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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듣는 시간

[도서] 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참 슬프면서도 무서운 책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어설픈 동정, 어설픈 공감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제목을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아요그래야 들을 수 있어요.”

 

  책의 여기저기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숨겨진 편견을 볼 수 있었다. 동정에 관하여, 소리의 묘사에 대하여...

  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상이 되었다며 기뻐하는 꼴이라니. 배신감이 들었다.’

헤드폰은 장식이고 내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소리를 못 듣는 건 내 잘못이자 책임이 되어 돌아왔다. 때론 적대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불편함을 말 그대로 극복해야 할 불편함으로 본 나. 겉으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척했지만, 실제론 그들을 불쌍하게만 여기던 나. 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이라고 생각했던 머릿속 깊숙이 감추어놓은 나의 편견을 마주하게 만든 저자의 글.

  저자는 전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던 두 인물을 조우시킨다. 그러면서 나의 편견을 더 자극한다. 억지스러운 친해짐이 아니다. 그들을 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며 나의 편협한 생각을 더욱 자극했다.

 

그는 내가 헤드폰을 멋으로 쓰고 다니는 것을 처음을 이해해 준 사람이다. 그는 선글라스를 몸의 일부로 여겨서 절대 벗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저자는 더 나간다. 그리고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수지와 장애인 수시 전형 면접을 본 한민의 모습을 서술하며 한 번 더 물어본다. “아직도 장애인의 반대가 정상인인가요?”

 

나는 수술 전에 외로웠고 수술 후에는 더욱더 외로웠다.’

나는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불완전한 소리의 세계로 옮겨졌다.’

면접이 정말 거지 같았어. 장애인 수시 전형이었거든.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말이 제일 싫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똑같지 않다는 걸 강조할 뿐. 그런 말이 필요 없는 세계를 만들어 주지 않을 바에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

  

  이 책이 장애 이야기만 가득했다면 그 감동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개성 있는 인물들이 얽혀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평생 사랑과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할머니와 그에 억눌린 또는 기대었던 엄마, 그 둘을 바라본 고모. 그리고 그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자란 수지. 수지의 장애를 빼고서라도 그 인물들이 부딪혀 낸 이야기 또한 깊다. 결국 할머니의 죽음으로 각자의 길로 뻗어난 주인공들. 이기적으로 보인 할머니, 자기 인생에 충실한 할머니를 욕할 수 있을까? 그런 할머니에게 충실했으나 결국 자신의 길로 떠나버린 엄마를 욕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간섭에서 벗어났기에 수지가 홀로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주인공들의 행동에 이해가 되면서도 묘한 감정이 생긴다. 단순히 선악이 아니라 모두가 인생을 살며 여기저기 모나고 둥근 부분이 맞물려 서로를 고통스럽게도, 기쁘게도 했기 때문일 것이라 다만 아쉬운 점은 나를 압도시킨 앞부분에 비해 뒤의 결말이 너무 손쉽게 해결된 점이다. 굳이 극적인 해결을 만들지 않아도, 무언가 긍정적인 결말이 아니더라도 소설이 준 여운과 무게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으나 밝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욕심일까? 뒷부분의 산책을 듣는 시간에 운영은 나름 의미 있고 흥미로운 결말이나, 소설의 전반부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다.

 

  장애에 관련된 많은 책이 이제 동정을 넘어 우리와 똑같다라는 느낌을 주고자 한다.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거나 그저 불편할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라는 정도로 서술해 안전하게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그 편견마저 박살낸다. 저자는 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이 아닙니다. 장애인의 반대는 비장애인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강렬하게 남긴다. 그동안 여러 장애인 분들을 접하고 그와 관련된 책을 접하면서 마치 모두를 이해한 듯, 공감한 듯한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어설픈 동정을 가졌던 나에게 반성하게 해준 이 책. 내 안에 깊숙이 감추어진 장애의 편견을 깨뜨린 책. 그러면서도 많은 여운과 재미를 주었던 이 책에게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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