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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간의 내부에 잠자고 있는 수성(獸性)을 감금이나 죽음이라는 징벌로 위협해서 억누를 수 있다면, 인간성의 드높은 상징은 자신을 희생하는 설교자가 아니고 채찍을 든 서커스의 조련사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 세기 동안 인간을 동물보다 높이 위로 올려놓은 것은 매가 아니라 음악이란 말입니다. 방비가 없는 진실은 물리칠 수 없다. 그것의 본보기로서의 매력이란 말입니다.

지금까지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계명에 포함되어 잇는 도덕적 격언과 원리라고 생각되어 왔어요. 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일상생활 속에서 이끌어낸 비유의 말, 즉 일상의 빛으로 진실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오. 그 밑바탕에는, 인간 사이의 영적 교류는 불멸한 것이며, 생활의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징적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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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부탁하러 온 닐 표끄찌스또비치가 니콜라이에게 변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전에는 열렬히 투쟁했었는데...국민건강과 사회복지문제에 관심을 두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자연이나 바라보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자기 생각이라고 하는 말.

말하고도 상대에게 감명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다.


어쩌면 그 당시에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제.

자연에 관심을 두었다 한 듯. 지금 신비주의나 문학 음악에 관심을 가진다 한 듯 국민건강이나 사회복지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아닐텐데...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나 보다.

대단한 사상이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있을텐데...

정작 중요한 것은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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