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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들은 사극 하나를 찍어도 이리 만만찮은 솜씨를 보인다. 페텡을 일단 제외하면 프랑스 제3공화국 마지막 내각수반은 폴 레노인데, 그는 1940년 나치 독일의 대대적 진격 앞에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져내린 공화국 패망 무대의 한 주역을 맡은 비운의 인물이다.

이 사람이 그 운명의 날 신임 영국 수상 처칠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패배했으니, 공군력 원조를 부탁합니다. 안 그러면..." 이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 일이, 이 드라마에서 실감 나게 재연되고 있다. 

이날 오간 대사는 이것뿐이 아니라서, 처칠이 '예비대의 처분 향방'에 대해 질문하자, 이 공화국 최후의 집사는 '없다'는 짤막한 응답을 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전사(戰史)깨나 읽은 이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처칠은 귀족 출신이고 직업 정치인이었지만, 해군에 복무한 경력도 있었고, 유흥과 태만으로 인생과 가문의 자산을 낭비한 한량 유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캐릭터여서, 실제 전쟁 수행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전략과 전술을 자신이 직접 입안했다는 일화에서 잘 드러나듯, 군사 운용의 실무에 밝은 유능한 인물이었다. 반면,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세련된 매너를 지녔으며 빼어난 출신 성분까지 보유했던 만만찮은 엘리트 분자였던 레노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국가를 경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그저 기민하고 점잖기만 한 일개 변호사의 댄디한 스탠스를 고이 지켜주기에는, 시대 상황의 폭풍우가 너무도 험한 셈이었다. 아무튼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당시로서는 첨단에 가까운 '예비대 운용술'에 대해, 사명감과 책임의식, 영민한 지성을 모두 지닌 행운아였던 처칠은, 바로 그 실무와 일상의 대화 중에 이 어휘를 입에 올릴 만큼 절박한 현실 인식을 갖추고 있었으며, 반면 이 신사분은 그쪽으로 거의 개념이 없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추측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드라마가 사람 놀라게 하는 점은, 그런 디테일드한 상황까지도 드라마에 편입시켜 시청자에게(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애써 전달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노 수상 역에는 프랑스의 원로배우(당시에는 '원로'가 아니었겠지만) 자끄 엘렝이 캐스팅되었다. 이 사람은 리들리 스콧-러셀 크로 콤비가 2006년에 만나 찍은 '어느 멋진 순간(엉터리 제목임)'에 잠시 나왔고, 뤽 베송과 그 마누라 요보비치가 같이한 영화 '잔다르크(1999)'에도 신부로 출연한 적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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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조르주

    인물 사진은, 위에서 두번째가 공화국 내각 수반 폴 레노의 실제 모습, 그 아래는 이 드라마에서 윈스턴 처칠 역을 맡은 배우 하워드 랭의 (약간 젊은 시절) 사진이다. 착오 없으시길.

    2012.10.19 02:29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