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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 바이블

[도서] 엑셀 바이블

최준선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987년에 출간된, 소설가 최상규씨의 단편집입니다. 당시 한국 사회의 여러 인상적인 풍속 단면들을 재미있게 캐치한 수작들이 많습니다. 출판사는 정음사(正音社)입니다.

이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힐 만한 작품은 <뛰뛰클럽>입니다. 뛰고 또 뛰자는 뜻에서 상호가 저리 붙었는데, "클럽"은 오늘날 우리가 알 만한 그런 클럽(유흥업소 같은 것)이 전혀 아니고 그냥 자기네 회사를 가리킵니다. 이 클럽, 아니 회사가 뭐냐면 일종의 심부름센터, 혹은 십 몇 년 전 강남에서 유행한 대신맨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남이 할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성격이라면 빈집지키기라든가 꽃배달 대행(구혼자가 막무가내로 어느 여성에게 전달하는 거라서 요즘 같으면 스토킹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등 아주 다양합니다. 단 남의 사생활 캐기라든가 불륜 뒷조사는 불법이라서 취급 안 합니다.

사장님은 아주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서 불법의 ㅂ자만 나와도 질색을 하는데, 사실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수요가 높은 건 불법 사업 쪽입니다. 남의 뒤 캐기, 성매매, 도박 등... 35년 전과 지금 리스트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마약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정도이겠습니다. 그런데 불법 업종을 이처럼 모두 제외하고 의뢰를 받으면, 양적이나 질적으로나 푼돈벌이 용역밖에 안 들어옵니다. 사무실 임차료가 몇 달치나 밀려서 이번달 말이면 건물주에게 명도를 해 줘야 하는데 앞이 캄캄합니다.

빈집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오랜 단골(거액의 자산가 사모님)로부터 받았는데, 이집 딸을 자칭한 어느 처녀가 무단으로 들어와서는 거액의 현금을 들고나가는 사고가 터집니다. 사무실(뛰뛰클럽) 직원 김씨는 해당 여성이 집안 지리를 훤히 아는데다 가족앨범까지 열어 보이는 통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의뢰인인 사모님은 몇 년 전에 소식이 두절된 딸이 갑자기 왜 돌아왔겠냐며 펄펄 뛰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데... 김씨가 딸(이라던 처녀)의 인상 착의를 정확히 대자 마음이 흔들리더니 기한을 정해 딸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새로운 의뢰를 합니다. 거액의 성공보수도 제시하는데 그 돈이면 밀린 임차료도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편 새로 들어온 여직원은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보입니다. 어떤 대학 교수를 사랑했는데 그 집안에서 가난한 출신의 이 여성을 맹렬히 반대하여 혼담이 깨졌고 여성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 심부름센터에 취업한 건데, 사무실에서 이 신입한테 모 대학교 미술 수업 누드모델 알바를 시킵니다. 누드모델이 불법은 물론 아니지만 신입여사원한테 이런 업무를 배당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사장님이 착한 사람이라는 설정과 앞뒤가 좀 안 맞는데, 사무실 형편이 워낙 어렵다 보니 직원 입장에서 거절을 못 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 보니 수업을 지도하는 교수가 바로 그 전남친이었고 여직원은 완전히 멘탈이 나가게 됩니다. 교육기관 회화 수업 누드모델은 그나마 낫지만, 요즘은 극히 일부의 사진동호회에서 이른바 출사를 빙자하여 모델을 부른 후 퇴폐 음란 사진을 찍는 등 문제가 매우 심각합니다. 35년 전에는 아마 그런 일이 없었겠죠.

결말은 누구나 예상하듯 해피엔딩이지만 참 이 사회에는 이면에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구나 싶어서 씁쓸해집니다.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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