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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도서]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김태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인간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악은 무엇보다도 사회적이다.

- 루소

 

 머릿속이 시끄럽거나 삶의 낙이 혼미해질 때 나는 책을 펴들고 내 마음을 살핀다. 글자와 행간 사이를 떠돌며 눈을 사로잡는 단어를 포착하고, 그 단어를 중심으로 내 생각과 마음을 풀어내고 반대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곤 한다. 이번에는 어떻게 저러지?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등의 의문을 심리 서적을 통해 해소하려는 듯하다. 여러 스피커들을 지나, 사회운동을 겸비한 거리의 심리학자 김태형이 그 중심에 있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싸우는 심리학에 비해 쉽고 더 작은 영역을 깊게 파고든다. 행복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한권의 책이 묶일 정도로 너르게 사유한다. ‘가짜 행복을 읽고 난 다음 바로 든 생각은 특강 형식으로 교육 현장에서 꼭 다루었으면 싶다. 내 경우 이삼십대 내내 곱씹은 슬로건이 Be happy였다. Be 동사 때문인지 왜 나는 행복한 상태를 맛보고 유지하지 못하는지 조갈이 일었었다. 그러다가 Less Pain, More Gain을 만나고 유레카!를 외쳤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며 최면을 걸고, 상황과 환경에 대한 해석을 긍정적으로 하려는 마음 챙김’(마인드풀니스)에 나섰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마틴 셀리그만의 뜬구름 같은 긍정심리학이 인생의 주요시기를 강타했다.

 적어도 내 삶의 주인이 되어 감정을 통제하고자 했다. 앞선 책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심리학자 김태형은 좌파에 가까운 사회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정치와 생활 정치를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기를 목표로 한다. 요즘 한국의 정치 사회사를 분석하는 책들을 공부하며 계속 드는 의문이 우리가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혁명을 좀더 핵심적으로(빡세게) 겪었더라면 다른 세상에 이르러 있지 않을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에서 반공주의가 침투해 안보와 사상 검증의 악순환을 낳은 것만 같아서다. 여전히 개혁이나 진보를 말하면 색깔론을 입히고 비이성적인 공포와 악마화 프레임을 씌운다.

 다들 알다시피 이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네오 리버럴리즘)의 드센 기류를 타고 공동체가 빠르게 붕괴되고 개인은 쪼개지고 파편화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시점이 1980-90대로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맞닿아있다. 국가 공동체를 비롯한 공동의 사회 조직에 대한 관심이 개인에게로 이동하며, 전후의 증후에서나 볼 수 있는 분열과 개인에 대한 몰두가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육체적 정신적 성적 마비와 쪼개짐으로 인한 고통을 저마다 홀로 감당하고 있다. 물론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이 집단 활동과 공동체 생활을 교란하고 사회적 고립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은 측면이 있다.

 

 저자의 비판과 진단은 싸우는 심리학이나 이재명의 스피치와 일맥상통한다. 모든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정신건강이 악화된다는 지적이다.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 할 것 없이 높은 자살률과 우울증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강조한 감사와 겸손과도 맥락을 같이하며, ‘가짜 행복은 샌델의 결론에서 시작된 실무적인 생활 밀착형 이야기이자 대안 찾기라고 볼 수 있다. 감사와 포용과 친절은 단순한 성격이 아닌 사회적 가치라는 사실이다. 능력 중심의 위계질서가 오만과 굴욕을 낳고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하는 한편 상대의 무력감과 저항할 엄두를 못내는 ‘패배의식을 조장함을 간과하지 않는다.

 엘리트층과 기득권의 오만과 이기주의에서 파생된 단체 행동이 보란 듯이 사회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은 시민사회와 불화하며 분열과 갈라치기를 일삼고 목소리 차단과 파열에 나선다. 현재 한국은 자유의 이중적 함의가 한쪽으로 편향된 채 무자비한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하는 의미로 왜곡되고 있다.

 ‘돈과 권력이 주요 욕망이 되면서 생존 불안존중 불안이 가속화되는 중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둘러싼 생계에 대한 불안이 만성적인 걱정거리이자 고통으로 자리 잡고, 돈이 없으면 무시와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갑질과 학대 문화는 돈에 대한 집착을 도리어 부추긴다.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늙으면 사회적 짐으로 전락해 디스disrespect 당하는 사고체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는 사람을 기계 부품으로 취급하며 건전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든다. 계산적인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사회적 관계가 병들고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거래되고 팔려나간다. 현재 나의 최대 걱정은 현 정부와 산하기관이 기존의 공공 시스템을 붕괴하며 사유화하고 마음대로 해먹는 독점과 폭군의 도둑정치를 대놓고 선보인다는 점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충격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위 무정부상태와 각자도생이 어떤 지옥을 부를지 두렵다.

 여러 번 말했지만 밀턴 프리드먼의 시장자유의 자유(독식)만 외치는 대통령과 사회악의 총체인 영부인의 탄생이 너무나 끔찍하다. 그뿐 아니라 가진 재력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세력과도 붙어먹고 동지를 제물로 바치는 야당 정치인들의 민낯이 심히 우려된다(국민이 Yuji 트라우마를 앓는 중이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 미국발긍정심리학의 모순을 좀더 살펴보겠다. 기사를 접하다보면 노력해서 이룬 것을 뒤로하고 삶을 포기하거나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인한 사회적 죽음 앞에 종종 비참하고 막막해진다. ‘가짜 행복은 생존과 존중 불안이 국가 제도와 복지 정책과 대동세상을 향한 인식과 개선 부족으로 인해 양산됨을 꼬집는다. 잘못된 사회 제반구조가 우울증을 포함해 시민들의 정서를 해치고 정신을 갉아먹고 학대함에도 개인적인 극복 방안에 그치기 때문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이 과시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인간본성에 위배된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논리가 점령한 풍요-불화 사회에서는 소득 격차가 심하고 불평등이 원색적으로 삶의 곳곳을 장악하려든다. 그 틈을 타 소확행이나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와 같은 행복산업이 판을 친다. 그렇다고 저자가 개인 차원의 행복론을 아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개인의 소소한 행복이 존재하고 고통 완화와 힐링이 따르지만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행복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또 객관적이게 추구되는 공동의 행복을 집단주의적행복론으로 우선적으로 여긴다. 월급의 반을 세금으로 내는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국가의 시민 의식은 우리에겐 꿈 같이 들린다. 보수 정권으로 다시 교체되면서 제일 먼저 손보는 분야가 재벌과 부자의 조세 완화이고 투기와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법을 만지는 것이다(법꾸라지들의 꼼수에 환장하겠다). 민생에 민감하게 접촉되는 교통, 의료, 물가, 교육, 주거 정책에서 기득권의 이익을 중점적으로 챙기고 있다. 공정과 상식과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역설적이게도 눈 가리고 부정을 일삼는다.

 순진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건전하고 합리적인 사회구조와 개혁 없이 개인의 불안과 고통은 줄지 않는다. 인간을 말초적인 쾌감에 혈안된 동물로 몰아선 안 되며, 우리는 사랑과 존중을 중시할 뿐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만족감을 원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행복 이론인 “50:10:40(유전, 환경, 주관)”은 사회 적응을 부르는 이론일 뿐 행복을 개인 차이로 보게 하고 강박적이고 경쟁하게 소모 구도로 몰아갈 위험이 따른다.

 “사회적 집단적 행복은 주관적 쾌락주의 행복론의 악마적이고 병적인 사회로의 전락을 막을 수 있는 민중적 저항을 기반으로 한다. 안타깝게도 개인주의, 물질주의 행복론은 사회정치적 구조를 배척하는 보수적인 어용 학문에 근간한다. 즉 긍정심리학은 국가 폭력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회 비판과 진보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사랑하며 일하는 행복(보람과 만족)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할 때, 그리고 공동체의 안전망이 신뢰 받을 때 존엄한 구성원으로서 안녕감을 누리고 이웃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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