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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eBook]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하재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새해 첫 책에는 항상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렇기에 뭔가 의미있는 책을 아껴두었다가 1월에 꺼내 읽기도 한다.

 

하지만 2022년을 시작하는 이 책은, 연말 휴가 중에 다녀온 계양산 동물보호소에서의 경험(@hds_mango),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된 책이다.

 

 

계양산 동물보호소

 

 

혹시 감성에 호소하는 책 정도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과 염려를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작이었다. 실제 개농장, 구호활동, 개 미용, 개 경매, 개 판매 등 관련 일을 하고 있거나 했던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하여 우리나라 개들이 처한 실상을 적나라 하게 볼 수 있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그에 반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 등이 공존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 개들의 현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에도 개 식용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처럼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농장 사육, 무자비한 도살과 유통이 일어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개들은 전세계 어느나라의 개들보다 처참한 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정에서 이쁨받고 좋은 사료 먹고 미용 받으며 사는 개들도 있는 반면, 위 링크에서 보는 바와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더 열악하고 끔찍한 환경에 처한 개들이 수백마리, 많게는 수천마리씩 사육을 당하고 있고 그런 개 사육장이 몇개나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조차 어렵다고 한다. 이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개 식용 문화가 있다.

 

 

개 식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흔히 접하게 되는 "나는 먹지 않지만 먹는 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가 마치 다양성을 준중하는 듯 보이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문제제기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도리어 "그럼 돼지, 소, 닭은?" 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많다. 돼지, 소, 닭을 거리낌 없이 먹는다고 해서 그 동물들의 사육방식과 도살, 유통방식에 대해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 그 동물들을 사육하고 소비하는 방식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러한 문제점에 대해 turn blind eyes하면서 거기에 문제가 없으니 개도 문제가 없다고 해야 맞다고 주장하는데에는 많은 헛점이 있다.

 

물론, 나도 육식을 즐기고 당장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체 누가 인간에게 그 동물들을 그렇게 대할 권리를 주었는가, 과연 우리가 그 생명들을 생명으로서 존중하고 있는가하는 점은 분명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우리가 그 동물들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나는 동물을 존중하는 일과 인간을 존중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는 저자의 주장은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충분한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차근차근 논리적 접근을 해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책속으로]

 

그리고 이를 위해 사료관리법, 가축 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가축분뇨법), 동물보호법, 축산물 위생관리법, 식품위생법 등 최소 다섯개의 현행법을 위반하고 때에 따라서는 폐기물 관리법, 가축전염병 예방법 등 예닐곱개 이상의 법률을 위반한다.

 

그들은 소비자가 고기는 먹고 싶지만 감당하고 싶진 않은 정신적 부담을 대신 지고, 동물을 죽이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습관화하며, 무조건 도축 라인을 돌아가게 하라는 관리자의 요구에 굴복한다. 진짜 잔인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동물과 인간 모두를 무생물의 기계로 다루는 현대 축산업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개든 고양이든 곰이든 말이든 새로운 동물을 저 잔혹한 축산 시스템에 밀어넣는 일을 반대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덕성이다.

 

개식용과 관련한 한국 동물보호단체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예요. 이제는 입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오늘 재판 결과도 그렇지만 기존의 동물보호법 안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어. 문제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입법으로 가는데, 자기는 개를 안 먹지만 남이 먹는 건 존중한다는, 그게 똘레랑스고 다양성이고 멋진 건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이잖아. 키우던 개를 유기하는 사람은 비난하면서, 키우던 개를 개장수나 도살자한테 팔아넘기는 사람은 비난하지 않잖아.

 

나는 개들이 동물의 전도사 같습니다. 이 녀석들이 우리 곁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누구도 구한 적 없는 사람은 구해지지 않은 존재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죄책감도 패배감도 느끼지 않는다. 죄책감과 패배감은 오로지 구하고 싸우는 이들의 몫이다. 매일 죄의식에 시달리더라도, 매번 싸움에서 지더라도, 그는 계속 가야 한다고 했다, 낙관도 비관도 없이.

 

내 입에서 뜻하지 않은 말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어.

“데리고 오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같이 제가 하나님의 피조물을 지키고 돌보겠습니다.”

내가 말해놓고 나도 깜짝 놀랐는데 그게 고백 같고 증언 같고 사명 같은 거야. 신이 내 입을 사용해서 이렇게 말하게 만드신 건가 싶고. 그러고 나서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뒤 하신 말씀이, 그전까지는 별 생각 없이 넘겼던 문장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1:28).’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구해봤자 한해 8만마리 이상이 버려지는데 무슨 수로 다 살리겠어요. 그래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싸우는 건 번식업자, 육견업자, 동물학대자 같은 개인이 아니라 바로 이 시스템, 생명을 싸구려 물건 취급해온 이 사회의 시스템이에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십대에도, 유기동물 구조 활동을 시작한 사십대에도, 그리고 오십대가 된 지금도, 내 목표는 똑같아요. 약자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이 ‘더불어’라는 말이, ‘함께한다’는 뜻이 참 좋아.

우리 단체의 메인 슬로건이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잖아요. ‘동물이 행복한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동물이 대접받는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야. 이게 내가 꿈꾸는 세상이니까.

 

나는 동물을 존중하는 일과 인간을 존중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과 “동물이라는 최약자를 통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었다”는 행강대부의 고백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십대나 동물을 위해 싸우는 지금이나 내 목표는 같다”는 뚱아저씨의 말은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모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우리가 추구할 가치와 진보할 방향을 보여준다. 힘 있는 자의 목적에 힘없는 자가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사회, 수단으로서의 쓸모마저 없어지면 버림받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약자의 최전선에 동물이 있다"

이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실제나 인식이나 완전한 도구, 수단, 물건이다. 여주 개농장 아사 사건에서 보듯이 수단으로서의 쓸모가 없어지면 학대와 방치의 대상이 되는 일도 흔하다. 이것은 수단의 사회에 사는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 그중에서도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한 사회 안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와 동물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모든 존재가 목적이라는 인식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적으로서의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인권 수준이 높고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인권과 동물권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관계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다.

 

우리에게는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도덕적 판단에 따라 무엇인가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또한 피터 씽어의 동물해방론, 톰 리건Tom Regan의 동물권리론 등이 등장한 이래 동물 생명 존중은 보편적 윤리로서 하나의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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