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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도서]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이소영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5점

 새천년 그림 에세이가 힐링 열풍 속에 날개를 달게 되었다.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은 나는 활자로 뒤덮인 책장에 신물이 날 때면 그리로 날아들었다. 내가 놓치고 미처 알지 못한 구석구석을 말하는 섬세한 들려줌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갤러리에 가면 그림이 건네는 자극들에 말이 많아지곤 한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고 시력이 떨어지면서 시각 예술과 확연히 거리를 두고 지냈다. 밀려오는 대로 보지 않고 내가 주도해 보겠다는 속도 조절과 닫힌 고집. 올해는 그림과 나 사이를 막고 방해하는 요소가 추가되었다. 학부에서 그림을 전공했다는 김명신은 김건희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기획사를 운영했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여기저기 검은 손길을 지금도 뻗치는 중이다. 그의 이력을 알기 전에도 패션과 외모에서 표독스러움과 사이비 종교인의 느낌이 돌았었다. 이번에 유엔총회에서 연설문을 넘기며 눈을 흘기고 손가락질하며 물개박수를 유도하는 디렉팅 모습에 경악했다. 당신이 왜 거기 있어?

 추악하고 가림막 없이 전시되는 그의 과시와 병적 집착에 피로감이 높다. 무엇보다 미술과 기획에 환멸이 치솟는다. 아무래도 보이는 영역이다 보니 심리가 적나라하게 읽히는 까닭이다. 탐욕과 이기심과 변장으로 얼룩진 악마가 먹잇감으로 눈독 들이는 사업들에, 예술과 국격이 흘러내리고 있다.

 나대고 설치는 꼴이 역겨워 미술과 그림 전시와 멀리 지내고 싶었다. 인물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부정이 엉뚱한 데로 불길이 붙었던 것 같다. 이런 나머지 이소영의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은 불편한 마음으로, 싸우듯이 읽어나갔다. 정상이 없는 듯한 기괴하고 뒤틀리고 원색적인 그림 소개에 마음이 살얼음판을 걸었다. 글은 왜 이렇게 꽁지를 자꾸 내리고 머뭇거리지, 과연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유명세 작가의 브랜딩 잘한 책으로 싱겁게 넘기던 손길이 3부로 넘어가면서 바뀌었다. 대부분 처음 접하는 예술가들이고 저마다 다름은 물론이거니와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은 만큼 조심스러운 소개가 나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비워진 부분을 나 스스로 채우고 있었다. 어느 때는 연필로 흐릿하게 슬쩍, 또 다른 때는 페인트로 굵직하게 내 이야기를 덧칠하며 동반하게 되었다.

 예전에 불편하기만 했던 여성 누드화에서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눈부신 생명과 존엄한 몸이 건네는 무언의 말들이 있었다. 한 여성 작가의 콜라주 작업에서는 낯선 편안함과 위로를 받았다. 그냥 그 자체를 삶으로 끌어안는 품이 바로 작품에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딱딱해야 할 돌에서 온기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거친 감정 분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저쪽으로 건너가게 승화시키는 면모가 놀랍다.

 무엇보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채워나간 건지 그 마음이 애틋하고 존경스러웠다. 열악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꿈의 공간과 재연하고 싶은 세계로 묵묵히 캔버스를 채워간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에 여러 번 울컥했다.

 저 많은 예술가들이 말하지 않니. 알아주지 않아도 당장 거머쥘 수 없어도 오르는 창작가의 길에 대해서. 그것은 종교적이고 매일이 수련하는 의식과도 같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무게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며 오늘을 이어가는 깨알 같이 다른 존재임이 작품들마다 스쳤다. 생명과 목소리들이 삶을 고유하게 노래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하얀 종이 위에 스케치를 즐기고 곧잘 창작 콧노래를 부르던 흥과 끼 많은 나를 호출하며 스스로 포기해버린 일상의 예술성을 붙잡아본다. 앞으로는 놓치지 마.

 

***

 그러나 (앙리) 루소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사조에 휩쓸리거나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기보다는 꾸준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루소에게 창작하는 삶이란 용기와 인내, 끈기라는 외투를 매일 걸치는 일이었다. (16-17)

 

 공포에 둘러싸이고 하루하루가 슬픈 어린이들에게 이 (수용소 내) 미술수업은 유일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희망을 그리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훗날 생존한 제자들은 디커브랜다이스의 미술시간이 자신들에게 희망과 자유를 상상하는 법을 알려줬다고 말한다. (28)

 

 마음의 길이 열려 있다면 상대의 눈빛이 나를 향해 흘러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늘 낮은 자세다.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낮춰본 사람만이 지니는 삶의 깊이가 있다. (51)

 

 조지프 캠벨은 모든 사람에게는 축복의 은신처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축복의 공간,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 (페르낭드) 슈발에게는 이 꿈의 궁전 아니었을까? (109)

 가보지 않은 길을 그림 속에서만큼은 가보고, 당도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118)

 

 나의 시간을 흠뻑 쓰고 싶은 그림. 사람은 소중한 것에 시간을 바친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좋은 그림 앞에서는 내 시간을 내어준다. 소중한 시간을 오래, 함께 보내고 싶은 그림. 그림이 아름답거나 유쾌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독특한 그림, 처음 보는 그림, 불편한 그림 앞에서 오래 멈춰 있다. (140)

 그럴 때는 마음을 이동시키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내 정신을 이동시킬 피난처가 여럿 존재한다. 글쓰기 때문에 마음이 소진될 때는 미술로 마음을 옮겨서 감상한다. (236)

 

 글을 쓰는 삶, 엄마의 삶, 화가의 삶을 오가며 앤 라이언이 여러 삶의 무게에 부닺힐 때마다 그녀가 다양한 질문과 종이를 찢는 행위로 스트레스를 해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품을 볼 때마다 찢고 싶을 때까지 한없이 찢은 다음, ‘이제 붙여볼까?’ 하는 무수히 많은 다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156-157)

 좋은 도화지나 캔버스가 아니어도 표현할 수 있는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이 된다... 무뚝뚝하지만 알고 보면 속정 깊은 친구처럼, 단조로운 그림에도 깊은 이야기가 스며 있는 경우가 많다. (197-198)

 

 내가 빌 트레일러였다면, 내 인생을 남과 비교하느라 후회하거나, 농장 주인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는 분노보다는 위트가 있다. 그의 예술은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식으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피해자가 다시 고통받지 않는 방식으로 고통에 대해 말한다. (203)

 창작은 내 곁은 떠나 타자들에게 전달될 때 다양한 의미가 형성된다. (227)

 좋은 예술은, 각양각색 다른 꼴인 우리의 삶을 늘 보호한다고 믿는다. (249-250)

 

 무엇보다, 삶과 문장의 스타일은 억지로 만들 수 없다는 것... 나만의 특별한스타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니 삶과 글쓰기의 목표가 토레스 가르시아의 작품처럼 소박해지고, 편해졌다. 풍요롭게 느끼되 편안하게 표현하기. 이것이 토레스 가르시아가 일깨워준 나의 스타일이다.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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