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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메그레(매그레)를 읽는 중이나, 성선생역 뤼팽 19,20권을 급히 먼저 읽어줘야 할 일이 생겨 예상치 못한 번잡함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되레 그 김에, 또 게재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수단 겸해서, 다채롭고 일단 흥미로운 데다, 어린 시절부터의 오랜, 더 깊은 '교분'까지 있는 뤼팽으로도 테마의 방향을 수시 전환할 생각이다.

음... 일단 눈에 띄는 하나만 좀 이야기해 보자. 12쪽에 보면, '지역권'이라는 게 나온다. 주변 문장을 보면, (일일이 옮겨적기는 번거로우므로 그 대의만 딴다) 이주 및 시공에 관한 엄격한 지역권을 발판으로 해서.... 번창함을 누리는... 운운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이 지역권이란 게 뭔가. 이건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안다고 해도 정확하게 아는 경우가 드물다. 여기 간단히 정리해 보겠다(성선생은 이 부분에서 짧은 주석도 없이 넘어가고 있다).

지역이란, 지(地)가 역(役)을 받는다, 즉 봉사의 대상이 된다(be served)는 뜻이다. 다소 캐주얼하게 설명하자면, 봉사의 대상이 되는 건 부동산으로서의 토지이고, 봉사의 주체가 되는 건 대부분의 경우 역시 토지이다. 따라서 지역권은, A라는 땅이 B라는 에게, '너는 (전부건 일부건)나를 위한 일정 용도로 쓰여야만 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다만 어느 나라의 법제이건 물권의 주체는 사람일 수밖에 없으므로 실제로는 A땅의 소유자가 B땅의 소유자(혹은 여하한 종류의 물권보유자)를 향해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현행 민법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형태이지만, 이와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인역권'이라는 게 있다. 이것은 A라는 땅이 B라는 사람에게 일정 용도로 쓰임이 정당하게 보장되는 바탕의 권리이다. 봉사의 대상이 다이렉트로 사람이라는 게 차이이다. 그 사람이 예컨대 일정 산지에 들어가 땔감을 그러모은다든가 하는 식으로, 특정 땅에 대해 일정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보통 착각하는 것은, '지역'의 경우 '지'가 '역'을 한다는 식의, 주술구조로 무의식 중 오독하는 부분이다. 한자는 본래 융통성이 많은 조어시스템을 가지고도 있다지만, 이 경우 일인들의 무리한 coining이 후대에까지 부담을 주는 거 아닌가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이 소설은 프랑스가 그 배경인데, 독일법상의 제개념이 제한 없이 통할 수 있는지가 의문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겠다. 계약법상의 교묘한 제도, 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물권법상의 각종 장치들도, 그 근원을 따지고 들면, 평등한 시민 간의 다양한 생활 관계를 처리할 필요가 보다 절실했던 프랑스에서 연원한 것이 다수이다. 18세기 대망의 통합 민법 제정 논의가 일었을 무렵, 그 '그랜드마스터' 폰 자비니가 왜 '독일(어)민법의 성립이란 그 발달단계의 유치함에 미루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다소 충격적이라 할 폄하를 곁들인 논평을 가했을까? 현재의 모습은 그 실체의 과거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착시, 허상을 소급하여 유발하는 수가 왕왕 있다. 독일 법학의 그 웅대찬연함은 기실 역사가 선입견만큼 길지 못하며, 프랑스가 곧죽어도 저리 자존으로 똘똘 뭉치고 있음은 그 족보를 비교할 때 너희 독일놈들은 아직도 벼락출세한 돌상놈에 지나지 않는다는 뿌리깊은 자긍에 기인한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런 토지용도상의 제한을 규율하는 규범이, 예컨대 우리처럼 건축법 기타 각종의 도시-토지 공법(公法)이 아니라, 사법(私法)인 민법의 일부, 지역권이 그 수단이라는 점이다. 어떤가. 시민의 생활이란 역시 이처럼, (새로운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있는)개인간의 변경, 갱신으로도 자유로이 환골탈태가 가능한 민법에 의해 다스려짐이, 국가가 강력한 후견 노릇을 하는 구조보다 낫다고 보이지 않는지. 타율보다 자율이 우선하는 건 사물의 논리이자 자연의 이치이고, 물론 물권의 상당 규정은 그 중에서도 강행규정이라 사인의 융통이 자유롭지 않은 부분은 있지만, 강제와 재량, 공공과 민간의 차이는 엄존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아직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하고, 대도시에 인구가 지나치게 밀집하여 있다는 한계 때문에 사법적 규율의 확대란 여전히 지난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ps

말보단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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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조르주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잘 쓴 것 같다. 누가 뤼팽에서 민법 이야기를 뽑아 내겠음? 문학, 역사, 법학에 두루 통달해야 가능한 포스팅.

    2011.06.03 08:20 댓글쓰기
  • 피오니즈

    늘 감탄하고 갑니다^^

    2011.06.03 10:3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조르주

      ㅎㅎ 아 이런 너무 창피하군요^^
      감사합니다.

      2011.06.03 10:40
  • 첫눈

    잘 읽었습니다 ~^^
    교과서를 보는 기분이에요.
    눈만 꿈벅꿈벅
    ㅇㅇ;;

    저도 감탄에 한표!

    2011.06.04 21:51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