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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예요

[도서] 다시 봄이 올 거예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내 아이의 죽음이란.

다시는 못 본다는 것.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대는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것.

우리 아이와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동료들과 화제로 삼지 못한다는 것.

오늘 저녁 뭘 먹을지 묻지 못하는 것.

저녁 내내 귓가에 들리는 남매의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밥 제대 안 먹고 논다고 잔소리할 수 없는 것.

내 손을 꼭 잡는 그 손의 압력을 느낄 수 없는 것.

25년쯤 후 결혼식장에서 사위에게 건네줄 손이 없는 것.

가슴팍에 끌어올려 안았을 때 온몸을 다해 안기는 감촉을 느낄 수 없는 것.

내 몸통을 다리로 감는 가벼운 조임을 느낄 수 없는 것.

예전 앨범을 보며 그때를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

사랑한다고, 꿈에서 만나자는 밤인사를 듣지 못하는 것.

초등학교에서 메고 다닐 새 가방과, 새 신발을 살 필요가 없어지는 것.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려고 퇴근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는 것.

좋은 아빠가 되려고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으로 살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일곱 살, 다섯 살 짜리가 없어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죽겠다. 지난번 코로나 자가격리 2주를 하는 동안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둘째의 젓가락을 보며 김광균의 <은수저>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났는데. 자식이 죽는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감을 느낀 그 속은......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들이 미쳐버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사람이 수백 명이었기 때문일까. 이런 초현실적인 슬픔 앞에서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만, 너무 안 됐고, 속상해서 터지는 눈물같은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당장 내일 보지 못한대도 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행동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 한다. 그럼 영어, 한글 공부가 아니라, 얼굴 한 번 더 보고 눈 한번 더 맞추고 귀찮은 티 덜 내고 화는 누르고 좋은 말과 공감의 말이 더 나가게 된다. 존재 자체가 고맙고 귀해진다. 미래에 아이가 제 갈 길을 찾는 것은 그의 몫이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서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귀하게 여겨주려 노력할 따름이다.

학교에 가서는, 점점 잊혀져가는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내고 감정을 증폭시켜 자라나는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가슴에 각인시키려 한다. 진상 규명을 위한 목소리에 기계적으로 동감을 강요하기 전에 - 사랑했었는지도 잘 몰랐고 알았어도 잘 표현하지 못했던 -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최대한 공감하게끔 하려 한다. 적어도 그럼 입에 담을 수 없는 인간같지 않은 말을 내뱉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그 사람들이 새로운 상처를 받는 대신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상처의 치유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올해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읽으며 나는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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