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한국어판 제 1권이 나온지 무려 3년 만에 2권이 나왔다. 아마 가이 리치 감독의 개봉 신작 영화가 어느 정도 관심을 모으는 시류에 편승하여. 진작부터 보유하고 있던 원고를 이참에 조판하여 시중에 낸 것이라 짐작해 본다. 곡절이야 뭐가 되었건 너무도 반가워 쌍수를 들어 환영할 뿐이고, 한편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더군다나 팬층도 이제는 어느 정도 두텁게 형성된 국내 사정을 감안했을 때, 시원시원히 햇볕을 보기가 아직도 애로가 있다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나는 1,2권을 모두 갖고 있지만, 우선 2권 리뷰들부터 차례로 올리겠다. 1권은 출간 당시 나오자마자 구입했으나, 셜록홈즈 수첩이 부착된 랩커버를 아직도 뜯지 않고 있는 사정이 있어서이다(그 이유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밝히든지).

 

<The new annotated...>는 이미 미국에서 오래 전에 출간된 것이고, 기억이나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스에서 해외도서 부문을 론칭할 때, 그 상품을 상당히 큰 할인폭으로 판매한 적이 있었다. 론칭 이벤트로 일정 금액 이상 구매시 포인트도 막 뿌리고 할 때여서 카트에 담아두고 망설이다가 결국 안 샀는데, 그게 지금도 내 카트에 남아 있다. 그리고 한 2년 뒤 북폴리오에서 승영조 선생 번역으로 한국어판 1권이 나왔던 것이다. 케이스가 없다 뿐 표지디자인과 규격까지 거의 똑같은데 정말 센스있게 잘한 처사라 생각된다.

 

사실 홈즈 스토리의 내용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아서 코난 도일 경 특유의 스타일을 잘 살린 원작 그대로를 음미하기 보다는, 일본 등에서 동양권 독자의 구미에 알맞게 가공하여 낸 '돈까스버전'이 이미 팬들의 뇌리에 자리잡은지라 컨텐츠의 승부로보다는 마케팅 쪽에 성패가 달린 것이 현실일 듯도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주석판의 성공 여부는 국내 독자들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제1권과 2권 모두 단편 모음이며, 또 전편이 다 수록되어 있다. 장편 4작품은 원서 체제대로 제 3권에 모두 수록되리라 예상).


'빈 집'(1)


이 단편은 홈즈가 모리아티 교수와의 결투 끝에 살아 돌아와서, 마침 런던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던 살인사건 하나의 해결과 아울러 자신의 신변상 위협을 제거한다는 내용의, 컴백 완충장치격 에피소드이다.

페이지를 넘겨 가며 계속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주석이라고 달린 것이 물론 나름 꽤나 진지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싱거운 유머나 장난기 가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모란 대령은 대체 왜 모리아티를 근거리에서 수행하지 않고 힘들게 벼랑 저 끝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나. 홈즈의 처치가 목적이었다면 두령을 보다 가까이에서 도왔어야 하지 않았나. 이 문제에 대해 트뤼도라는 이는 이런 설명을 하고 있다 한다(이하 모든 이런 류의 주석은 서지정보에도 나와 있듯 저자(주석자) 레슬리 클링거의 입으로 재인용되는 것이다).

 

...그는 조직의 제 2인자였다. 그가 거기 잠입한 목적은 홈즈가 만일 모리아티 교수의 손에 제거될 경우(그는 그럴 가능성을 반대쪽보다 더 높게 잡은 것), 즉시 교수를 저격하여 자신이 조직을 접수할 의도였다. 홈즈는 모리아티 교수의 죽음에 직접 책임이 없으며, 추락하는 교수를 원거리에서 쏜 건 모란 대령이었고, 이후 탐색 작업에서 교수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소령이 총상을 입은 시신을 은닉했기 때문이었다... 이 설명은, 사격의 명수인 그가 왜 홈즈를, 굳이 바위를 굴려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죽이려 하였는가에 대한 답도 제공할 수 있는데, 이는 한 번 사용한 총이 그 입구가 막혔기 때문이라는...

 

뭐 이런 식이다. 주석이라 하면 진지한 학자의 준엄한 평가 비슷한 것만 연상해서 잔뜩 긴장하던 독자는, 이 책에서 이런 식의 장난스럽게 발휘된 상상력을 통해 저자들과 같이 즐기며 지적 신명이 발산되는 컬트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런 대목도 있다.

...홈즈는 결투 후 신변을 숨겼는데 피렌체를 경유하여 티벳까지도 여행했으며 그곳에서 'head

lama'를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구르카 왕국(책에는 안 나와 있으나 네팔을 일컫는다. 아마 승영조 선생이 모르셨나 보다)의 침략 이후 티벳은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치 않았으며... 달라이라마, 판첸라마 어느 쪽도 head 라고는 불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차라리 가축 llama를 말하는 것이라고...

 

이쯤 되면 정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고, 영국인 홈즈가 과연 입국이 가능했을지의 사정을 따져 보며 당시 이 지역을 둘러싼 러시아나 대영제국, 청 제국의 외교사까지 팩트 중심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상식이 풍부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런 게 공부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책깨나 읽은 진지한 독자라면 대부분 다 아는 내용이지만). 참고로 가축 llama는 한국어로는 '야마'라고 써야 옳다.

 

이 책에는 원저자(거듭 말하지만 주석자이다. 텍스트 본문의 저자는 말할 것도 없이 도일 경이고)의 주석 말고도 역자 승 선생의 역주도 달려 있는데 그 역시 국내 독자에게 유익한 게 많다. 예를 들면, 영어 표현 the  line of least resistance 가 대체 뭐냐. 홈즈가 수사의 출발선상이라고한 그 의미에서. 이런 걸 역주를 통해 '이는 본래 물리학의 개념으로 자연은 낭비를 싫어하므로 최단, 최소의 이동경로를 택한다...'라는 식의 친절한 설명을 하고 있다(빨강색 부분은 정말 귀엽지 않은가? 물론 고대 어느 자연철학자의 말이겠지만). 내가 좀 덧붙이자면, 홈즈의 그 말은 '사건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데 가장 무리 없는 추리'를 뜻하는 것이다. '저항'이란 '말이 안 되는 부분'의 은유이고.

 

본래 도일 경은 이 홈즈 시리즈에 대해 그닥 큰 애착이 없어서 배경 설정 등에 있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기본 추리 플롯이야 이 작품의 진가가 거기 있으니만치 당연 옛날것치곤 치밀하지만). 그래서 자연 꼼꼼히 읽다 보면 앞뒤가 안 맞거나 부조리한 구석이 많이 드러났고, 이런 컬트적 주석은 그 때문에 호사가들 사이에서 회자된 것을 취합한 것이다. 허나 그게 다는 아니어서 박학다식한 다빈치적 지성인인 홈즈는 활약 도중에도 끊임없이 명대사를 내뱉는데 주석은 이럴 때 제 가치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셰익스피어의 <12야> 등 출전을 정확히 밝혀 주고 있고, 심지어 전 작품에서의 그 빈도수까지 일러 준다.

 

이 단편의 끝에는 '대공백기'라고 해서, 일단 사망처리와 함께 연재중단된 시리즈가 다시 재개되기까지의 사연과 그 시발점인 이 작품의 이런 저런 평론이 이어져 있다. 원어는 the Great Hiatus로 셜로키언들에게는 공인된 표현이다.

 

ps

이런 멋진 선물을 해준 당신, 정말 땡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

댓글쓰기
  • 앗. 선물 받으셨군요! 셜로키언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겠어요. 와..좋으시겠어요.

    2010.01.24 21:48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