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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맙다. 하나는, 이걸, 적당히 지직거리는 LP판처럼, VHS라는 고색창연한(...) 매체의 형태로 내게 선물해 준 친구녀석을 향한 감사다. 구매체를 통한 감상의 방법이, 언제나 우월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별개 쾌락의 한 영역을 엄연히 불가침의 차원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푸르트벵글러뿐 아니라 카라얀에도 역시 적용가능한 타당한 명제겠다(설사 그 대상이 비틀즈라 한들, 팝에는 이 말이 통하지 않는 것 또한 이상한 일). 


다른 하나야 당연, 이 미니시리즈 자체에 대해 바치는 감사와 찬사다. 추억을 향한 미치도록 목마른 갈증이, 이미 애저녁에 소진한 감성의 재고상태, 그 열악함의 압박을 상쇄하고도 남는, 증상을 치유함에 있어 칼 힐티의 처방전 따윈 코끼리에 던져진 비스킷 한 조각 정도로나 여겨지는 몇몇 나이깨나 먹은 불면증 환자들을 위한 충언을 내 한 말씀 드리자면, 그 포맷과 장르를 불문하고, 그저 아사코란, 세번째는 아니 만난 상태로 남겨 두시는 편이 백 번 만 번 현명하다는 것이다. 내가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 싶지만, 세 번이 뭔가, 아사코는 두 번도 만나질 말아야 한다. 아사코란 본래 객관적 실체가 없는 법이라, 사실 그 한 번의 체험이라는 것도 두뇌의 환상이 빚은 모호한 마블링에 지나지 않는다. 만나면 환멸로 인한 존재의 융해 붕괴를 겪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패가망신으로 이어지는 수도 있다(불륜, 이혼 청구 등등).


옛날 영화 하나 잘못 봤다기로서니 멘붕이 올 일까지야 없겠지만, 몇 안 되는 정신. 영혼적 밑천(돈이야 벌면 되는 거다)을 엄한 데다 기를 쓰고 날릴 이유도 없는 터라 하는 내 지금 하는 소리다. 헌데, 멘붕은 고사하고, 내가 이거 저기 페르시아 산의 노인한테 끌려가 무슬림식 회춘 처방이라도 받았는지 헷갈릴 만큼, 잔뜩 정신의 고양을 이끌어 주는 뿌듯한 체험, 유년 시절 그 활기와 아련한 추억을 4D 차원으로 리바이벌시켜 주는 고마운 한 팩의 일립틱 큐빅이 있으니, 추억이여 영원하라, 회색 뇌세포의 융털이여 잔뜩 곤두선 채 그 경직성을 유지하여, 이 펄펄 뛰는 월척성 최갑복이 그 애로를 미끄러져나가지 못하게, 그 표면장력과 마찰력을 맥시마이즈하라! 


음 여튼 그게 바로 이 '전쟁의 폭풍'이다. 나가봐야 해서 예서 끊어야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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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