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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기다리고 있어

[도서] 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저/김영주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돌아갈 곳이 없는 여자를 재워주는 남자를 가리켜 '신'이라고 부른다."

책을 읽기 전, 제목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가난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신'의 의미는 뭘까? 미시감이 느껴지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번역에서 오는 괴리일까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설마, 신이 그 신일 줄이야.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지독한 투병 일기를 읽은 듯한 기분이었다. 제목부터가 지뢰였던 거다. 모호한 제목이라 생각했지만 가장 확실하게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도쿄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하고 졸지에 '홈리스'가 된 주인공 '아이'의 이야기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24시간 컴퓨터 카페 등에서 머물렀지만 결국 '성산업' 속으로 흘러가게 된다. 소설은 '아이'가 어떻게 성산업이라는 구조 속으로 잠식되었는지와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한다.

이 책은 소설이라 적혔지만 실은 지극히 현실과 닮아있다. 소설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일상적임과 동시에 비일상적 이었다. 방방곳곳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지만 성역인 마냥 일상적으로 얘기되지 못하는 것,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그 영역'은 어떤 곳인지 모른다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는 문외한인 반면, 누구는 '그 영역'의 전문가라는 사실이 세상을 양지와 음지로 분리시키고 덮어두려 한다. 사람들은 그 영역의 괴랄함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37조+a

일본의 성산업엔 '성매매'가 없다고 한다. 일본이 정의하는 성매매란 '대상을 받아 또는 받는 약속으로, 불특정의 상대방과 성교 행위를 하는 것'이라 한다. 성산업은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성산업 업소에서는 성교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아이'가 다녔던 데이트 카페도 그랬다. 그 카페는 '2차'라는 이름의 성매매를 위한 플랫폼이었다. 이에 대해 카페에선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여성의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치 '성산업'이라는 이름 하에 그 누구도 보호나 책임의 역할은 지지 않겠다는 것만 같았다. 그 여성이 성매매 현장에서 어떠한 종류의 폭행 피해를 입어도 남자도, 카페도, 국가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이'를 비롯한 수많은 이름들 역시 보호받지 못했다. '아이'가 찾았던 첫 번째 신 역시 그의 친구였다.

가장 눈에 밟혔던 인물은 '나기'였다. 중학생이 금요일 그 시간에 영화관 앞에 서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암묵적으로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 기괴하다 생각했다. 성산업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라는게 끔찍하기도 했다. '나기'는 그마저 청소년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나기'가 부친의 성폭행으로 영화관 앞에 서성이게 된 것도.

'성산업은 커피 산업의 4배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2020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성산업의 규모는 30-37조원 대로 예상한다고 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경로와 방법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성산업이 이뤄지고 있다. 매일 같이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여자가, 'n번방,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성범죄자 조두순을 필두로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성범죄자가 근본없이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키면 여러개의 통로가 보인다. 가출청소년이 흘러 들어가는 그런 길. 마치 '나기'처럼 온갖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쥐도새도 모르게, 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곳으로 여성 청소년이 흩어지고 사라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스마트폰과 PC가 일상적이지 않았고 성에 무지했던, 혹은 관심 조차 없었던 여자 청소년들도 '아오이 소라'라는 인물과 '일본 야동'의 존재는 알았다. 일면식이 있는 사이도 아닌데 어디에서나 그의 이야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그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나그의 이야기를 마구 하던 아이들과 내 삶은 다르리라 생각했다. 같은 차원에 살고 있어도 그들과 나의 삶은 나눠져 있다고 생각했다.

'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현실에 기반한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영역이라 치부된 것들이 이곳저곳으로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 그러니 누군가의 일탈이 아니라는 것을 밝내기 위해서. 결국 화자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던 '신'은 누군가의 도움이었지 않을까 싶다. 랜덤적인 구원보다 확실한 도움. 그렇기에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빈곤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책 '김지은 입니다'에는 김지은씨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할 때 '고학력자 여성'이기에 피해를 당했을 리 없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결국 그 여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돈이 있고, 없고. 고학력이고 저학력이고. '여성'이 붙는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 이를 인간의 탓이 아닌 신의 탓이다 라고 생각했다. 개인이 건드려 볼 수 있는 영역이,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건 동요와 연대일 것이다. 그렇게 개인이 아닌 우리의 문제로 풀지 못한다면, 여성들은 신의 탓을 하는게 아닌 신을 찾고 있고 있을 것이다.

 

"산다고 해도 별다른 수가 없잖아? 돈도 없고 살 곳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으니까. 노숙자 아저씨들처럼 역이나 공원에서 자는 건 여자들한테 불가능해. 그렇게까지 해서 살 의미도 없고."

"의미는 있지 않을까요?"

"없어."

"그렇군요..."

-하타노 도모미, '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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