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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도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상처 입었으나 글쓰기로 치유하는 자

 

치유는 수동적인 처치가 아니라

적극적인 투쟁이다. (198)

 

 정여울 작가의 책은 마주치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문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끝맛이 너무 달달하거나 낙관적이면 이내 쌉쌀하거나 오래 곱씹을 대상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책으로 만나온 그녀는 원래부터 그런 글이 아니었다고 실토한다. 건조하고 딱딱한 어조가 자신의 글쓰기 취지와 맞지 않아 버린 것이다. 한없이 힘차고 발랄한 기운보다 나는 그녀의 성실하고 균등한 글에 가치를 둔다. 지나치게 상념적이거나 가볍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명쾌하게 집어준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는 특히 일기 같은 칼럼이었다. 읽자마자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다정다감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곁에 찾아갈 책이다.

 

 사실 반백년에 조금 못 미치게 살아보니 몰라서 하지 않는 것들은 거의 없다. 아는데도 잘 안하게 된다. 내 마음 돌보는 일을.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 할 나를 모른 체하거나 방치한다. 말이 안 되지만 자주 그런다. 깜박하고 내달리다가 통증이나 우울감이 덮치면 그때야 살핀다. ‘아아, 내가 또 이랬구나. 참 내게 몹쓸 인간이었구나

 

 “글을 쓸 때마다 내 인생을 걸고 있다(132-133)”는 정여울의 글을 짧은 말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여러 책들 사이로 재차 보이면서도 반복하는데 싫지 않은 충고와 메시지들이 있다. 그녀는 살아감에 있어 영 별로인 나, 즉 부정적인 감정과 문제들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일차적으로 강조한다. 어떤 사건과 상태와 고충이 있음을 인정한 후 그것들에 관심을 갖고 돌보는 주체적인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꾸 밖으로 향하는 에고의 더듬이를 안으로 거둬 셀프를 살피라고 한다. 모든 순간에 스스로의 편이 되어주는 자기공감self-compssion력을 키우고, 내면아이의 그림자나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를 파악해 성인자아로 성장하는 가능성과 부추김도 빼놓지 않는다.

 

 나라는 한사람의 전체로서의 소중함과 오늘이라는 시간에 감사.. 울부짖고 생기를 잃은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깊이 제대로 숨 쉬는 것. 괜한 두려움에 내몰린 과잉 반응(방어기제)과 집착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을 헤아리는 정신력.. 당연하고 너무나 가치 있지만 자주 망각하는 것들을 다시 일러주는 글들이 하나같이 따뜻한 오후 햇살 같다. 회복하는 인간과 나아지는 세상을 향한 믿음과 확신을 실천하는 작가의 분주한 움직임이 사랑스럽고, 그 운전대(내향성의 집중력과 외향성의 표현력)를 절대 놓지 말라고 응원하게 된다.

 

 “유리창이 깨진 거지, 영혼이 부서진 것은 아니야.”

 정말 그렇지 않은가. 힘든 일이 생긴 것이지, 반드시 절망해야 할 필연적인 사건이 터진 것은 아니다. 극복해야 할 힘든 일이 생긴 것뿐이지, 그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아프다고 소리치며 화를 내고 물건을 깨뜨리는 것은 표출이지만, 아픔을 오래오래 발효시켜 글이나 음악이나 그림 같은 또 하나의 미디어로 표현하는 것은 승화다. 이 승화의 과정이 우리를 끝내 구원한다. (105-106)

 

 이상하게 그때 내 마음속에는 담임선생님의 든든한 칭찬이 피아노의 음처럼 안정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로 불안하게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나는 다시 =걱정마세요라는 기준점을 찾는 느낌이었다. (145)

 

 내가 잘 먹는지, 잘 자는지, 잘 웃는지, 울고 싶을 땐 마음 놓고 울 수 있는지를 체크해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이런 시간들을 내어주자.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시간, 태양이 떠오르고 석양이 물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일기를 쓰는 시간, 그리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시간, 이런 시간들을 스스로에게 줌으로써 우리는 나를 진정한 나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188)

 

 피곤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는 저 모든 것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식으로 상황 전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높아진 방어기제가 예전에는 견딜 수 있었던 사소한 불편마저 이제는 견딜 수 없는 불행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194-195)

 

 고통이 내 온몸을 사로잡을 때조차, 그 고통은 내 전체가 아닌 내 부분을 괴롭히고 있음을 깨달을 때, 고통은 경감되고 고통을 느끼고 있는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게 된다... 아무리 고통받는 순간에도 나는 자유와 해방의 의미를 아는 전체임을 잊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슬퍼하는 것. 내가 아파하는 것. 그 모든 것은 나의 부분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더 커다란 전체의 힘을 자기치유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괴로움과 나는 동의어가 아니다. 슬픔과 나는 동의가 아니다. (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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