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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7696144

 

 

 

 

 

 

 

친구들의 청첩장을 받으러 나간 자리에는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프러포즈는 받았어? 어떻게 받았어? 얘기 좀 해봐"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때로는 탄성을 때로는 하트 눈을 반짝이며 마치 내가 그 프러포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상황에 몰입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멋지다", "감동 받았겠다" 고 서로 한마디씩 한 뒤, 결혼 한 친구는 자신의 프러포즈의 순간을, 그리고 아직 싱글인 친구들은 앞으로 받게 될 프러포즈를 꿈꾸며 한동안 저마다 상상에 빠진다.

 

내가 언제부터 프러포즈의 순간을 생각하게 된 건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친구들이 하나 둘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던 것 같다. 제일 먼저 결혼했던 친구는 선상에서 남편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며 프러포즈를 받았다고했고, 그 다음에 결혼했던 친구는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대형 화면을 통해 많은 이들 앞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했다.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여주인공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벌어질 것 같은 일들이 실제 내 옆에서 벌어져 신기하기도 했고, 나는 나중에 과연 어떤 프러포즈를 받게 될지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당시 나도 남자친구가 있었고, 연애도 5년이나 한 때였기에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해도 S는 내게 결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물론 남들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지만 늘 '우리'의 결혼 이야기는 없었다. 보통은 연애를 오래하다보면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진행되어 프러포즈까지 받게 된다고 했는데 나는 좀처럼 첫번째 진도조차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뭐 나도 결혼을 미친듯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그 문제에 있어 쿨한척 무심한척 지냈지만 한편에서는 '얘는 나랑 연애만 할 셈이야 뭐야', '애인으로서는 오케이지만 아내감으로는 아니라는거야?'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내게도 프러포즈의 순간이 찾아왔다. 전혀 준비 없이, 그리고 생각처럼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게.

 

조금 미리 떠난 여름휴가지에서 우리는 한참 이국적인 풍광에 흠뻑빠져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희한하게 그 여행기간 동안 S는 옷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늘 아침이면 내게 뭘 입고 나갈거냐 물었고 '예쁘게 입고 나가자. 그래야 사진이 이쁘잖아'라며 내 옷까지 신경을 썼다. 예쁜 옷은 가져가지도 않았고, 많이 걸으려면 청바지에 운동화가 짱이라며 그날도 그의 말을 흘려보내고 호텔을 나섰다. 건물과 건물사이 흐르는 물줄기와 골목골목 떠다니는 곤돌라의 이색적인 풍광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우리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한 지점에서 S는 사진을 찍자며 나를 세웠다. 늘 그렇듯 내가 서 있으면 그가 삼각대에 사진을 올려두고 구도를 잡았고, 타이머를 누르고 달려오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나를 다시 불러세웠다. "잠깐만, 한 장만 더 찍자. 여기 무지 이쁘다" "그래? 그러자."나는 대답했고 그는 다시 셔터를 누르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카메라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말이다.

 

나를 자신을 향하게 돌려 세운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연아, 나랑 결혼해줄래?" 프러포즈 반지였다.

 

아무말도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단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단 한번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고, 내게 힌트를 주는 그 어떤 말도 한적 없는 그였다. 그는 반지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지금 대답 안 해도 돼. 반지는 너가 거절을 해도 주고 싶어서 산 거니 부담갖지 말고. 생각해보고 대답해줘. 많이는 안 기다리게 해주고."

 

그 장면은 동영상으로 담겨있다. S가 사진을 찍는 채 하면서 동영상 녹화를 한 것이다. 그냥 생각하면 자주 볼 것 같지만 무지 오글거려서 두세번 보고는 다시 꺼내보지 않는다. 나의 추레한 모습과, 나의 어색한 반응 때문이다. 그렇게 프러포즈를 받으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키스를 한 뒤 그에게 안겨 뱅글뱅글 돌며 기쁨을 만끽할 것 같지만, 난 당황한 나머지 벗고 있던 선글라스를 다시 끼고 벽에 붙어 아무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훗날 S는 동영상이 망했다며, 자기 로망이 프러포즈 순간을 영상에 담아 영원히 기억하는 거였는데 네 반응이 이상해서 그렇게 못한다며 날 타박했다.

 

비록 그림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그날 그 순간은 내게 아직도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내게 '결혼을 하자'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 처음인만큼 많이 고민했고 많은 확신을 담은채 말하고 있는 그의 표정,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웃고 있지만 긴장하는 그의 몸짓이 그 어떤 이벤트와 선물보다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날짜를 잡고 이제는 정말 너랑 해야하는 결혼이니 하는 프러포즈가 아니라, 이 사람은 정말로 내게 결혼을 하자고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 나의 가슴을 흔들었고 이 세상 어떤 프러포즈도 안 부러울만큼 행복했다.

 

나는 그의 프러포즈를 받고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S와 결혼했다. 프러포즈는 온전히 우리 둘의 의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기에 이후 우리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시간을 겪어야 했다. 힘든일도 많았고 주변의 방해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난 늘 그 순간을 떠올렸고, 그날 그의 진심을 믿고 묵묵히 걸어나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진심을 믿기에 말이다.   

 

프러포즈란 그런 것 같다. 결혼을 하기 전 남자가 여자에게 해야하는 어떤 통과의례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말 그래도 '청혼'. 혼인을 청하는 고백의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어떤 화려한 이벤트나, 어떤 비싸고 값진 선물 보다는 한 남자가 진심으로, 진실로 한 여자에게 평생을 약속하는 그 순간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왜냐면 그 마음은 여느 이벤트나 선물과는 똑같을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선물이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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