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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각본

[도서] 헤어질 결심 각본

정서경,박찬욱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왜 그런 남자하고 결혼했습니까?"

 

-"나는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여름에 지인들이 관람하고 감상을 나누고 싶어 했던 영화 헤어질 결심을 계절이 바뀐 이후 대본으로 만났다. 성긴 활자가 실체가 되어 화면을 채우는 매직을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대본집을 딱 덮고 한 생각이 와아 있는 놈들이 더해. 아는 맛이 더한 법인가 봐였다.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나에게 없을 열망, 사랑의 불나방을 봐버렸다. 저런 열기와 빠져듦이, 어마 무시한 에너지가 감기를 호되게 앓은 뒤라 그런지 더 화끈하고 눈부시게 다가왔다.

 각본을 읽으며 인간 안에 꼭꼭 접어둔 욕망을 뜬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관계의 설정부터가 중년 이후의 허한 마음들을 찌릿하게 울릴 것 같다. 내가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겠다. 형사 해준은 그즈음의 남자가 가진 웬만한 사회적 기반을 지녔다. 인정받는 직업과 아이를 낳고 기르며 꾸준히 관계를 맺어온 실질적인 아내가 있다. 외형적으로는 나쁘지 않고 문제될 것 없다.

 하지만 한발 더 내딛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내 안정안은 전문직 종사자로 따로 떨어져 지내고 아이도 기숙학교에 다닌다. 아내를 위해 요리하고 서로를 챙기지만 익숙하고 편한 우정 같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여러 대화를 나누는 오피스 스파우즈, 이 주임의 존재가 걸리는 이유이다.

 주말 부부로서 함께 하나 해준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사건현장의 끔찍한 트라우마(살인과 폭력)가 낳은 일종의 직업병이고 말끔히 씻을 수 없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다. 흔들림과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품위 있는 형사라는 직분(페르소나)이 거의 그의 전부라는 걸 알 수 있다. 밤낮의 경계가 모호하고 긴장하고 언제든 싸울 태세로 무겁게 다녀야 하는 인생을 배정 받은 것이다.

 편안하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고 싶은 갈증이 심하다. 붉은 피를 지우고 잊게 할 청푸른 물결과 품의 안식이 그에게 절대적으로 고픈(헝거) 상태이다. 완전 안전 원전 지대에 위치한 아내 정안은 나이스하나 상징적으로도 그의 불안과 긴장 지수를 높이고 겉돌게 한다.

 해준이 인생의 안개장막에 걸려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해준은 운명의 덫에 걸린 피의자(의 비애)에게 방어막 없이 빠져들고 만다. 상시 지켜보고 상상하는 끝에 심장을 도둑맞아 버린다. 도둑맞는 순간 그것의 있음과 함께함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서래를 향한 해준의 마음을 키운 건 금지된 사랑(금지 선)에 있다고 본다. 유부남일 뿐 아니라 공적 관계임으로 내연 관계로 얽히면 안 되는 상황이 마음을 도리어 크게 지피지 않았을까. ‘실루엣으로 적당히 가려지고 꼿꼿하다로 은밀하게 숭모하면서.

 수려한 외모 외에도 중국의 혼성 문화에서 성장한 서래의 언행은 독특하다. 드라마나 사극으로 한국어를 배우다보니 매끄럽게 흘려듣기가 불가능하다. 색다른 억양과 어투는 사이렌처럼 몸을 포박하고 기억할만한 덩어리(핵심) 표현으로 매혹적으로 들린다. 사전과 번역 앱을 오가며 둘의 대화는 돈독하고 특별해진다. 틀에 박힌 일상과 권태의 외투를 벗게 자극하며 별식으로 입맛이 돌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너를 향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나를 깊게 한다.

 시각적인 강타는 물론이거니와 해준은 서래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듯하다. 서래가 받아 안은 자기보다 더 지독하고 큰 운명을 읽고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자신의 산이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지만 그녀의 산은 이 땅이 허락하지도, 마땅히 내주지도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원하는 산을 가질 수 없다. 이 어긋남이 이들 사이를 더 절절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해준에게는 죽은 듯한 잠이 간절한데 서래는 노인들에게 목소리와 손길로 평안함을 선사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동행한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함께 한다. 내내 잠이나 죽음과 가까이에 있던 까닭에, 마지막 바다 속 자결이 원형적으로 느껴지고 주도적이며 영원히 연결됨을 암시한다. 뗄레야 뗄 수 없고 죽어서 미결로 남아 끝나지 않은 용맹한사랑으로 새겨진다. 평소 소지하던 녹색 노트가 모래사장으로 전환되는 인상이다. 파도가 짓고 부수며 써나가는 진실들.

 해준과 서래가 스마트워치나 전화기에 끊임없이 기록하는 행위도 영화 속 또 다른 프레임이 되어 그들을 잇고 포개고 동시적으로 확장한다. 먼저 시작된 사랑에 해준이 서래를 용의자 선상에서 지우며 놓아주었다면, 뒤이은 사랑은 붕괴된 남자의 삶을 이전으로 돌려놓고 싶어 한다. 이미 단일한(소리)이 된 그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헤어짐으로써 용서 받는 가련한 사랑으로 재탄생한다. 아래로 파고 들어가는 서래의 몸짓이 우뚝 솟은 산을 이루는 이유일 거다. 기존의 소유하는 사랑을 넘어 믿음직하고 바람직한 남자를 마침내 자궁처럼 무덤처럼 품는다.

 

Our heart is restless 'til it rests in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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