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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도서]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혜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며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건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불이 꺼지고 기계가 멈추는 시간이 되면 밀려드는 공허와 허무감에 가슴아파할 때가 있다. 아침이 오면 다시 톱니는 돌아가지만 어젯밤 쌓인 녹과 먼지는 켜켜이 남아 언젠가 기계 자체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지난 여름 내가 그랬고 아마 생일을 하루 앞두고 어머니와 함께 먼 나라로 떠난 한 개그맨의 마음이 그랬을지 모르겠다.


산사에 가면 그 톱니바퀴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참 좋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나는 합창 소리, 풍경의 추임새 소리, 사박사박 흙바닥을 밟는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대웅전에는 언제나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있는 부처님이 계시니까 든든하니 안심도 된다. 그러고 싶다고 평일에 문득 산사로 떠날 수 없으니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대리 만족을 얻는다. 삶이 바쁘고 힘들수록 나에게 고요함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혜민 스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다른 사람, 나의 문제들이 앙금처럼 바닥으로 가라앉고 조용한 평화를 느낄 수 있다.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아놓고 몸을 담근 채 읽어도 좋고, 조용한 방에 조명을 좀 낮추고 은은한 연주곡을 아무 거나 틀어놓은 채 읽어도 좋다. 그게 아니더라도, 바쁜 일상 속 일과 일 사이 딱 4분만 시간을 내어 아무 페이지나 펴 들고 읽어도 좋다. 여기저기 생채기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데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받았던 몇가지 질문 중 여전히 일상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것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것은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내가 이 것을 좋아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좋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 일 자체로 행복한 것이고, 아니라면 그 일을 하기는 하더라도 그 일 때문에 괴로운 마음이 덜하다. '사서' 하는 게 아니니까 굳이 잘 할 필요 없고 안되면 내려놓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느낌들이 이거다. 그것이 너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잘 살피라. 그렇다면 내려놓으라. 그것을 살피려면 멈춤이, 고요함이 필요하다. 이 말은 내 일상을 티나지 않게 변화시키고 있지만,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들에게도 모두 적용되는 말일 것만 같다. 끝없는 욕망과 소비, 비교와 차별의 열차에서 내려야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어려운 말 하나 없는 책을 읽고 괜히 관념적인 이야기들을 활용해 후기를 적고 있다. 이 책을 읽던 때(10월 중순) 30년지기 친구가 연락을 끊었었다. 실직, 실연, 가족 간의 불화. 온갖 불행의 선물세트같은 삶이 그를 자격지심의 늪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그와 나 둘 사이의 관계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걸어들어가는 동안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뒷덜미를 잡아주지 않았던, 그리고 안아주고 함께 눈물흘려주지 않았던 내가 보였다. 친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친구라는 걸 그를 잃었다고 생각하면서 알게 되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좋은 글을 보면 문자로도 보내고 변해가는 날씨에 카톡으로 안부를 보냈다. 이따금 생각나면 받지 않을 줄 알면서도 전화를 걸었다. 2주쯤 전, 어느 스타트업 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차분하지만 숨 사이에 얕은 흥분이 느껴지는 전화를 받았다. 


고요하게 이 책을 읽는 일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 도와준다. 당연히 누구에게든 읽어보기를 권한다. 


랜덤으로 책을 폈더니 지금 나에게 필요한 위로의 한 마디가 보인다. 아래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내가 느낀 위로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 사람은 그 일을 거절한 것이지

네 존재를 거절한 것이 아니야.

자기 상황이랑 딱 맞지 않아 그렇게 결정한 것이지

너를 무시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야."(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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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해탈에 다다를 수 있는 법인데, 먹고 사는 뭇제를 해결하지 못해 못 내려놓곤 하네요. 삶의 무거움은 목구멍에서 시작해 똥꼬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2020.11.05 14:01 댓글쓰기
    • 직관적인 통찰이십니다.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그 길이 더 어렵네요.

      2020.11.09 11:38
  • 안녕하세요

    11월 이쯤이면 저자에 대해서 알았을텐데..

    2020.11.21 10:17 댓글쓰기
    • 이 글 올리고 며칠 안있어 혜민스님 집이 방송에 나오더군요.

      2020.11.27 10:11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