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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퇴화한다.

둔해진다.

허술해진다.

산뜻하지 못해진다.

어리석어진다.

외로움을 탄다.

동정받고 싶어 한다.

구두쇠가 된다.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하게 된다.

그런 주제에 "난 호기심이 많으니까 평생 젊은이지"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젊으시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손주 자랑에 병 자랑에 건강 자랑.

이것이 이 세상 할아버지, 할머니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멀리하려는 기세와 노력이 나이를 잘 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 생각하는 나는 올해 일흔여덟 살이 되었다. 육십 대에 들어서면 남자든 여자든 절대 제 나이로 보여서는 안 된다.

;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듯. 그러나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이런 부분들에 동의하게 된다.

p15

 "그러니 사람은 퇴화할수록 외모에 공을 들이는 수밖에 없죠. 퇴화를 막을 수 있는 건 운동과 식사, 그리고 외모 가꾸기라고 생각해요."

.....

 "'저는 나이를 잊고 살아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사람, 종종 있잖아요? 박장대소할 말이죠. 나이는 본인이 잊는 게 아니라 남들이 잊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실제로 "사람은 내면이야"라고 말하는 여자일수록 이런 흔해빠진 소리를 하고 싶어한다.

 ; 그래도 나는 사람은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외모에 공을 들이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를 테고.

p23

 "어울린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늘 생각해. 남이 그렇게 말하는 건 인사치레니까 결국은 스스로 정하는 거지."

 "그거야, 그거. 본인이 어울린다고 정해봤자 옆에서 보면 '딱한 할머니'로밖에 안 보이니까."

p25

 돈이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정말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노인은 어째서 돈이 없는가? 저금을 하기 때문이다. 연금을 변통하고 생활비를 절약해서 '노후를 위해'저금하기 때문이다. 나 원, 지금이 노후잖아. 젊을 때 절약해서 모아둔 돈은 지금이 쓸 때잖아. 여든이 코앞인데 장래의 '노후'에 뭐가 있다는 거야. 장례식밖에 없을 텐데.

 p33

 움직이지 못하는 나는 매일 병실 천장과 벽을 바라봤는데, 어째서인지 "의연하게 산다"는 말만 떠올랐다. 살아 있으면 누구나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이와조와 나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다.

p43

 '하나야, 실제로 일어나면 곤란한 일은 입에 담는 게 아니야. 옛날부터 일본에는 언령이라는 게 있어서 입 밖에 내면 진짜 그렇게 되거든. 말의 혼이 그렇게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일어나면 곤란한 일은 속으로는 생각해도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돼."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탓인지 '언령'은 내 안에 물들어 있다. 당연히 요즘 유행하는 엔딩노트인지 뭔지 하는 유서도 쓸 마음 없다. 내가 죽은 뒤의 일을 살아 있을 때 적으면 언령대로 된다. 게다가 그런 걸 준비하면 살아갈 의욕이 꺾일 뿐이다. 죽음 준비는 좋지 않다. 이건 이와조에게도 단호하게 말해서 굳건히 지키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죽은 뒤의 일 같은 건 알 수 없다. 옥신각신 싸우든, 사이가 아예 틀어지든 살아 있는 자의 문제다. 애초에 살아 있는 인간이 사후의 일까지 지시하는 자세가 나와 맞지 않는다.

 "나도 당신한테 교육받아서 유서 같은 걸 쓸 마음은 없어. 소동이 일어날 만한 재산도 없고 말이야. 하지만 연명 치료만은 하지 마."

 p53

 ...노인은 그래야 할 때 물러난다. 그래야 할 때 자연스럽게 죽는다. 이게 품격이야.

p105

...싫은 일은 안 해도 용서받는 나이가 되었구나,...

......

......

 "그야 지금까지도 좋을 대로 살아왔지. 하지만 의사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욱 좋을 대로 살아주마 생각하게 돼. 손가락이 열 개 다 굽지 않았을 때, 귀가 들릴 때, 다리가 움직일 때....하고 말이야."

p127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것은 사라진 본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겨진 자의 문제다.

 남겨진 자는 사라진 상대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처음 만난 날부터 죽을 때까지의 웃는 얼굴과 화난 얼굴과 했던 말......귀여운 데가 있었지, 좋은 사람이 었지. 이때는, 그때는....

 먼저 사라지는 자는 행복하다.

 p135

...노인은 조류를 읽어야 한다. 호의에 기대면 처음에는 좋아도 반드시 '언제까지 있을 작정이야, 망할 할망구' 하고 속으로 외치는 날이 온다. 외모를 가꾸는 여자는 망할 할망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라도 썰물 때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때 그 조류를 탈 용기가 없는 할배, 할매는 민폐를 끼치는 존재다.

p145

 인도네시아의 평균 수명은 분명 예순아홉 살이라고 했다. 남자가 정말로 백마흔다섯 살이라면 칠십육 년이나 '여생'을 소화해온 셈이다. 현역이라는 느낌 없이, 생산적ㄹ인 일을 기대받지도 못하고 책임도 없다. 그런 예외적인 틀 안에서 살아있는 것이 여생일 테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계속한다. '적당한 시점에 죽고 싶다'고 바라는 건 당연하다.

 사람은 질린다. 여행에도 취미에도 연애에도, 그리고 살아가는 데도, 나는 이제 쫓아가고 싶은 것도 없고, 쫓기는 일도 없고, 의무도 의욕도 없다. 죽기에 적당한 시기다. 할 일도 없고, 이와조도 없고, 질리기 시작했으니 슬슬 떠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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