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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0

 한 사람이 사라져도 당연하게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누가 빠지든 세상은 변함없이 움직일 힘을 갖추고 있다.

 ....

 어차피 잊힌다면 화려한 일주일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와조를 잃은 뒤로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졌다. 이 세상에 어떤 미련도 집착도 없다. 하지만 남들은 죽은 사람 따위 그냘 안에 잊는다.......

 "하나는 내 보석", "하나는 내 자랑", "하나랑 결혼한 게 인생에서 가장 좋았어"라고 말했던 반쪽의 남편에게 반쪽의 부인이 주는 답례다.

  p216

 이웃 관계에서는 균형을 잘 잡아 치장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입고 싶은 걸 입어야 해. 남을 위해 멋 부리는 게 아니야"라고 나잇살 먹고도 자랑인 양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얕은 생각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는 옅은 화장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해야 할 것은 다 하고 밖으로 나갔다. 걸으면서 다시 사십 년이나 날 속였던 이와조를 생각한다. 첩을 생각한다. 그러자 몸이 무거워졌다. 이 정도로 멍청이 취급을 받은 아내건만 몸의 절반이 없어진 느낌은 강렬했다. 이 상실감은 첩에게는 없겠지. 이 느낌은 아내만의 것이다. 

p221

 남자든 여자든,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표리가 있다. 결국 답은 여기로 다다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표면밖에 보이지 않지만, 비치지 않는 이면이 있다. 하지만 비치고 있는 평면만이 전부라고 믿는 부부나 부모 자식도 있겠지. 그건 행복이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 이면을 알아봤자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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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자식을 먼저 보내거나 남편이나 자식이 범죄자가 되는 등 나보다 더 괴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괴로워하면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 한다. 이미 죽어버린 옛 남편한테 첩이 있었던 것쯤이야 웃어넘기면 된다. 나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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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조에 대한 복수는 내가 이 일을 가볍게 극복해서 떠올리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어딘가에서 이와조 이야기가 나온다면 아무런 힘도 주지 않고 "좋은 남편에 좋은 아버지였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거다.

 그리고 '의연하게 사는 '거다. 이만한 복수는 없다. 첩과 만나 서로에게 욕을 퍼붓는 촌스러운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p229

 젊은 시절 사회의 제일선에서 일했던 어느 누구라도, 중요한 지위에 있었던 어느 누구라도, 마지막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들은 적이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거라고 한다. 곧 죽을 몸인 인간에게 무엇보다 아까운 것은 괴로워하는 시간이다.

p285

 앞날이 없으니까, 곧 죽을 거니까, 바로 그래서 '어리석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다. 곧 죽을 거니까 끝까지 위장하고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알고는 있다.

 p318

 사람의 일생이란 얼마나 짧으며, 사람의 목숨이란 얼만 앞날을 알 수 없는 것인가.

 그 안에서 뭐가 일어나든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얀 상자에 들어간다는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 그 도중에 고민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아등바등하고, 허둥지둥해봤자 대단한 차이는 없다. 노인이건 젊은이건, 살아 있는 사람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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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사람들이 차례로 없어진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도 매일같이 유명인의 부고가 나온다. 대부분 팔십 대다. 나보다 다소 나이가 많아도 큰 차이는 없다. 그때마다 '뭣! 거짓말! 이 사람도 죽었어?'하고 생각한다.

 일흔여덟 살은 아직 젊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친구와 지인, 육친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고자 하는 힘은 적어도 육십 대 때와 똑같이는 솟아나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런 이야기를 싫어할 테니 입 밖에는 내지 않는다. 하지만 체력과 기력은 해마다 떨어진다.

 그래도 여든여덟 삶이 되면 일흔여덟 살이 되면 일흔여덟 살 때는 젊었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 예순 살 때 마흔이었던 나는 얼마나 젊었나 생각했다. 그리고 스무 살 때는 내가 마흔 살이 되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p330

 나이를 먹고 알았다. 사람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 있다. 나이와 함께 그 일은 줄어든다. 해가 갈수록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서른 여섯과 서른 일곱은 다르다. 서른여덟이 되면 더욱 다르다. 예순에서 일흔이 되는 것과 일흔에서 여든이 되는 것도 다르겠지. 여든에서 아흔이 되는 건 더욱 다를지도 모른다.

 이치고만 해도 아직 쉰 살이나 빛을 보고 있다. 그런 이치고를 유미가 내심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본인이 마흔다섯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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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인생에 대해 타인은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죠. 기본적으로 무관심하다고요. 그걸 깨닫는 건 앞으로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칠 거예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와조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 자기가 결정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니 두 개의 가정을 가진다는 것도 스스로 결정한 거예요"라고도 말했다.

p343

 '노인한테 언제까지고 주도권이 있는 게 아니다. 매달리지 마라. 적당한 데서 젊은이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게 노인의 품격이다'....

p347

 지당한 말이다. 부모 자식이라도, 가족이라도 타인이다. 사람은 각자의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 모두 타인이다. 이건 냉혹한 게 아니다. 이 출발선에서 따뜻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겠지.

 p356

 "...그만두기 위해 힘을 줘서 필사적으로 결단해야 한다면 아직 그만둘 때가 아닌 거야. 그만둘 때가 되면 말이지, 힘 들이지 않아도 가볍게 '관둘래!'하게 되거든."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단풍은 약한 바람에 뒷면과 앞면을 보이며 떨어진다. 그리 되지 않는 건 젊기 때문이다. 나는 첩의 존재를 이 나이가 되어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가볍게 이와조를 잊을 수 있었다.

 p360

 어차피 곧 죽는다고 해도 분명 아직 살아 있다. 게다가 '쇠퇴'를 수용한 경지에 도달해봤자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경지에 도달할 필요도 없었던 걸까? 하지만 숨만 쉬며 하얀 상자를 기다릴 수는 없다. 앞날은 길다. 앞날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 '쇠퇴'의 수용에 도달한 나는 흔한 늙은이와는 다르다. 뭔가 남을 위한, 사회를 위한 일을 해야겠지. 병원 자원봉사, 돌봄 자원봉사는 내 쪽이 신세를 질 것 같다.

 p385

 '니글렉트'는 일본에서 '육아 방치'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지만, '셀프 니글렉트'란 요컨대 본인이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이다.

 자기 방치 경향이 있는 고령자들은 그렇지 않은 고령자를 뒤에서 욕한다. 실제로 나는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런 말을 들었다.

 "잘도 저러네.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람?"

 "야하게시리. 젊어 보이려고 용쓰는 거 꼴불견이야."

 "저 머리, 분명 가발일걸. 자연스러운 게 최고인데."

 "사람은 내면이야, 내면. 겉모습만 꾸며봤자 들키거든."

 이런 험담에서는 자시느이 정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는 마음과 그들을 향한 일말의 선망이 엿보인다. 이는 그들과 비교하면 자신들이 심각한 노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사람은 내면"이라는 말은 반드시 나온다. 하지만 나는 겉모습을 따라 내면이 변화는 현실을 앞서 말한 모임에서 뼈저리게 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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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젠 나이가 많아서 됐어'나 '나는 멋 부리는 거랑 관게없는 삶이야' 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그것이 겉모습에 드러납니다. 반면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옷차림과 용모를 단정히 하면 그 마음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즉 그 사람의 겉모습으로 '의욕'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젊음이 아닌 아름다움, 그것은 활기차게 사회생활을 할 거라는 의욕의 표명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기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 이런 왕성한 의욕을 가진 사람을 주위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자기 방치의 정반대다.

 고령자가 겉모습을 의식하는 것은 타고난 외모와는 관계 없다. 경제적으로, 또 생활환경적으로 스스로를 꾸밀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해내는 것이야말로 '의식'이 아닐까? 그것이 초래하는 미미한 변신이 사랑갈 기력으로 직결되는 경우도 분명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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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중용한 것은 품격 있는 쇠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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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스스로를 '사랑'함으로써 평소 되는대로 살고 있는 본인의 몸을 의식하게 하여 '치유'를 해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용모를 '꾸밈'으로써 스스로가 사회적 존재라는 자각을 촉구하고, 사회와 대면할 '격려'를 얻습니다. 이는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사적 자의식'과 '공적 자의식'의 촉진입니다.

 

 이 점을 알면 이른바 자기 방치와 '품격 있는 쇠퇴'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라는 면죄부는 게으른 자의 '접시꽃 인롱'이라는 것도,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새겨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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