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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도서]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저/홍한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요리사의 뛰어난 솜씨를 익히 알고있기에 풍성한 식사를 기대했는데, 말간 육수에 수육 한 점 올라간 평양냉면을 받아든 기분입니다. 온갖 귀한 재료 넣어서 끓인 육수라 해도, 정성 들인 슬로우 푸드라고 해도 헛헛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아직 배가 고파요. 잉잉 ㅠ

씨실 날실의 아름다운 무늬로 이야기를 직조하는 이시구로 작가가 10여년만에 발표하는 신작이기에 기대가 컸어요. 내용도 인공지능 로봇(AF)과 인간 소녀의 우정이라니 얼마나 절절한 사연일까 싶고,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되었을까 궁금했어요. 감동 받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읽어서 그런 걸까요. 이야기가 다소 심심했어요. 대가의 그림이 말년으로 갈수록 단순해지는 것처럼, 이시구로 작가도 화려한 장치를 뺀 동화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나봐요. 작품의 상징적 의미를 좀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시구로'라는 계급장을 떼고 읽었다면 끝까지 안 읽었을지도.

서술자는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입니다. 어린이의 진정한 친구로 개발됐다고 하지만, 고급 장난감이라고 해야겠죠. 가격이 비싸서 부자들이나 구입할 수 있기에 클라라와 AF친구들은 매장에 진열되어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립니다. 클라라는 다른 로봇에 비해서 지능과 감수성이 굉장히 뛰어나서 매장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을 관찰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요. 바로 옆에 있는 로봇 로사는 멍 때리고 있는데 말이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받아들이는 게 천차만별인 것은 인간이나 로봇이나 똑같네요. 클라라처럼 예민한 관찰력이 부럽기도 하지만, 로사처럼 적당히 둔감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요. 클라라는 어느 날 운명처럼 몸이 약한 소녀 조시를 만납니다. 조시는 한눈에 클라라가 마음에 들어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하죠.
"정말이야. 맹세해. 밤에 해가 가는 곳, 바로 거기를 볼 수 있어." (28)?

이 작품에서 '태양'은 정말정말 중요한 상징인데요. 생명력, 소망, 절대자의 능력, 자연의 치유, 사랑의 에너지.. 그야말로 긍정적인 모든 것입니다. 이런 설정이 너무 동화적이어서 당황스러웠어요. SF소설에서 왜 리얼리티를 찾느냐고 하면 할말 없지만, 완벽한 디테일과 섬세한 이야기 구조가 강점인 작가 아니었나요?

클라라가 조시의 집으로 가면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됩니다. 엄마가 회사에 가면 혼자 지내는 조시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조시의 건강상태를 살피는 게 클라라의 역할이죠. 조시를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아이로만 알고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엄마가 조시를 대하는 감정이 석연치가 않아요. 안쓰러움과 죄책감과 두려움이 한데 섞여있어요. 게다가 조시 집에서 열린 교류모임에서 친구 릭은 이런 말을 합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거. 향상된 애들 모임이니까." (126)

조시의 아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죠.
"그 사람은.. '대체'됐어. 모두 다 그렇게 됐지. 아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렇고. 이제 더 잘 지내. 조시한테 그게 중요하니까." (152)
?
'향상되었다'는 게 무슨 뜻이지? '대체됐다'는 건 또 뭐고? 작가가 확실하게 설명을 안 해줘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은 됩니다. 섬뜩한 상상이죠. 인간의 욕망에는 정말 브레이크가 없는 것일까. 장기기증을 위한 클론을 만들더니 이젠 자기 몸에도 손을 대는 그 징글징글한 욕망이여!

여러 면에서 <나를 보내지 마>가 연상되었어요. 클론이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되고,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깔려있고, 세상을 순수한 눈으로 관찰하는 서술자의 시선도 닮았어요. 다른 점은 인간들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더 화가 난다는 점.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이 정도로 망가지진 말자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인지, 매끄럽지 못한 번역의 문제인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어요. 다른 건 다 잊어도 클라라의 따뜻한 마음만은 오래 간직할래요. 인간과 진실한 친구가 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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