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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힘이라는 게 참 무섭다. 1930년대에 나치 일당 역시 그리 무서운 기세로 느닷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섰던 것부터가, 당최 미디어의 공도 컸던 바 있으며, 뭐 그런 걸 떠나, 한번 어리석은 대중의 머리에 영상이란 계기를 통해 스테레오타입으로 각인된 링키지란 그리 쉽게 지워지거나 다른 걸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게 불변의 진리다.

           왼쪽이 빅터 헨리 대령(로버트 미첨 분), 오른쪽이 은행가 역을 맡은 바로 '그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드라마에도, 루이지 지아넬리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미국 은행가의 신분으로 등장하는데, 험악한 표정의 히틀러, 괴링(캐릭터들) 따위들과 나란히 앉아 있으니 이 특정 씬들이란 영락없는 '대부'의 한 장면 같다. 캐릭터 지아넬리는, 물론 성공한 사업가이자 서구 세계의 건전한 상식이 몸에 밴 신사의 설정이므로 분명 프로타고니스트 쪽인데도, 이 장면에 나오는 그 모습이 대뜸 떠올려주는 게 대체 왜 타탈리아, 바르시니, 코를레오네 같은 썩 마뜩찮은 이름들1)일까? 본래가, 거무스름한 피부색에 느끼한 쌍꺼풀과 두터운 입술의 얼굴의 조합이란, 명찰 없이도 이탈리안 디슨트의 족보 사항을 십리 사방에 고하기 충분하겠지만, 여기에, 포마드깨나 바른 기름진 흑발, 턱시도 아래 받쳐 입은 러플 셔츠 아이템이 추가로 코스에 얹히기만 하면, 이제 그냥 자동으로 마피아가 생각나야 하는 게 미디어에 순치된 대중의 운명인 걸로 그새 코드에 명시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내가 이 정도면 다른 이들의 사정이야 그저 불문가지일 뿐.


왼쪽부터 차례로, 캐릭터 겸 실존인물 리벤트롭 나치 독일 외무상(안톤 디프링 분), '빅터 헨리', '그 은행가', 괴링(라인하르트 콜데스너 분), 뒤통수만 클로스업된 히틀러(귄터 마이스너 분).


글쎄 그딴 사정이야 이리 놓이건 저리 뒤집어지건 사는데 지장이야 있을까만, 한 가지 무지무지하게 중요한 사항을 문득 발견해서 지금부터 썰 좀 풀려고 한다.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어 가만 더듬어 봤더니, 이 은행가 역을 맡은 배우는 다름 아닌, 1953년 앤 블리스와 듀오를 이뤄 세계 청춘들의 심금을 강타했던 추억2)의 그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주연을 맡은 바로 그 배우, 에드먼드 펄돔이었던 것이다. 이 드라마와 그 왕년의 히트상품 사이에는 30년의 간격이 존재하는데, 나이야 보는 바대로 자연법칙을 거스르지 못하고 먹을 대로 먹은 모습이지만, 왠지 세월의 채찍이 지시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기보단 제 의지대로 주변을 가꾸면서 시절을 보낸 여유 있는 풍채에, 청춘의 혈기도 몇 자락이 채 남아 있는 그런 건강한 모습이다. 미숙하고 철없는 풍(요즘 우리 나라 일부 기생충과에서 보듯)도 아니고, 단역이라면 분명 단역인 이 캐릭터 하나를 맡아서도, 카메라와 눈을 맞출 때마다 밀도 있고 섬세한, 고민깨나 하고 벌이는 흔적이 완연한 노숙한 연기를 또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 저런 게 인생 제대로 산 중년이구나, 중노년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절로 왔다. 저기 리들리 스콧의 2001년작 '한니발'에서 '무능한 코멘다토레(이름이 생각 안 난다)' 역을 맡은 지안카를로 지아니니의 중후한 모습도 얼핏 떠올려지지만, 그보다는 더 댄디한 분위기였다. 여튼, 이 드라마가 어느 정도 대단한 그랜드 바자회격 기획이었는지는, 이 정도 비중의 배우가 이런 단역에 모셔져 왔다는 사실로부터도 감이 쬐끔 잡힐 수 있다.

30년의 세월을 비교적 곱게 자신 왕년의 '황태자' 나리.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Db)


빌헬름 2세의 손자 중에 카를 프란츠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1953년작 영화, 혹은 영화의 전신이라 할 1920년대에 초연된 오페레타, 나아가 그 오페레타의 바탕이 된 19세기 희곡에 나오는 카를 황태자는, 저 황량한 반(半) 호풍(胡風)의 땅 동유럽 프로이센 호엔촐레른, 구(舊) 변경백 계승 가문과는 전혀 무관한, 남쪽으로 팍팍 내려와 오히려 한 밀레니엄 위로 거슬러 오른 시점 비교도 안 되던 명가 중 명가의 핏줄인 작센 공국의 당주격 신분인 가공의 캐릭터이며, 따라서 옛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황태자'는 참람된 호칭3)이다. 폐제 빌헬름의 손자는 제 두 살이 되던 해에 가문 차원의 명예를 제외한 모든 특권을 박탈4)당했으니, 망국 왕족의 처지라는 게 누구를 예외에 두고 비껴가는 법이란 오스트랄로피테쿠스5) 이래 없었는지라 이를 두고 비감에 젖을 일이야 자건 타건 얼척없을 뿐이다.(계속)



1) 설정상 악당뿐 아니라 주인공이든 뭐든, 깡패는 깡패. 범죄를 미화하지 말고, 미워하자들.

2) 추억에 대고 이데올로기(그나마 제대로 알지도 못함)를 갖다붙이는 모지리도 있다.

에드워드 펄돔은 직접 노래를 부르지는 못했으며. 은막이 아닌 실제 무대에서 주연을 맡았던 비슷한 또래의 위대한 당대 테너 마리오 란자가 이 부분을 대신하였다.

3) 이는 어디까지나 동양권의 번역어일 뿐이며, 원어는 그저 prince 혹은 Prinz . 1953년작 영화에서는 그나마 출신이 작센인지 뭔지에 대해서도 모호하게 얼버무림. '황태자'가 공부하는 터전인 하이델베르크는 당시 바덴 공국(통일 독일 제국 연방 구성원으로서의) 소속으로, 그의 국적과는 관계 없음.

4) 그러니 벌써 속한 시대부터가 타임라인상 한참 뒤에 놓인다

5) 엄연히 코 앞에 놓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라는 좋은 '껀수'를 놓아 두고 이게 무슨 흰소리인가? 쎈스 하고는.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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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조르주

    이 사람은 그런데 이탈리아계가 아니다. 영국 토박이이자 셰익스피어극 정통 배우 출신이다. 다음 편에서 상론.

    2012.10.24 07:00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