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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칠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구사하는 명료한 문장과 정확한 문법은 언제나 누구에게건 귀감이 된다."는 다소 이례적이다 싶은 코멘트를 남긴 적이 있다. 이 전집의 역자인 정태원씨가 애틋하게도 추모하는 이가형 선생의 경우, 예전 아동용 해문추리문고의 한 발문에서 "크리스티 여사야말로 진정한 추리작가이며, 추리 문학에 기여한 공으로 기사(여성이므로 정확한 타이틀은 Dame이지만)작위를 받은 유일한 인사다. 코난 도일은 다른 사유로 기사가 되었을 뿐이다."라고 했었다. 이 말들에 동의하며,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 알 것 모를 것 다 아는 성숙한 입장으로 해당 작품들을 원형의 모습 그대로 검토해 볼 때 과연 탁월한 지적이었다 싶고 또 정확한 지식, 팩트의 적시였다고 여긴다.


도일의 문장은 짤막짤막하다. 작품의 구조를 살펴도 말이 안 되는 구성상의 허점이 자주 눈에 띈다. 다만 여러 사람이 지적하는 대로 캐릭터의 형상화 능력이 뛰어나며, 의뢰인이라든가 단역으로 등장시키는 인물들의 제시에 있어, 간단한 문장 몇으로 강렬한 인상이나 퍼스낼리티에 대한 깊은 통찰, 영감을 유발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위대한 문인이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토록 오래 접했건만 종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면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마력이 있다. 그가 심령현상에 상당 기간 천착했음은 이미 아동문고에도 나왔을 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익히 알려진 홈즈 시리즈에서마저 (미처 몰랐던) 독특한 인간적 풍취의 면면을 캐는 재미가 있게 만들 줄이야 또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르블랑(그는 분명 추리문학에 끼친 공으로 레종도뇌르를 수훈했다. 이건 확실하며 역시 아동문고 서문에도 나왔던 사항이다)도 뤼팽을 대중에 등장시키는 댓바람부터, 주인공으로 무럭무럭 자라야할 총아 괴도를 당국에 체포되게 하는 극단적 줄타기 기법을 선뵌 애크로배틱 스타일리스트이긴 하지만, 시대를 감안하고 또.. 그가 추리물에 기울인 성의의 수준을 감안(음....)했을 때 다소 놀랍다 싶게, 도일 경 역시 우리의 주인공을 심심찮게 위난에 빠뜨리는, 상술적  teasing의 능청을 태연히 부릴 줄 아는 센스덩어리이자 흥행사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The Final Problem'에서 그가 자신의 피조물에 갑작스러운  콜드 터키식 퇴장을 명한 것도, 다 그에 이미 대책없이 중독(中毒)된 독자(讀者)들의 이런저런 반응을 미리 계산에 넣고 벌인, 요란한, 그러나 악의 없는, 인질 사기극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본다. 정말 진력이 나서 (한편으로, 우연의 성공에 대한 다소의 신사적 가책과 장인적 수치심에 기인하기도 했을) 나름 공을 들였을 오랜 opus를 폐기했다기보다, 치밀한 스킴 하에 나중의 한 수 두 수를 다 상정하고 소설 내에 복선이란 건 너무 티 안 나는 선에서 다 꾸리고 박아 넣은 다음 떠들썩한 부고를 세상에 대해 발송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단 말. 이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인 BBC 셜록이 취하고 있는, 시즌의 종결마다 공연한 클리프행어 피처를 시청자의 짜증까지 감수하며 굳이 아슬아슬하게(보는 시청자로서 극 전개가  아슬아슬한 게 아니라 장사 참 이상하게 한다는 크리틱으로서의 관전적, 분석적 불안감) 저리 끌어나가는 애튀투드도, 100여 년 전 이 장난기 가득한 이상한 중년 신사 도일 경의 점잖지 못한 악취미에 어느 정도 그 정당화의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추측한다.


그레나다 시리즈의 이 편 영상화는 이런 원작의 의도와 분위기에 더해, 촬영 당시 실제로 건강에 중대한 위험을 겪고 있던 배우 제레미 브렛의,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육체적 징후(굳이 분장을 저리 할 필요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때문에 더더욱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그 와중에도 브렛의 정확하고 화려하며 지적인 연기는, 초신성처럼 화려한 광휘를 내다 그 내재 에너지의 공간 발산과 더불어 비장하게도 사멸해가는 진정한 천재의 위대한 퇴장 그 전주를 보는 것 같아 자못 숙연함의 마음가짐까지 들게 한다.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어째서 이런 배우를 여태까지 흘러가듯 무심히 봐 왔던 걸까? 부질없는 인기와 어리석은 대중이 허상으로 띄워내는 대세 따위에 내 판단력을 속절없이 오염시키는 걸 그토록 경계해왔으면서도, 두 눈 버젓이 뜨고도 천재의(결코 조용했다고는 못 할) 저런 마니페스토를 단지 '특이함'의 카테고리에만 처박아 두었던 걸까? (내가 브렛의 이미지에 대해 짧게 평했던 2년 전의 포스트가 이 카테고리에 여전히 남아 있음. 부끄러운 일이다)


가당치않은 자기합리화, 뭔 뜻인지 알지도 못하는 날것의 개념 덩어리들의 현학적 투기, 고작 결론이란 무식하고 더러운 거지떼 인생막장 패거리에의 비굴한 영합에 다름 아닌 주제에, 끝까지 거짓말이고 끝까지 베인 쉴드. 망상과 사기는 냉혹한 현실과의 피부접촉에서 처참한 균열과 붕괴를 겪게 마련이며, 낙오와 무능의 생떼를 '받아들일 능력' 따위는, 저기 불가촉천민 부락의 공중변소에나 갖다 던져 버리는 게 형이상학을 넘어 차라리 벌거벗은 생존의 비결이라고나 하겠다, 거지떼는 제 몸에 붙어 사는 이가 아까워서라도 멀쩡한 남에게까지 쓰레기 교리, 패배자의 도그마를 전도하게 마련이고, 그 수단은 어이 없는 곡해와 무식의 궤변 무한반복이다. 왜 저기, 사이비종교 퍼뜨리고 다니는 성치 못한 인간들이나 미친 다단계 패거리를 보면 바로 확인 가능할 것이다. 같은 말을 지겹지도 않은지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며, 복잡다단한 현상과 인간을 얼척 없는 초딩구호 몇 마디로 다 정리하고, 혼자 정신승리의 만세 삼창 이후 상황 끝이다. 낙오자 특유의 '너도 별 수 있을 줄 아냐?' 류의 물귀신 전법이 생의 달관이요 나잇값인 줄 아는 자, 씨도 안 먹힐 거짓말은 그저 자기 자식한테나 조곤조곤 해 주는 게 제 정직을 확증할 수 있는 방법 아니겠나 생각한다. 그리 좋은 교훈은 2세에게나 잔뜩 가르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만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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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조르주

    음 건 그렇고...

    조금 무리이긴 한데 낮에 한번 나가봐야겠다, 사람 얼마나 왔는지 분위기가 어떤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2012.05.23 04:4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조르주

    요새 과학서적에 완전 필이 꽂혀 예전것 최신간 할 것 없이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있다. 내일은 평행우주와 멀티.., 한때 유행했던 보다니스까지 한번 읊어보지.

    2012.05.23 04:46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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