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소설의 결말이 다 드러나 있으므로 읽는 분들은 주의 요망)장르소설인 추리물에서, 살인의 동기는 반드시, 여타의 구성에서보다 intensified된 것이라야만 할까? 이 경우는 법관의 기준에서, 그저 합리적인 의심을 삭일 수 있을 정도라거나, 그저 feasible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 본격물에서 더 강한 추동 팩터가 요구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예컨대 '죄와 벌'에서라면, 현실의 궁핍과 초인적(그의 판단으로) 세계관의 결합이,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살인의 정당화(주관적) 작업을 이루어내었고, 광인의 발작으로밖에 볼 수 없는 최악의 범행을, 독자의 지성은 그에 열렬한 공감을 보내며 때로는 추종의 위험 경계까지 범하기도 하는 일을, 우리는 지금껏 드물지 않게 목도해온 바다.


하우미스테리닷컴의 운영자분은 '동기가 약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허영 가득한 생활을 하다 보니 배우로서의 수입은 그 지출을 배겨내지 못하고,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를 눈 앞에 두고서는 협박범에 그 출신의 약점을 잡혔다... 대상은 사회적으로 평판이 나쁜 악덕 변호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혈기 넘치고 영리한 젊은이에게 범행의 동기로 충분하다. "그 방법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이 계획 자체가 위험했었소." 대담함은 그의 천성이었다는 식으로 작가(팀)은 마지막 합리화의 붓놀림을 마친다. 뭔가 마음이 찜찜하기는 했던지, 작가는 등장인물 소개란에 '누군가는 이 청년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고 적고 있기까지 하다! 이거 작가가 스포일링을 하고 있는 셈 아닌가? 사실 나는 십 수 년 전 소설을 읽을 때 이 대목에서 벌써 눈치를 챘었더랬다.


범행 도구의 은닉 장소가 의상실임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어디 숨겨 놓을 마땅한 장소가 없다는 말은 독자에게 합리화 작업의 일환으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전달되고 있다. 우리 생각으로는, 그렇게 큰 극장이라면 과연 작은 모자 하나 슬쩍 감춰둘 만한 장소가 없을까 하며, 못내 의구심을 떨치기 쉽지 않아 하리라는 생각 작가의 치밀한 머리 속에라고 스치지 않았겠는가. 사실 말이 안 되는 게, 그 변호사의 좁아터진(극장과 비교할 때) 아파트 안에서조차 은닉 장소를 발견하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극장 안을 샅샅이 수색한다는 작업 역시 그 결과의 신뢰성에 쉬 의존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 차라리 상식이다.


여하튼 숨길 데가 없다고 하니, 남은 장소는 의상실과 관리인 사무실 둘 중 하나다. 나는 처음에, 현장의 자그마한 소동에도 즉각 그 대처에 나설 의무가 있는 관리인이, 경찰이 출동한 후에야 무슨 일이냐는 듯 나서는 걸 보고 알리바이를 벌기 위한 페이크가 드러나 있다고까지 여겼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소설 중반 느닷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를 언급했고(살인은 전장에서 해야 들통이 안 나는 법!), 슈투트가르트 의사라는 맥거핀을 등장시켜 독자의 주의를 일단 산란한 후, 중반쯤에 다시 화학에 상당한 소양이 있는 의사(모든 의사가 그 정도로 다 화학지식에 능한 건 아니므로)를 또다시 등장시켜 이 전체적 feasibilty를 상승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누가, 극장에서 만인이 지켜 보는 배우의 손으로, 대담하게도 극장에서의 살인이 저질러졌다고 여기겠는가? 트릭은 고전의 충직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고지식하다 할 만큼이다.


내가 이 소설을 지금 다시 읽고 느낀 점은, 확실히 수학적 재능과 스토리 텔링 능력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며, 이 점 후기에 와서 극복되고 심지어 다른 차원에의 도약을 이루긴 하나 퀸의 초기작은 그 약점을 별로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는데....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조르주

    가장 졸렬한 의미에서의 ;합리화'란, 문제의 핵심을 애써 외면한 채 제 자신의 마음 편한 대로만 결론을 내려하는 심리에서, 얼토당토 않은 격언이나 원리를 견강부회로 끌여 대는 걸 두고 이름이다.

    2012.05.30 10:32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