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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도서]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황인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올 여름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지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끈끈함과 숨 막히는 더위와 습습함에 욕실을 자주 들락거렸지만요. 이상한 집착이죠. 인위적인 냉기나 닫힌 창문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같아요.

 처서를 지나면서 신기하게도 공기가 싹 바뀌더군요. 다시 한 번 자연과 계절의 순환과 정직하게 오고감에 감탄합니다. 달라진 선선한 기류에 시집을 읽었습니다. 시를 읽을 때면 유난히 성급하고 덤벙거리는 제 자신을 마주하게 돼요. 천천히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데, 회전문처럼 입장해 도로 빠져나오는 모양새랍니다. 호흡이 가파르고 멀리 나가버리는 거죠.

 그러니 혼자 읽을 때는 별 감흥이 없어요. 삼십대 중반의 시인이 조근 조근 들려주는 해설을 통해 아, 그런 뜻이겠구나 놀라며 따라가는 걸음이었습니다. 나란히 혹은 앞서 가는 일은 시 읽기에선 절대 읽어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도, 그래도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시와 감정을 돌려 정확히 전달하는 완벽한 가림과 스매싱에 경탄합니다.

 두 손바닥을 합친 크기의 비밀의 문을 일일이 따고 들어갈 용기와 끈기와 감각이 제겐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건 알아요. 한용운의 밤은 고요하고’, 서효인의 가정집’, 임지은의 도로 주행’, 김소연의 바깥’, 윤동주의 병원’, 성미정의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유병록의 기분 전환같은 시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계절과 시기 탓인지 김영랑의 오매-- 단풍 들것네(장사익 노래 버전도 들어보세요~)도 입에 착착 감기더라고요. 추수를 앞두고 안팎으로 바빴을 아낙네의 삶도 짐작이 되고, 어쩌면 찬바람이 불면 헐벗은 사람은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온기와 열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경작과 추수의 결산을 봐야 하니까요. 잠시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가을을 제대로 즐기는, 평온한 일상이 허락되기를 기도합니다.

 

[밑줄긋기]

 

 시라는 것은 결국 어떤 마음과 생각을 다른 사물과 이미지를 경유하여 나타내는 일입니다. (33)

 

 우리의 삶은 아주 처절하고 처연한데, 도통 이겼다는 감각은 느끼기 어렵고, 그저 패배에 패배를 누적하며 이어질 뿐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우리의 자리를 지키며, 이 슬픈 무기를 끌어안은 채, 다가올 싸움을 준비하지요. (39)

 

 맥락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말과 만나는 일은 시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시라는 것은 맥락을 넘어서는 새로운 맥락을 만나는 일이고, 또한 시 읽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말과 맥락은 아주 긴밀해서, 오히려 거기서 벗어날 때 우리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시를 읽고, 그 생각을 말로 전하면서 맥락을 만들어가는 일이 더욱 소중하고 의미 있습니다. (50-52)

 

 사물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고요. 그게 어쩌면 좋은 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닐까요? (62)

 

 일어날 일도 없고 일어난 적도 없는 위기 상황을 계속 상상하며 저를 지킬 수 있는 논리를 떠올리는 거예요. 아마 제 안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상당히 크긴 큰 모양입니다. 이 경우 혼잣말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겠죠... 시는 혼잣말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겠죠... 시는 혼잣말이 혼잣말로 그치지 않고, 혼잣말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는, 그런 이상한 소통을 성립한다는 점에서 참 재미있는 양식입니다... 혼잣말인 채하면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죠. 부끄러움을 숨기고, 어쩐지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일할 수 있는 방식이 아마 시일 거예요. (78-80)

 

 마음이 괴롭고 속에 무엇인가 가득 차오르는 것 같은 순간에 넓고 큰물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끼기는 할 테고, 또 그냥 거기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겁니다... 우리가 물에서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은 물이 수면에 비친 것을 반사해주기 때문이겠죠. 거기 반사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또 어떤 마음일까요. 흐르는 물을 보며 잠시 생각해봅니다. (96; 98)

 

 낮에는 겨우 잊고 있던 어떤 생각이, 어둠이 찾아올 무렵에는 어둠과 함께 짙고 깊어질 때가 있죠. (101)

 

 그렇게 생각을 계속 이어가는 만큼, 어떤 마음은 계속 살아 있는 것일 테니까요. (144)

 

 몸이 평소와 다를 때는, 세계의 감각 또한 달라지는 법입니다. 당연하게 느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세상이 다가오는 거죠. 때로 예술작품에서 고통과 황홀감이 연결되는 것은 이런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7)

 

 열기를 지니는 것을 조금 두려워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게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런 성격이 저 자신의 대인관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이상한 실망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열기를 피하는 편이 저 자신을 지키기에는 더 도움이 되는 거죠. (201)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여전히 저는 자신이 변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벅차오르면서도 그만큼 두려운 것입니다. 평온함을 주는 것이면서 우리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죠... 저의 보신 욕구가 사랑에 대한 열정보다 큰 것일 수도 있고요. (223-225)

 

 시는 우리가 잊고 사는 어떤 기분을 유심히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249)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참지 못하고, 계속 벗어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가 많았고, 저 자신을 자주 부끄러워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기혐오가 오히려 저에게는 힘의 근원이 되어주기도 했거든요. 시인으로 사는 일은 끊임없이 자기를 미워하고, 어제의 자신과 멀어지는 일입니다.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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