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단어의 집

[도서] 단어의 집

안희연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안희연이라는 이름이 나한테도 전해지는 걸 보니 대세 시인인 듯하다. 알아보긴 해야겠는데 시알못은 산문집으로 타협한다. 책이 어땠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너무 좋았더라는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다. 시인의 언어사전이 이렇게 알찬 에세이(어원이 시도)가 되다니, 읽는 도중 언뜻언뜻 박연준 시인이 지나갔다. ? 아빠와 할머니를 품고.. 씩씩하게 시와 한남자를 사랑하는 유연한 기픈(깊은, 기쁜 조합ㅎㅎ) 성장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벽돌 같고 장벽 같은 에고와 문학 사랑이 아니라 생활과 생명들과 밤의 침묵을 세심히 주물럭거린다(갈변한 사과에게 울었냐고 묻는데 찡했자나~ 눈사람의 마지막 밤은 또 어떻고, 주먹 불끈 쥐게 하자나~).

 이번 대선은 내게 나에 관한 많은 걸 알려주는 건널목이었다. 졌잘싸, 라면서 왜 혈압이 치솟고 분개하는지 들여다봐야했다. 내 안에서 이기지 못해도 적어도 비기는 승부로 자리해야했다. 그래야 본래 자리로 돌아와 일상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 당선인은 사람과 눈을 맞추고 진실로 대화할 줄 모른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과 옹호자들도 비슷하다. 예외 없이 자기들에게 속하는 더러운 습성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운다. 배우자의 은 올해 내가 품은 물음표 중 하나다. ‘대체 뭐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내가 아는 모든 죄악foul의 총체라는 사실이다. 쇼통부부 모두 뇌과학 느낌적으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이런 견디기 힘든, 믿고 맡길 수 없는 상태를 단어의 집이 열고 들어와 적절한 햇살과 바람을 드리운다. 원래 내 호흡과 평정을 되찾도록, 언제나 네 마음이 옳으니 믿고 가보라고 독려한다. 한참 동생인데 인생친구를 얻은 듯 든든하다. 이야기를 줍고 모아 되살리는 단어생활자와 나란히 오래 걷고 싶은 아름다운fair 마음 다 알자나~~

 


 

 버티어 대항하는 힘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어. (17)

 

 우리 모두가 잔의 외형이나 크기로 인해 차별당하거나 파괴당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규모를 존중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25)

 

 버저 비터가 운 좋게 골대를 통과한들 득점으로 인정될지 아닐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일단은 던져보는 태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으로부터 끝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는 집중력... 다른 선수 과실일 땐 괜찮아!” “할 수 있어!” 어깨든 팔뚝이든 꼭 한번 두드려 독려하며 공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저 너른 품. (57)

 

 내가 당신을 통해서존재한다는 발상은 우리의 삶을, 관계를, 미래를, 어떻게 회전시킬 수 있을까. (61)

 

 그렇게 가능했다. 내가 지금 탁하구나. 어리석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도 문제지만 보이는 것만 보는 것도 문제구나. 보여줬는데 못 보는 건 더 심각한 문제구나. (104-105)

 

 아마도 악마는 내 맞은편에서 밥을 먹고 있다. 악마 주제에 반찬투정을 하면서... 녀석은 뻔뻔하게 내 앞으로 빈 밥공기를 내민다. 허기로 가득한 눈. (116)

 

 오늘 당신은 어떤 손을 가졌습니까. 그 손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따뜻합니까. (121)

 

 우리는 모두 정성과 사랑으로, 기도로 길러진 존재들이다. 포도밭의 태양, 포도밭의 평화를 떠올리면 삶에 찢기고 벌려진 상처가 소독되는 기분이다. 슬픈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그 시간으로부터 와 여기에 있다... 당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고 생각될 때에도 당신과 보이지 않는 실로 묶여 끝끝내 반짝이는 세계, 당신의 빈야드가. (124-125)

 

 내가 갖고 싶은 무기도 그런 무기인 것 같다. 날카롭되, 폭력에 가담하지 않는. 이왕이면 가장 깊고 캄캄한 고독을 찌를 수 있는. (152)

 

 이기는 경우? 물론 없다. 애초에 삶과의 싸움이란 이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는 순간과 비기는 순간을 적절히 뒤섞으며 살 수 있다면 그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견딜만한 인생 아닐까. (156-157)

 

나는 단어 하나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163)

 

 당신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합니까. 가장 깊이 찔린 기억과 가장 높이 뛰어올랐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어떨 때 흩어지거나 맺힙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온도, 색깔, 질감, 경도는 어떠합니까.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당신이 거기 있다. (172)

 

내가 쓴 문장들이 징검다리가 될 때가 있다. 과거의 문장을 딛고 현재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현재의 문장을 딛고 미래의 문장을 내려놓는다. 그렇게 간신히 한 걸음씩 나아간다.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말과 사람이 함께, 느리더라도 함께.

 그러니 하던 걸 하자. (179)

 

 이제 더 이상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지 않고 그냥 거기, 그 방의 흰 벽에 빛이 가득한 창문을 그리기로, 갇혀 있어도, 천국이 아니어도, 지워지면 그만일 창문이더라도, 내가 분명히 그렸고 그 과정이 진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 (185)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복숭아나 마 아닌 무엇이 언제 또 나의 손을 부풀게 할지 알 길 없지만... 그 시간을 통과해왔기 때문에 마를 만질 땐 꼭 장갑을 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문장을 쓰면서 이곳의 나를 찾아올 밀코메다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고 싶다. (192; 196)

 

 시드볼트에 담긴 진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슬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복숭아의 외피를 두르지 않은, 슬픔의 맨살을 누설하기 위한 준비를. (235)

 

한 줄의 문장에는 그 문장을 쓴 이의 가치관, 세계에 대한 이해, 감정, 습관과 한계, 그 모든 것이 담기니까. (239)

 

 마음이 건너오는 순간엔 영락없이 녹는구나. 나는. (255)

 

 끗은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끝이 아닌 끗의 자리에서, 끗과 함께 한 끗 차이로도 완전히 뒤집히는 세계의 비밀을 예민하게 목격하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 (260)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