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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날카롭고 재치가 있는지 자넨 알겠지! 그런데 말야, 어째서 그는 대포에 화를 내는 걸까? 대포로부터 변화를 바라다니 얼마나 이상한 요구인가? 왜 대포 대신에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열거와, 똑같은 콤마와, 똑같이 상투적인 문구의 대포를 쏘아대고 있는 자기 자신에 놀라지 않는 것일까. 차라리 그것이 더 낫지 않는가. 어째서 벼룩 뛰듯 성급한 저널리즘의 박애의 포격을 멈추지 않는 걸까? 되풀이를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쏘아 애야 하는 건 대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과, 쓸데없는 소리만 엄청나게 많이 적어 놓은 노트에서는 결코 의미를 얻을 수 없다는 것, 인간이 그 속에 자신의 무엇인가와 인간의 천재를 자유롭게 하는 어떤 부분과 어떠한 이야기를 집어넣지 않느 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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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드란 무엇인가 하고 자네는 묻고 있어. 그것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자기 사업의 아름다움과 장중함 그 자체에 의해 나로드를 끌어들여, 그것을 보편적인 인간으로까지 높이고 그것에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만이 한결 더 나로드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가?
물론 대답은 명백하지. 그리스도 탄생 이후의 시대에서 그 어떤 복수(複數)의 나로드의 존재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어. 이것은 단순한 나로드가 아니라 개종을 하고 변신을 한 나로드이지 않는가. 즉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변신이라는 사실이지 낡아 바진 원칙에 대한 충실함이 아니야. 복음서를 생각해 보게. 이 문제에 대해 그것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지? 첫째로 복음서는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하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아. 그것은 소박하게, 용감성이 없이 제안할 따름이야. 여태까지 없었던 새로운 삶을 바라지 않습니까, 영혼의 행복을 바라지 않습니까 하고 복음서는 제안하고 있어.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몇 천년 동안 그것에 열중해 온 거야.
신의 나라에는 헬라 인도 유대 인도 없다는 복음서의 말은 신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을 분일가? 그렇지 않아, 그것을 위해서라면 복음서는 필요 없었어. 그것은 복음서 이전에, 그리스의 철학자도 로마의 모랄리스트도 구약의 예언자들도 알고 있었던 일이야. 그것이 아니라 복음서가 말한 것은 마음이 생각해 낸 새로운 생활양식, 새로운 양식의 사회에서는, 즉 신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는 나로드가 아니라 개성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어.
자네도 금방 진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무의미하다고 말했어. 진실이 인간에게 의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적 정신이고 개성의 신비야.
우리들은 평범한 정치 평론가들에 대해서도 말을 했어. 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나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해서 해야 할 이야기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류 문인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자들은 좁은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줄곧 그 어떤 나로드, 되도록 조그만 나로드에 대한 것이 화제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지. 그러한 나로드가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 값싼 동정심에 호소하여 논쟁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러한 풍조에 희생되고 있는 완벽한 실례가 실은 유대 인이지. 유대 인은 그 민족적 사상에 의해 몇 세기 동안이나 나로드로서, 나로드로선만 남아 잇어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지워져 온 거야. 그러는 동안에 나머지 온 세계는 일찍이 그 동아리 가운데서 나왔던 새로운 힘에 의해 이 하찮은 과제로부터 벗어나 버린 거야.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엇을까? 이 축제, 평범함의 저주로부터의 이 해방, 단조로운 일상생활의 무지몽매 위에서의 이 비상, 이러한 모든 것은 유대 인들의 땅 위에서 태어났고, 유대 인들의 말로 이야기되었으며 유대 종족에 속해 있었던 것이지. 그들은 그것을 보고 듣고 했으면서도 그것을 놓쳐 버렸다네. 어떻게 그들은 그 같은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힘에 넘친 정신을 자기들로부터 도망쳐 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세계적으로 승리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뒤에도 자기네는 언젠가 내팽개쳤던 이 기적의 껍데기로만 남아 있으면 그만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자진해서 짊어진 이 같은 고난은 누구에게 이익이 있는 것이가, 그처럼 섬세하고 친절과 인정을 아는 사람들, 그 순진한 노인과 아녀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우롱당하고 그만큼의 피를 흘려야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모든 민족의 민족애를 설파하고 있는 문인들이라는 사람들은 어째서 그처럼 게으르고 무능한 것인가?/ 이 나로드의 지적 지도자들이 Weltschmerz(세기고,世紀苦)와 아이러니컬한 예지에 너무나도 쉽게 몸을 맡기고 있는 형식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무엇때문인가? 설령 그 사명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고압 보일러처럼 스스로 폭발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째서 그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고 무엇 때문에 죽음을 당사는지도 모르는 나로드라는 이 부대를 해산시키지 않았던 것일까?<정신을 차려라. 이제 됐다. 충분하다. 옛날처럼 이름을 대지 말라. 한 덩어리로 뭉치지 말고 흩어져라. 모든 사람들과 함ㄲ게 있을 지어다. 그대들은 세계에서 최초로,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도들인 것이다. 그대들 중의 가장 악랄하고 가장 약한 자들이 그대들을 지금의 그대들로 만들어 놓았다>하고 왜 그들은 말하지 않았던 것인가.
;말만하는 저널리즘.
실제와 동떨어진 허구적인 나로드?
유대인 문제...
어쩌면 그들처럼 어리석은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