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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도서] 훌훌

문경민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내 진로 키워드는 셋이었다. 4년 전액 장학금, 기숙사, 취업 전망.

가끔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큰 아픔이 다가오면 직면하기보다 그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탈출을 원한다. 주인공 유리도 마찬가지다. 엄마로부터 버림, 자신에게 도무지 관심 없는 할아버지, 입양아라는 자신의 처지. 유리는 공부를 탈출구 삼아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외면하고 회피한다.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 취업해서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냉소 지을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두텁게 덮어버린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항상 가지고 있기에 어떤 사소한 계기로도 자신을 휘말리게 한다. 결국 유리는 자신을 입양한, 그러면서 버린 엄마 서정희의 죽음으로 외면했던 현실을 다시 마주한다.

서정희 씨의 죽음은 방아쇠를 당겼다. 그동안 외면했던 덩어리들이 탕! 하는 신호와 함께 내게로 대차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같이 살게 된 연우. 멍든 연우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엄마였던 서정희에게 분노한다. 하지만 연이은 연우의 일탈을 보며 연우를 때리며 엄마와 똑같이 행동하는 자신을 깨닫고 엄마 서정희와 강제로 마주하게 된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지만 싫어한 존재와 마주하는 유리, 현실을 잊고 탈출하기 위한 계획도 연우와 함께 어그러지고 두터운 층은 균열이 간다. 그러나 그 균열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유리에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밝은 웃음 속에 말하지 못할 사연을 가지고 있는 고향숙 선생님,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부모님 사이에 꿋꿋이 견디는 미희, 자신과 같은 입양아였던 세윤, 복막암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를 다리에서 밀었다는 의심을 받아 재판을 받는 연우. 여기에 자신의 엄마, 서정희의 감추어진 사연. 그리고 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좌절하고 슬퍼하지만 유리는 천천히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맞선다.
할아버지의 수술이 끝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끝난다. 솔직히 유리의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없다. 여전히 삶의 무게는 유리를 짓누르고 있다. 할아버지의 병환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고 유리는 연우를 돌보면서 집안일도 하고 자신의 입시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고 유리 혼자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소설 초반부에 혼자 감내했던, 자신의 계획을 밀고 나갔던 유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조금 행복해 보이기까지 느껴진다. 아마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의 삶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아닐까?

“잘됐을 거야. 아주아주 잘됐을 거야.”

고등학교 여학생을 통해, 그리고 그 주변 인물을 통해 삶의 무게를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가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더욱이 문제를 직면해 나가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무게가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그 슬픔이 아무리 크더라도 직시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 헤쳐나가면 그 과정이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고 했던 유리가 결국 함께 가고자 뒤를 돌아본 것은 혼자 가기엔 삶이 그만큼 힘들고 외롭고 길기 때문이 아닐까? 주인공 유리가 연우와 할아버지,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천천히 멀리 그리고 조금은 즐겁게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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