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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는 TV에서 무게 있고 작품성까지 겸비한 외산 미니시리즈들을 자주 방영해 주었다. 이 때는 SBS 채널이 개국하기 전이었고, EBS는 아직 KBS 3TV란 이름표를 달고 있을 적이었는데, MBC는 상대적으로 시청자의 최신 기호에 맞춘 드라마나 예능물 제작에 주력하고 있었으므로, 이런 상대적으로 고급의 기호는 KBS를 통해 주로 만족되었던 편 아니었나 기억한다. 내가 떠올리기로 MBC에서는 '폼페이 최후의 날1)' 정도가 고작이었고, 이 채널을 통해 외산 드라마를 본 게 극히 드물었다. 리처드 버튼이 죽었을 때 그가 만년에 찍은 '아메리카'를 틀어 준 것도 KBS였고, 5부작 'V'라든가 알렉스 헤일리 원작 '뿌리', 패트릭 스웨이지 등이 나왔던 '남과 북', 당시 한창 인기 좋았던 시드니 셀던 원작의 '게임의 여왕', '내일이 오면2)'  따위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다 KBS를 통해서였다. 나름 자랑스럽다 할 이런 내력을 현재 해당 방송국에 종사하는 인력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전쟁의 폭풍'은, 역시 KBS를 통해 국내에 방영되었고, 내가 너무 어렸을 적이라 국내의 반응이 어땠는지까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나이만 헛으로 먹은 무지렁이들이야 전혀 떠오르는 바 없을 터이나, 경우와 곳에 따라 '아는 사람은 아는' 것 같기도 해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애상'으로 불건강한 침체에 빠지려는 유혹으로부터는 그나마 좀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이 비슷한 시기에 해당 방송사는, 데 아미치스 원작의 '쿠오레'를 영상으로 옮긴,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3)의 작품을 틀어주기도 했는데, '전쟁의...'야 미국 ABC의 작품이라 또 그렇다고 하지만, 이탈리아의 드라마는 대체 그 존재를 어떻게 알고 용케 수입해 왔을까? 당시 편성 책임자의 안목이라는 게 오히려 요즘보다도 낫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지금 내가 이 TV극을 다시 보니, '드라마'의 비중도 물론 상당하지만, 이 정도로 사극 요소가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했었나 하는 점에 좀 놀라곤 한다. 2차 대전 입문용 다큐멘터리의 역할도 대신할 수 있겠다 할 만큼, 전쟁 각 국면의 이벤트를 상당한 공을 들여 재현하고 있다. 물론 의도가 항상 성공적인 건 아니어서, 자연스럽지도 감동적이지도 못하게 연출된 몇몇 장면은 보는 이에게 부담만 안기기도 한다. 어쨌든 구조상 별반 절실하지도 않지 싶은 파트를 꾸리는 데 이처럼이나 정성을 쏟았나 하는 생각에(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면), 재미보다 신기함을 주로 느끼며 보고 있는 중이다.


이 영상물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리뷰를 올리겠지만, 내가 지금 쓰고자 하는 건 원작 소설에 대한 소감이다. 번역된 게 없으므로 영어 원판을 보는 수밖에 없고, 혹 가능하다면 내가 직접 번역도 해 가며 여기 올려 볼 생각이다.(계속)



1) 잔인하거나 과한 노출을 담은 장면이 많아서, 너무 많은 삭제가 이뤄진 탓에 뭐가 뭔지도 잘 모르고 보던 기억이 있다. 10시가 훨씬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


2) MBC에서 '한국판'으로 번안해서 드라마로 제작하기도 했는데, 주연은 원미경씨였다.


3) 이 사람은 앤서니 퀘일('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브라이튼 대령 역을 한 그 사람)이 외교관이자 두 소년의 아버지로 나온 'MISUNDERSTOOD(1966)'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우리 나라에서 '천사의 시4)'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명화극장' 안내를 담당했던 고 정영일 선생이 그 번역을 피하고 굳이 영어로 '미쓰-언더스투드'라며 힘주어 강조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4)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1987)'는 이것과 아무 관계 없는 작품. 이 영화는 정말로 '천사들'이 캐릭터로 등장하고, 저 영화는 그냥 애들을 천사에 비긴 것(얼마 전 다시 보니까 애들이 전혀 귀엽지 않았음). 아무 연관도 없는 작품들이 제목으로 쌩뚱맞게 얽히는 건 일본인들의 '솜씨'가 많이 작용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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