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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2

[도서] 히틀러 2

이언 커쇼 저/이희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커쇼의 이 대역작은 1999년 세상에 나오학계와 일반 독자 양쪽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고, 국내에 그로부터 10년 후에야 출간된 셈인 이 번역본 역시, 초심- 입문 레벨의 독자들에게는 물론, 어느 정도 경에 이른 전문가급들에게도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되곤 했다. 상품으로서 이 책은, 보다시피 꽤 고가인데, 제조 공정상의 문제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표지에 스크래치가 너무 많아, 2010년 1월 당시 구입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교환했던 기억이 있다(당시 예스24측에서도 내 일이 계기가 되어 출판사측에 이 대량의 제품 하자에 대해 문의했던 것으로 안다).

 

결코 낮은 가격이 아니므로 우연히라도 이 책에 눈을 준 독자라면 궁금해할 수 있다. "어느 레벨이라야 이 책을 읽기에 적합한가?" 답은, 원저의, 많이 멋부린 문장, 그닥 깔끔하게 정리되었다고 볼 수 없는 편제, 스타일의 묘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팩트의 오차 없는 전달' 등 숨어 있는 숱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마치 요령 있는 대학 교수가 학문의 엄정성을 해하지 않는 그 한계까지 충분히 쉽게  구어체로 헤쳐 준 듯한, 기본적으로 매끄럽고 쉬운 문장을 구사한 역자의 능력에 크게 힘입어, 열의와 진지함, 지성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전제 하에 초심자를 위한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수학의 정석'이란 참고서가 있었고, 아직도 있다. 이 책의 신판, 혹은 고등학교 수학 분야의 혁신적인 기본서가 새로 출간되었다고 해서, 내처 서점에 바로 달려가 그걸 사 볼 '예비역'이 있을까? 아무리 수학 애호가라고 해도 말이다. 단순 비교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이미 어느 정도 광범한 지식과 통찰을 갖춘 상급 독자에게 '기본서의 대결정판'이 나왔다는 뉴스는 그닥 회가 동하지 않는 미적지근한 미끼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다. 음... 허나 커쇼의 이 책은 내 경우 통독 후 과연 그 읽은 보람이 있구나 싶게 뿌듯했었다고 말하겠다. 그 방대한 본문의 분량 뿐 아니라, 일류 연구자의 저서는 그 내용 못지 않게 주석에 부기한 참고 문헌의 알참에서도 그 가치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커쇼의 책은 요아힘 페스트 이후 발군의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그 수많은 성과를 알차게도 종합하고 있다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과연 본문에의 몰입에 방해가 될 만큼(말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두 줄이 멀다하고 일견 사소하거나 당연한 사실 서술에조차 빼곡이 달린 그 무수한 주석(후주로 처리되어 있다)들은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세계적 환영을 받은 커쇼의 원저, 항상 좋은 책을 펴 내는 출판사 교양인과 민완 번역가 이 선생의 훌륭한 솜씨가 어우러진 이 '상품'이야말로, 양서는 이래야 한다는 한 표준을 내세우기에 충분하며 거금을 들여 책 사는 게 전혀 사치가 아님을 입증이라도 하는 묵직한 산 증언이라고나 하겠다.  결론적으로, 관심이 있으나  혼자의 기준으로 판단이 잘 안 서는 이에게는, 후회가 없는 구매일 것임을 확언의 모드로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덕담은 여기까지 하고 몇 가지 비판을 가해 보겠다. 일부는 원서에 대한, 일부는 번역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1) 커쇼의 텍스트 자체 문제

 

나는 이 책을 국내번역판 출간 이전에 이미 원서 형태로 읽었다(그랬음에도 또다시 이 번역판을 소장하기까지 한 데에는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상당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 즉 내가 충분히 공정성을 띤 독자라는 정당화 작업[?] 후에, 번역서에 대한 몇 가지 비판을 뒤에 좀 해 볼까 한다). 그 당시 읽고 난 직후의 소감은, 기존 '상식'의 재확인에서 온 다소의 실망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커쇼의 서술이 알려진 사실의 뻔한 재탕이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실망을 미리 잔뜩 장전하고 부정 일변의 마인드로 접근하려는 독자들을 충분히 의식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런 단권 전기류에서 기대하기(더군다나 페스트의 압권이 이미 이십 년 전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엔 좀 과하다 싶게. 새로운 팩트 사항들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최소한 그 배분 면에서도 적절한 균형 감각에 의해 요소요소에 잘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상식'이라고 표현한 건 그 점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확실히 느낀 점은, 예외야 물론 있고 평균 판단이란 대체로 반지성적 행동이겠지만, 과감히 떠들어보건대 영미권 저자들은 독일의 동등 집단에 비해 사고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래.

커쇼의 책은 소개한 팩트의 양, 그 정확성, 압도적으로 광범한 소스의 사용(단순히 시대가 뒤라는 이점을 제외하고도 그가 출전으로 삼은 문헌은 양적인 면에서 놀라울 지경이다) 면에서 페스트의 책을 능가한다. 이 책을 (어느 정도) 공부하는 자세로 읽은 독자라면, 책을 다 읽고 나서 일어서는 그 순간 그 엄청난 팩트들이 잘 정리된 상태로 머리에 남아 있다는 흐뭇함에 새삼 쾌감을 느낄 것이다(사실이므로 이 말은 두 번 되풀이한다).

. 러. 나.

팩트는 어디까지나 팩트일 뿐, 그 자체로는 역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책에서 기대하는 건 단순한 정보 확인이나 그 편집이 아닌, 일종의 감동이다.

전문가, 학자와 오타쿠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오타쿠 역시 단기 메모리에 저장된 각종의 지식은 빠삭하여, 일단 입을 열면 게서 나오는 건 많다. 허나 진정 중요한 것, 예컨대 누가 질문을 던지거나 했을 때, 오타쿠는 마치 상하로 쌓아 놓기만 한 책 무더기 중간에 있는 어느 한 권을 즉시 빼낼 수 없듯이, 타인이 필요한 질문에 즉각의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흔히 하는 말처럼,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며, 편집과 하이퍼링크가 절묘히 직교하는 두뇌조직 구조야말로 진정한 지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타쿠에 있어 또 하나 부족한 게 있다면 그건 비전과 통찰이다.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커쇼의 책은 물론 경탄이 나올 만한 대업적이며, 학자라고 하면 죽기 전에 이런 책 하나만 남겨도 여한이 없을 수준이라는 데에는 물론 동의한다. 허나, 이 책이 단순한 역사물을 넘어 인류의 심금을 울릴 만한 대작이냐는 점에 이르러서는 많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요아힘 페스트의 그 책에서는 지성인의 양심과 갈등, 고뇌, 통찰, 반성, 연대의식... 이 모든 것이 문장 한 줄 한 줄마다 녹아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동적인 책에도 두 가지 부류가 있는데, 잘 포장된 감동을 먹기 좋게 캡슐에 넣어 뿌려주는 책과(사실상 플라시보 이펙트에 지나지 않음), 저자의 그 심오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은 못해도 최소한 이 저자가 엄청 훌륭한 인격자구나 하는 느낌만큼은 전해 오는, 간접 교화의 기능이라도 충실히 수행하는 그런 명저도 있다. 요아힘 페스트는 팩트의 충실한 전달 외에도 독자에게 그런 위대한 정신의 울림을 안기는 면이 분명 있었다.

 

커쇼의 책에서는 말하자면 그런 감동이 없었고, 처음부터 역사 정신의 귀납 노력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지금까지도 내게 맴돈다.

역사서란, 드라이한 사실 전달을 통해, 굳이 저자의 개입, 직서가 없이도 독자 스스로 그 의도를 깨닫게 하는 고차원의 서술 기법을 동원할 수도 있다. 혹 그런 의도가 아니라도 가치중립과 실증정신에 바탕하여 해석은 독자의 몫에 맡긴 채, 과학적, 중성적 서술을 통해 드라마 한 편을 밀도 있게 구현할 수도 있다. 켜쇼 씨가 중간중간에 삽입하는, 왠지 통속적이고 구태의연한 단편적 개입만 없었다 치더라도 이 책은 최소한 그런 미덕으로 가득한 훌륭한 텍스트가 될 수 있었다. 그 설익은 문장들만 쏙 빼버려도 처지고 늘어진 flabby한 살 없이 멋진 몸매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불필요하고 주책스러운 코멘트를 통해 독자의 흥을 불필요하게 깨고 있는 것이다.

299~301쪽을 보면, '그의 정책 지침은 두루뭉술하고 변덕스러웠으며, 이런 그의 행동 동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현대 심리학자에게들에나 그 답을 물어 봐야 할 것'이라고 한다. 물어 보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이어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아이가 관대한 부모에게 떼를 쓰듯, 제욕구가 관철될 때까지 분노를 폭발시키는 유형'이라는, 아마 유능한 심리학자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는 아마츄어, 아니 그냥 동네 지나가는 아저씨의 젠체하는 말처럼 이 무거운 주제에 대한 안이한 나름 해석을 내리고 있다,.

독재자 히틀러의 멘탈은 물론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직근 역사의 상당 부분을 문명국, 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그 암흑기를 건너 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리드하는 그 선진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유아 상태의 성숙도만을 지닌 그런 자를 최고 지도자로 모시고 그 긴 기간을 보내었으며, 결국 그 무거운 책임까지 떠맡게 되었냐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건 히틀러가 "왜" 악당이냐는 게 아니다. 그가 희대의 살인마요, 인간이라기보다 악마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건 이미 당대의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바다. 그 지루한 단죄를 되풀이해 달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그런 악마가 괴테, 마르크스, 베토벤, 막스 플랑크의 후손 칠천만이 군집해 살던 땅에서 십 이 년 동안 가장 높은 집약도로 충성을 받는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다. 독자가 초등학생이 아닌데, 그 현란한 연설과 초기의 군사적 성공만으로. 죽은 독재자의  추종자가 행여 되기라도 할까봐 그런 바지런함을 떠는 걸까? 브레이비크 같은 병신이  그리 흔히 나오는 건 아니므로 안심해도 될 것 같다(그런 늙은 병신을 내가 최근에 하나 겪기는 했는데 이 책을 읽을 만한 지적 능력이 안 되므로 역시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안이한 답은 독자의 지성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현재 철저한 반성 속에 지구인의 모범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건실하게 살고 있는 독일 민중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나는 일전에 콜린 윌슨의 한 책에 대한 리뷰에서, 앵글로색슨계 저자들의 근거 없는 우월 의식을 지적한 바 있는데, 그에서 느낀 경박함 일말이 이 대작에서도 감지되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답을 그리 간단히 처리하고 마는 건 양심의 부재요 지성의 퇴보라 해도 괜찮다. 전체적으로 잘된 책에 문득문득 끼어드는 그런 전지적 작가식의 불필요한 간섭이 못내 개운치 않아 한 말이었다. 참고로, 페스트의 책에는 그의 지나친 겸손으로 명시적으로 드러나거나 분명한 매듭이 지어지진 않았으나, 성숙한 독자가 알아서 챙기라는 식의 간접적 언급은 있었다.

 

더군다나 희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 책의 서문과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장황하게, 내가 위에 적은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마치 자기가 책을 통해 알려 주었다는 듯 또 설교를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그 명시적인 답은 이 책에 없고, 거의 망라적이고 빠진 것 없이 제시 진열되어 있는 팩트사항을 통해 아주아주 눈 밝은 독자라면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거의 무망한 일임). 분명한 건 저자의 태평풍월을 읊는 듯한 그 뻔한 곡조 속에서는 아무 새로운 것도 찾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저자의 (이상한) 말처럼, 그 답은 역사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규명해야 할 몫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이 맞다고 치면 저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영역의 문제 해결 능력 한계를 스스로 폭로하는 자해행위를 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길게 적긴 했으나 이런 단점-단점이라면-은 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은 장점은 잘 조사된 팩트사항의 도도한 흐름이고, 막상 읽다 보면 저런 건 잘 보이지도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다음으로, 페스트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말 그대로 시간순서대로의 단선적 배열 구조를 취하고 있다, 모든 일이 정말 일어난 연대순으로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컨대 동부 전선에서의 초기 상황에 대한 실마리가 본격 개전, 이후 패퇴에 이르기까지 장면장면이 연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다. 워낙 팩트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보니, 다른 장면 설명 읽다 전환이 될 때 앞부분 상황이 어디까지 진척되었던지 잊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반면, 페스트의 책은 유기적 편집을 통해 이런 난점을 교묘하게 잘 피해가고 있었는데 이 점 역시 분명 이 책의 '퇴보' 사항이라고나 하겠다.

 

마지막으로, 과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기'가 맞냐는 것이다. 이는 특히 1권보다 이 2권에서 두드러지는데, 전기라고 하면 인물의 행적과 그 심리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져야 원칙이겠다, 히틀러의 심리 부분에 대해 대단히 피상적이거나 심지어 무책임하기까지 한 진단만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이미 지적했고, 유태인 학살에 대한 서술도 그런 점에서 그 비중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 구체적 악행들이 누구의 책임이냐 하는 문제는, 커쇼 교수보다 독일식 인과론에 대해선 아마 더 많이 배웠을 내가, 어느 카우잘리태트 이론을 동원하더라도 결국 그 독재자에게 객관적, 주관적 귀속이 가능하다는 점은 동의하고도 남음이 있고, 그 길다란 사항 나열 끝에 "물론 히틀러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으나..."라는 말을 마치 실증 공정의 정신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양 후렴처럼 덧붙이고 있다. 이는 부질없는 사족에 불과하며, 독자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새삼 설득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퉁명스런 반박을 해 주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 제 2권은 히틀러 개인 중심으로 고찰한 압축된 2차대전사라고 차라리 타이틀을 달았더라면 기대와 실질의 괴리에서 오는 (다소 부당한)실망은 없었을 터였다, 성격의 전환이 이루어졌을 때에 이 책은 그 본연의 (대단한) 장점이 더 실감나게 와 닿았을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이름 없는 한 시민, 병사, 소녀의 일기에서 몇 대목씩을 발췌하여 기층 민중 일반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한 시도는 생활사적 접근이라는 면에서도 매우 주목되는 참신한 시도였다(다만 과도한 일반화는 역시 금물이겠지만).

 

 

2) 번역의 문제

앞서 언급한 대로 대단히 매끄럽게 읽히는 게 특히 장점이고 별로 흠잡을 데가 없다. 한마디로 최고지만 그래도 몇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 역주

이 책에는 역주가 많이 없다. 교양인의 이 시리즈는 때로 성가실 만큼 자세한 역주가 달려 있던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여러 모로 비교되는 서비스 교수 著 '스탈린'의 경우, 역주도 역주지만 자세한 인물 소개 정리가 뒷페이지에 따로 되어 있어 편리한 점이 있었다(책세상에서 펴낸 페스트 著도 마찬가지. 고맙게도 그 책은 따로 카드까지 만들어 등장인물을 정리해 줬음).

311쪽 '총독령' 항목을 보자.

역자는 여기서 폴란드 지역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려는 의도로 고유성 지칭을 일절 제거한 알듯모를듯의 Generalgouvernement란 이름을 채용했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타당하다.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보자. 사실 저 명칭의 모호성은 '폴란드'란 글자가 없다는 것뿐이 아니다. 대체 '총독령'이란 행정단위가 뭔지 그 정체부터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독일어에 대해 손톱만큼의 소양이라도 있다면, 일단 gouvernement이 독일어가 아니라는 사실부터 바로 눈에 와 닿아야 정상이다. 저 단어는 얼른 봐도 '구베르너망'이라고 읽는 불어이며, 대체 ou라 발음하는 모음이 독어에는 없다는 점도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government 계열은 영국, 프랑스에서만 쓰이는 용어고, 독일어 '정부'는 Regierung이라고 한다.

 

이 총독령이란 개념은 본래 프랑스에서 발달했다. 프랑스가 대서양이나 인도 등지에 해외 영토를 '개척'하면, 각종의 송사나 세무 관리를 위해 역시 공권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부르봉 왕실은 이를 위해 '총독'을 파견한 것이고, 저 프랑스어에서 보듯 식민지에서의 행정이란 민정의 형평을 최대한 배려할 수가 없으므로 총괄의 효율을 우선에 두기에 governor general의 존재가 더 절실했던 것이다(물론 식민지 착취의 입장에서). 영국의 경우 그 땅이 '폐하'의 개인 영지가 아닌 다음에는, 이미 특허를 얻은 개인의 사업에 전속하는 땅에서 굳이 공무원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민간 우선의 원칙이 있었기에 '총독'의 존재까지는 필요치 않았으나, 19세기 인도 세포이 항쟁을 계기로 보다 효율적인 국가 차원의 개입이 낫다고 판단, 비로소 프랑스의 제도를 차용하여 '총독제'를 그 이름부터 고스란히 따온 것이다.

독일은 애초부터 해외 진출이 늦었으므로 용어 이전에 적용대상 자체가 없었던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낯선 총독령 개념을 적용하려니 마땅한 이름이 없어 그냥 프랑스식 외래어를 어색하게 도입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 더 의미심장한 사실은, 18세기 들어 부쩍 영토를 확장하고 들었던 로마노프 황실의 러시아 역시 이 프랑스식 시스템을 그대로 따와 곳곳에 '총독령'을 설치했다는 점인데,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두 나라와 함께 바로 이 폴란드를 갈라 먹을 때에도, 새로 얻은 영토에 바로 이 이름까지 똑같은 '총독령'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에는 '폴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게 큰 차이이긴 하다.

 

. 오역

비교적 큰 오역이 눈에 띈다.

462쪽을 보자.

이 부분을 보면 그레이엄 도널드 소령이 처음으로 헤스의 신병을 인수하여, 당사자의 거듭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에 속지 않은 채, "내가 지금 나치당 2인자 루돌프 헤스를 구금하고 있다는 점을 해밀튼 공에게 알리겠다"고 헤스에 말했다는 서술이 있다. 여기까진 문제 없다. 어떻게 알았을까? 당시는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해서 유명인사의 생김새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지도 않았을 텐데. 그건 바로 앞의 설명처럼, 도널드 소령이 처음부터 그가 몰고 온 메서슈미트의 자취를 레이더망을 통해 훤히 파악했었고, 피구금 장교의 진술이나 전후 상황으로 보아 그런 결론을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다. 대단히 날카롭고 영민한 사람이었음에 틀림 없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대 촌극이었기 때문이다

, 어쨌든 그건 책을 읽으면서 즐기면 되는 거고, 여기 치명적인 오역이 있다. 바로 뒤 문장, "그러나 도널드 소령은 해밀튼 공에게 (루돌프 헤스를 잡아두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는 않았다."라는 설명이 바로 붙어 있는 것이다.

직무 수행을 통해 지득하거나 추론한 사실은 상관에게 빠짐 없이 보고해야 하는 게 군인의 의무인데, 어떤 이유로 그는 이 점을 말하지 않았을까? 혹 자신의 추론이 아직 정보로서의 성숙한 가치가 없어 보고하기엔 적절치 않으니 상관의 직접 심문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참모는 무분별한 수다의 수준으로 떯어지지 않는 이상 어떠한 판단도 상사에게 알리는 게 본연의 자세이다. 정보 제공 차원에서도 그렇다. 이유 없는 해태는 직무유기로 다스려질 수 있다.

확실히 해밀튼 공이 헤스와의 면대면 접촉을 통해 비로소 진상을 알게 된 최초의 영국인이라면 뭔가 사연이 드라마틱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원서에는 분명, 도널드 소령이 해밀튼 공에게 (헤스 어쩌구를) 말하지 않았다는 서술은 단 한 마디도 없다. 아예 그 문장이 없는 것. 일단 이건 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의도이긴 헸고.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원칙에서 어긋나는 게 아니다(오히려 고수의 창의라고 하면 모를까).

문제는 이 책의 서술을  역자가 처음부터 잘못 이해한 탓에, 엉터리 같은 문장 하나를 괜히 삽입하여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쇼의 원문 자체가 좀 짜증나게 적혀 있기는 하다.

...though he had not been  until Donald's call aware of the apparent true identity.....

여기서 until 부터 call 까지를 따로 분리해 보면, 이해가 쉽다.

..,,,though he had not been  until Donald's call aware of the apparent true identity.....

도널드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해밀튼 공)은 그 (조종사의) apparent true identity 를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도널드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몰랐던 apparent true identity를 알았다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여기서 apparent true identity는, 물론, 알베르트 호른이 아니라 루돌프 헤스이다. 그렇다면 왜 apparent 라는 한정어를 붙였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아직은 도널드 소령의 추론에 불과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apparent는 반드시 true와 반대개념인 건 아니고, 경과에 따라 둘이 동일한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이어지는 단락을 보더라도, 해밀튼 공은 비로소 안(come to know) 게 아니라 긴가민가 했던 걸 convince된 걸로 서술되어 있다.


이런 자질구레한 걸 다 떠나서도, 해밀튼 공이 소령에게 보고를 들어 헤스 부분을 미리 귀띔 받았다는 건 그 부분 후주에 refer된 참고 문헌에도 버젓이 나오며, 이미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다, 역자는 이 부분 분명 개인적 무지로 인해 오역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 기타

독일식 군 편제에서 대장은 Generaloberst라고 한다. 영어로는 그냥 general, 혹은 의미의 혼동 우려가 있을 때 full general이라고 해 주는 수도 있다(현재 나토군 시스템 하에선 독일에 따로 두지 않음). 그런데, 구제도하의 특수 명칭을 표기할 때에는, 영어로 이걸 colonel general이라고 직역하기도 한다(독일군에서 대령이 Oberst임).

 



colonel general을 네이버 영어 사전에서 찾아 보면, '연대장'이라고 나온다는 사실(위 캡처).

뭔지 모르니까, 아마 대령(colonel)이 보통은 聯隊長인 데 착안, 聯'大長' 쯤으로 착각하고 저런 말도 안 되는 해설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하나 더. colonel general은, 북한군에서 대장과 중장 사이의 계급으로 '상장'이란 걸 하나 두는데. 그 계급의 영문 표기에 해당하기도 한다. 이는 헷갈리는 것이, 북한에서 그리 좋아한다는 고려 시대 장군의 계급이 상장군- 대장군- 장군의 순으로 내려갔다는 점 고려하면 순서가 뒤바뀐 셈이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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