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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잊지 못할 90년대 문화

(이 당시 이미 건강 악화의 기색이 역력한 제레미 브렛)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어린이문고에 이 작품이 수록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소장했던 버전에서는 심지어 '보헤미아의 스캔들'도 끼워 넣지 않았었다. 내가 그걸 읽은 건 다른 동네 살던 같은 반 친구한테서 빌린 책을 접하고서였는데, 그 읽고 난 소감은 '대단한 실망'이었던 걸로 아직까지 기억된다. 첫번째로,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겠으나, 고위층의(아직 그 고위층이 어느 정도 고위인지는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혼외정사를 다룬 그 소재가 그리 유쾌한 게 못 되었고, 다음으로 상당히 감탄하면서 읽었던 Poe의 '도둑맞은 편지1)'와 트릭의 그 기본 얼개가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대뜸 '이건 표절!'이라고 단정했었고, 아마도 홈즈에 대해 유치한 느낌과 경원감이 동시에 들기 시작한 게 대충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기억한다. 


몇 달 전 홈즈 전집을 정태원씨판으로 완독하고, 전부터 간직해 왔던 느낌이 수정을 거치거나, 정반대의 감상이 오래된 그것을 밀어내고 자리 잡는 묘한 체험을 하며, 확실히 오랜 독서가의 축복이란 바로 이런 데 있는 거구나 하는 점 새삼 깨달았다. 어려서의 체험이 전무한 모자라고 저주 받은 무지렁이라면 이 비슷한 짜릿한 희열이 가능하겠는가? 세상이 어찌 보면 참 불공평한 것이, 어려서 혜택을 못 받고 자란 그런 부류들은 지금도 그저 세상을 향한 불평 불만과 저주 말고는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없어, 여전히 가난 속에 함몰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겠다.


아마 이 작품은 1980년대 기준, 웬만한 어린이용 컬렉션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별로 없었을 줄 안다. 최소한 나는 광범위한 친구 범위 내에서 가정 탐방을 해  본 결과, 이 책이 서가 어디건 꽂혀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근데 그럴 만도 한 것이, 과연 이런 어설픈, 미스테리도 아니고 괴담 축에도 끼기 어렵고, 블랙 유머라고 보자니 그것도 아닌, 이런 이상한 작품을 애들한테 읽혀서, 아무리 간접적이고 비정형적인 경로로나마 유익한 영향을 끼칠 수가 있을까 하는 편집자의 고려가 있었지 않냐는, 지극히 긍정적이고 옹호 일색의 시선을 보낼 여지가 다분하다 여겨져서이다. 그래.


그런데 더 궁금했던 건, '과연 TV 시리즈로 옮겨진 이 작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였는데...  얼마 전에도 말했지만 영상매체상의 정전(canon)이라는 평가를 들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래나다 시리즈에서, 물론 후기로 갈수록 적정 범위 내에서의 각색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곤 있지만, 신중하고 권위 있는 솜씨와 태도를 유지하는 이 기획에서, 과연 어떻게 이 작품을 다루고 있는지가 매우 궁금해졌다는 말.(계속)



1) 우리말로야 저렇게 평범하지만, 원제는 제법 어려운 단어 purloin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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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조르주

    이거 내가 90년대에 본 시리즈임. 아, 재밌게 봤음. 진짜임.

    2012.08.19 23:00 댓글쓰기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