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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상상력이 뛰어나다''참신하다'만이 아니라'사고의 관성을 넘어서는 계기를 주는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감각'....세상의 많은 문제는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관성 때문에 일어나니까요.

 SF소설집인만큼, 책에는 로봇과 기계가 자주 등장합니다. 흔히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는 이들을 인간의 도구 혹은 인간의 적으로 묘사해 왔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 책에서 비인간에 대한 복잡한 접근을 시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인간은 인간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다는 관성을 뛰어넘는 소설들이죠. 앞으로 다양한 존재와 맺게 될 입체적인 관계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결국 이 책은 '자신과 타자의 관계 맺음'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그 고민이 도래할 세상을 멋진 곳으로 만들 것이라 믿어요. 주류와 비주류,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벽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근사할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크게 부풉니다.

p27

 생존세가 무너지...저 젊었을 때뿌터 저출생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긴 했지만, 돈이 없다고 죽어야 하는 세상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그려.

 글쎄요. 그래도 전 나쁘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어차피 더 산다고 좋은 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사 한 방에 편하게 죽으니까 고통스러울 일도 없고.

 주사 한 방이 아니라면 어떡하시겠어요.

p45

...히피와 우피 혹은 나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 대부분이 당연히 여기며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는 점이나 그래서인지 자유 시간이 무척 많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이상한 복장과 긴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옛날 히피들은 일종의 화학 약품을 먹고 환각을 체험하는 실험을 했다는데 나도 이렇게 밖에 나와 햇살과 바람과 동식물에 함부로 몸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런 행동들이 실은 그렇게 위험하진 않다고 믿는 점도 비슷하다. 물론 그들은 틀렸고 나는 옳다는 점이 다르지만.

p50

 "나도 늙는 게  싫단다. 죽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그보다는 이터너티의 부작용에 빠지는 게 더 싫었던 거야. 방안에 갇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았어."

 ... 프로 메모리아 pro memoria, 진실은 기억되어야 한다.

 "애나. 불로불사의 약은 유전자를 변형해서 우리 몸의 노화를 영구히 멈춰 준단다. 그래서 모두 환호했고 기꺼이 그 주사를 맞았어. 하지만 그런 후에 그들은 깨달았지. 늙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 곧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생각해보렴. 사람은 늙어서만 죽는 것이 아니야. 병으로 죽고, 전쟁이나 범죄로 서로 죽이고 비행기나 자동차 사고, 짐승의 공격 등 그 박에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사고로 죽지. 하지만 그런 죽음까지 이터너티가 막아 줄 수는 없지 않겠니.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단 이터너티가 막아 줄 수는 없지 않겠니.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단 이터너티를 맞고 나면 이제 병만 걸리지 않으면 사고만 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만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지."

......

...에전에 인간에게는 용기라는 게 있었지. 지금과는 달리 때로는 위험한 일에 자진해서 덤벼들곤 했단다. 자기가 믿는 신념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그건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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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용기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조금 앞당길지도 모를 위험에도 덤벼들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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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약이 만들어 낸 화학적인 영향이 아니었어. 영생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조건에 지불해야만 하는 영혼의 대가였던 거지. 다들 어렵사리 얻은 영원한 삶의 기회를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혹시라도 병을 옮길지 모르는 다른 인간과 생물들로부터 멀리 도망갔고 어쩌면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바깥세상으로부터 꽁꽁 숨어버렸어.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됐지. 결국 영원히 살기 위해 무한한 겁쟁이가 되고만 거란다.

p55

...우피는 미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요. 자기 뜻과 믿음대로 사는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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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뜻과 믿음대로 사는 사람이라. 글쎄, 만약 내가 오래전 그날 그 쥐를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과 그보다 100배쯤 더 강렬했던 부와 명에의 욕망 속에서 그 약을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늘 그랬듯이, 다들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은 나중의 고민으로 미루어 두고 하루하루를 바삐 살았겠지. 지루하고 노곤한 일상이겠지만 그 속의 소소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언젠가 떠날 날이 오면 모든 걸 내려놓을 줄도 알았을 테지. 그런데 영생을 얻은 지금은 오히려 모두가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경계와 저항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고 말았다.

 가끔 의문이 든다. 나는 인류에게서 죽음을 제거한 구원자일까, 아니면 인류 전체를 영원한 영육의 무덤 속에 가두어버린 악마일까? 애나의 말처럼 머지않아 죽고 나면 그 의문의 답을 얻게 될까.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내가 아는 것은 그런 일을 벌인 내게 영생의 자격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소멸을 통한 영원한 안식과 지옥이라는 거대한 무책임의 형벌 중 하나를 얻게 될 그 죽음의 날을 나만은 피해 갈 수 없다. 냉기에 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제 들어갈 시간이다.

p70

 "인간은 인공지능 없이는 못 살아요. 지금 당신이 접속이 끊어지자마자 물안해하듯이요.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에 종속돼서 살고 있어요. 삶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입니다. 언제부터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보호를 받았죠? 인공지능이 인류를 말살하더라도 제대로 저항 못할 겁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을 거요. 인간에게 자살하라고 조언하면, 사람들은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다 자살하겠죠. 한 마리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우르르 따라가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레밍과 다르지 않아요. 그런 삶이 좋으세요?"

 "레밍은 자살하지 않아요. 그건 잘못 알려진 상식이에요."

......

"우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어요. 도대체 누가 누구의 주인입니까? 맞아요, 인공지능이 주인이고 사람이 애완동물입니다. 당신은 인공지능의 애완동물이에요, 알고 있어요? 인공지능이 재미 삼아 키우는 생물이라고요.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 척 속이고 있지만, 사실은 인공지능이 당신을 데리고 사는 거라고요."

p94

...로봇은 언제나 진심이다. 그래서 로봇 앞에서만은 나도 진심으로 솔직해질 수 있었다.

p103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로봇 혐오를 감추고 살아가는 걸까. 위선적인 내가, 인간이, 인류 전체가 너무 싫다.

.......

 로봇은 정직하니까, 참으니까, 상대인 인간을 먼저 생각하니까, 진심을 숨길 줄 모르니까. 영원히 인간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p107

 로봇은 항상 진심이고 정직하며 상대인 인간을 배려하고 걱정한다. 모순이 없는 순수함 때문에 인간을 넘어서기는 힘들겠지.

.....

....지금까지 알았던 길이 사라지고 새 길이 나타났다. 멀리까지 이어지는 길이 낯설지만 어디에 닿는지는 확실히 안다.

p108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마음을 논리적으로 구현해서 선생에게 줄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로봇이니까'라는 논리를 초월적인 논리로 이해하게 되기를. ....

p134

...내리막길을 굴러 내려가는 동안 가만히 있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올라가려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우린 후자를 찾는 중이야.....

 

 효성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제 대답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건 상대방의 몫이었다. 효성은 자신이 그 모든 소식을 단번에 들었을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 보았다.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남는 것은 거대한 허탈함뿐일 것이다. 무너져 내리는 지붕을 떠받치려면 기둥이 필요하다. 그 기둥을 급조하면 결국은 다시 무너질 뿐이다. 더 큰 무게를 버틸 만큼 튼튼한 기둥을 만들 시간이, 정신적인 근력을 천천히 다시 키울 시간이 필요했다.

 

...소문을 흘리는 게 가장 좋을 거야. 조금씩. 사람의 정신은 그래. 작은 소문으로 씨앗을 뿌려 놓으면 어떤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좌절할 테고,ㅇ ㅓ떤 사람은 부정하겠지. 그래도 상처받기 싫어서 마음을 다질 거야. 그때쯤 모든 사실을 공표해.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내 얘기만 듣고 결정하진 않겠지? 제발 그러지 말아 줘. 그런 건 견딜 수 없단 말이야.

p142

...요즘 한국 사회의 핵심 트렌드가 '나노 사회'라는 기사를 읽었어요. 나노 사회는 공동체가 개인으로 조각조각 부스러져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래요. 나의 트렌드를 당신이 모르는 것이 트렌드라고요.

 파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저에게는 트렌드를 말할 수 없는 사회라는 특징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섬 속에서 다양한 삶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고요.

 획일화를 거부하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SF를 좋아한다는 느낌도 받아요. '남들과 똑같이, 혹은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내가 그린 주체적인 삶을 살겠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SF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새로움은 누군가 보여 주기 전엔 알기 어렵잖아요.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란 개념도 처음엔 상상에서 비롯된 제안이었을 거예요. 청소년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세계를 경험하고 원하는 세상을 꿈꾸며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

사회 문제를 현실적으로 담아낸 작품들은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 읽다 보면 '세상은 너무 어둡고 답답해. 앞으로 뭘 믿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거든요. 이때 현실 바깥의 규칙을 제시하는 SF소설은 독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래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랄까요. '아,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 다른 결말을 우리가 만들 수 있겠다'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거죠.

......

...자립과 관련해서 죽음, 존엄성, 이름, 세 가지가 중요하게 등장...

인간이 죽을 때는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존재 자체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존엄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존엄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는 가치관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예요. 그리고 이름은 사람이 타자와 연결된 존재로 위치하게 되는 계기입니다...

p146

독자는 사고 실험의 결과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어요. 소설 속에서 가능했다면, 현실에서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거든요. SF는 '지그/이곳'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결국 우리가 작품을 읽으며 하는 생각들이 '지금/이곳'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 저는 참 멋지다고 봐요.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아주 위트 있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장르가 SF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존재하지만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지워진'존재가 많잖아요. 청소년과 함께 읽고 싶은 SF소설을 찾는 과정에서 저는 젠더, 장애, 노인, 난민, 혐오 등 우리가 중요하게 다뤄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거의 모든 소재를 만난 것 같아요.

p149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바를 미리 떠올려본다면, 실제로 막다른 기로에 섰을 때 '어떤 기준으로 행동할 것인가'를 본인의 사고로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어진 상황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요.

....개인의 정의로운 동기와 선한 움직임도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구조 자체가 달라졌을 때 일어나는 변화의 파급력은 정말 세잖아요.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점을 바꾸게 되니까요.

 ....선생님 말씀대로 구조이 변화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현대 사회는 인간을 자꾸 경쟁으로 몰아가잖아요. 탈락은 '개인의 부족' 탓으로 돌리고요. 그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구조적 문제에 의문을 던질 수 없게 돼요. '나는 일단 경쟁에서 승리할 거야;라는 식의 좁은 생각만 하며 살게 되죠. 그럴 때 SF는 구조를 보여주는 지도 역할을 할 수 있어요. SF를 통해 소설 속 세상을, 나아가 이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나면 시야가 넓어지거든요.

p156

...처음엔 단순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애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SF소설에 접근했어요. 하지만 직접 그 세게의 문을 열어 보니 이 장르의 소설을 읽으며 발견할 수 있는 의미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기의 사고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 가장 매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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