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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모호성은 대물이건 접안이건 렌즈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을 쉬 곁에 들이지 않을 정도이다. 유럽인들은 이 동과 서에 걸친 제국 아닌 제국, 민족 아닌 민족단위에 대해 오랜 동안 공포감을 느껴 왔으며, 16세기 빈 포위 당시 종족, 종교의 절멸 위기에까지 빠질 뻔한 적도 있으니 차라리 열등감에 가까운 정서라고 해야 맞겠다. 보통 코카서스인종은 단지 자존의 충족을 위해 혀에 애써 거짓을 담는 방식을 싫어하므로, 터키는 의식적 왜곡의 대상은 아니었으며 오랜 동안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는 터프한 리얼리즘의 시야로 바라보아졌다. 예찬이든 혐오든 문학의 테마로 어떤 자리매김,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한 건 정말 이 제이슨 굿윈이라는 신예의 그것이 최초나 마찬가지 아닐까? 사학자라기보다 차라리 공장(工匠)에 가까웠던 오스트로고르스키는 프랑스어를 할 뿐 동구 출신이었고, 런치만 경이야 성실하고 사람 좋은 저널리스트적 학자일 뿐이며, 존 노리치 역시 그저 좀 깝치는 한량 아마츄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어떤 컬러를 담아 스토리가 있는 내러티브를 펼칠 의도와 능력으로 가득한 펜 놀림은 이 자의 그것이 처음인 양 느껴지는 것도, 그 오랜 존재의 파괴적 확실성을 감안하면 과문의 필연적 미숙함으로 간주되기가 차라리 십상일 것이나, 나로선 다른 더 좋은 설명과 논파가 있으면 들이대어 보라고 하고 싶다.

 

이미 이 연작, 차라리 장르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 첫째 편에서도 확인된 바 있었지만, 이 작품에서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재현되는 비잔스의 자태는 참 멋있다. '허물벗듯 주인을 바꾸는(37쪽)' 고혹적인 도시, '그 허물을 수집하는(같은 페이지)' 고고학자와 그를 둘러싼 각종 군상의 범죄적 욕망 등 풍광의 생생한 묘사 외에도 볼거리가 너무 많아 영화화의 손길이 무척이나 번거로울 것 같은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타일 탄탄하고 소재에 대한 확실한 장악 덕에 결코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는 작가의 저력이 있어 과연 어느 감독의 카메라워킹이 이 르포와 서사의 보고를 감당할지 참 귀추가 주목된다.

 

31쪽 중간 쯤에, 왜 폴란드가 터키의 숙적일까? 빈 포위 당시 기독교 세계는 거의 멸망의 위기에 처했으나 믿을 수 없는 용력과 지혜를 보유했던 얀 소비에스키 폴란드 국왕이, 마치 노준의를 구하러 온 급시우 송강처럼 적시에 터키군을 배후에서 공격하여, 합스부르크 왕실 뿐 아니라 전 유럽을 (최소한 무슬림화의 운명으로부터는)구원한 바 있다. 그를 두고 일컬음이며, 역사에서 이후 두 번 다시 그 슬라브와 라틴, 게르만 피처 사이에서 제 자리를 못 잡은 점이지대의 긍지 강한 민족이 대제국과 맞설 만큼 주역으로 등장한 적은 없다. 34쪽 맨 위 바이런, 미솔롱기온 1924는 1824의 잘못이고, 35쪽 중간 쯤 콩스탕틴(알제리 도시 어쩌구)의 군주 운운하는 건 역자의 착각 혹은 무식의 소치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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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eunbi

    メ \│/ メ
    メ ─ ● ─
    ────────
    - _ - _ - -
    2011년 저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찬 한해 되시길...^^

    2011.01.01 00:3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조르주

      으 eunbi님 이거 새해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시고요.
      올 한 해도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셔서 생각할 거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2011.01.05 02:33
  • 오우..재미나보이는 제목입니닷. 일단 찜부터..

    조르주님. 올 한해도 우리 재미나게 지냅시다. 벌써 알고지낸지도 4년째가 되는 거 같애요.ㅎㅎ

    2011.01.01 12:0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조르주

      4년이라고 하셔서 순간 놀랐는데요? 크.
      이따 카카오톡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2011.01.05 02:33
  • 이스탄불 관련 지도, 건축물, 요리 등 관련된 사진찾기놀이 즐기다가 포스팅 하나 했어요. ㅎㅎ

    2011.01.11 19:55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