 둔다. 내 자리를 빼앗은 복제인간의 위치가 사건 진행에 따라 엄청나게 바뀌게 된다. 그렇게 속도감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SF적 소재를 다루지만 과학적 설명에는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다. 억지로 원리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렇게 된다.'정도로만 쓰일 뿐이다. 오히려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을 쓰니 불덩이가 날아갔다' 정도의 쓰임새다. 과학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이어도 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다.
복제인간을 만들어서 아내를 대체하겠다는 발상을 한 남편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아내는? 참고로 진정한 반전은 맨 마지막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에 숨겨져 있다. 이야기와 인물 구조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한번에 이해가 간다. 단순한 여담이 아니라 소설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느낌이다. 마지막까지 느껴지는 반전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