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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도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제목이 눈길을 끈다. 어제 일요일 송영길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이 있었다. 어차피 질 텐데.. 라는 나약한 마음이었다가 개딸들의 지지와 성원에 정신을 차렸다. 손수 키워본 자의 자긍심과 신뢰가 봄꽃보다 더 눈부셨다. 홍대는 지난 대선 유세의 현장 열기가 가시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 길이 이기는 길, 송영길을 낳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승섭의 신작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먼저 읽고 일본소설 <애도하는 사람>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선 후유증에 헤매던 시기라 그런지 머리에서 가슴으로는 알겠는데 발은? 이라는 삐딱한 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생존자들의 시간이 어떠했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데, 라며 답답해했다. 그러다가 교보문고 리뷰대회 우수작들을 통해 책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양 진영에서 정쟁의 도구로 쓰이고 버려지는 참사와 재난들 속 사람들을 비춘다는 점만으로도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당파적 견해에서 벗어나 국민이 바로 설 자리에 대해서 사유하도록 이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거꾸로 읽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저자의 진가를 더 잘 살필 수 있었다. ‘사회역병학을 전공한 공중보건의사이자 교수라는 직함 아래로 인권 활동가이자 기록하는 자의 이력과 묵묵한 소임이 흐르고 있다.

 딴소리이지만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정 문화는 알아주었다. 당연한 기질이자 국민성으로 여겼던 것이 두 번의 경제위기 여파로 해고와 줄도산을 겪으며 각자도생으로 빠르게 변질된 듯하다. 부동산 투기와 주식 열풍 속에 비윤리적으로라도 돈과 권력을 (갈)취해 기득권으로 안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지옥문이 열리고 말았다. 심지어 특혜라는 단어조차 이중적으로 적용된다. 문제를 제기하면 무슨! 이라며 잡아떼고 뭉개거나 아니면 너는? 이라며 탈탈 털고 본질을 흐려버린다.

 무책임하고 부정한 국가 권력과 폭력을 촛불혁명으로 끌어내렸지만 민주 정치가 일상 속에 자리 잡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그놈의 국민의 바람대로 정권교체는 이루어지고 시간은 십년, 십오년 전으로 거침 없이 되돌려지고 있다. 당선인은 그네 님을 친히 찾아가 보기 흉한 어퍼컷을 날리면서도 세월호 8주기에 대해선 안전한 대한민국을 다짐하고 개놀이3하는데 그쳤다. 자기 사람을 대구로, 경기도로 파견하고.. 친구와 심복을 장관 후보로, 핵관들을 최측근에 두며 취임도 하기 전부터 퇴임 후 정권을 챙기는 모습이다. 가짜 모범생이자 권위주의자이자 사익형 관료라는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며 상상 그 이상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좋아 빠르게 가! 하하하 아하하하.

 지독한 양극화 현상 속에, 그리고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감당했을 소외와 차별은 제대로 논의되거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이다. 스피커(플랫폼) 위치에 저자의 귀와 펜이 달려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여과 없이 배설되는 각종 혐오와 분열의 프레임과 괴상한 말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국민 정서와 생활을 위협하고 겁박하는 폭주는, 일상의 파시즘은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막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힘에는 국민이 없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고 더불어민주당에는 더불어가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으니 말이다.

 

***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 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72)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거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사회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12; 14)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71)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58)

***

 무엇이 더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보고 발언하는 것뿐입니다. (83)

 정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었는가에 따라 우리의 선택을 돕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를 오히려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140)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 (재인용 101)

 나는 왜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일까...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던 국가는 그 아픔을 개개인에게 넘긴 채, 계속 정권이 바뀌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참사마저 그렇게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공동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161; 166)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일상적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에,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에 상처가 남아 생기는 질병입니다... 어젠다 세팅, 한국어로는 의제설정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가 자주 특정한 주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면, 대중의 의견도 그렇게 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때... 그것이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운이 없었다고, 개인의 책임이었다고 말하는 입장과 과연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168-169; 176)

 이렇듯 원인을 파악하는 행위는 이미 그 안에 해결책을 일정 부분 담고 있습니다. (173)

 정부와 언론, 지원기관, 지역사회 등이 모두 맞물려 있다... 부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181; 183)

 보상이나 여타 지원 내용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과장해 보도했고, 참사로 고통 받는 피해자를 운 좋은 사람 취급했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과 피해자를 이간질했다...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당사자가 애도하고 치유에 집중하도록 사회가 침묵해야 한다. (183-184)

 충분한 신뢰를 쌓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땐 언제나 곁에 있겠다며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어쩌면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감정이다. 다만 함께 품고 갈 수는 있는 일이다... (그런) 그들에게 선량한 피해자의 롤모델을 요구했다. 보이지 않는 우리가 피해자를 가뒀다. (186)

 어떤 재난에도 갈등은 존재한다. 살아온 역사와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각자 입장이 다르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재난에서 나타나는 삶의 복잡성이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 (188)

***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 지향이고 HIV감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215)

 한 인간이 트랜스젠더인가 여부는 (호르몬주사나 외과 수술이라는) 의학적 조치가 아니라, 상담기록을 포함하여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데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223)

 모욕과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231; 234)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에요. (305)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민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연 한국사회가 세계화 시대에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과 일상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 역시, 한반도만 벗어나면 소수 인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238-239)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249)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재인용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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