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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담은 그 정도로 하고 사실 이 동서판의 번역은 속된 말로 '골까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아, 참고로, 그냥 읽어 나가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잘 읽힌다. 잘 읽힐 수밖에 없는 건 스탠리 가드너의 문장 자체가 매우 평이하고 짧기 때문이다. 원문이 그런데 설사 번역자의 솜씨가 서투르다 한들 못마땅한 결과가 나오기는 오히려 어려운 법. 문제는 외국어 표기 이슈에 있다.


일단 이 소설을 펼치자마자 대뜸 당혹의 폭포로 다가오는 점은, 등장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제시된 '허리슨 박'이라는 괴명이다. 이 사람은 혹시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제이슨 리와 어떤 혈족, 인척 관계라도 맺은 신분일까? 시대를 많이 격하고서 문메이슨(비록 나이는 어리나 유명 인사이다)과는 혹 연이 없을지? 요즘 잘 안 나오시는 쿠웨이트 박 선생하고야 뭔 안면이 있어도 있을 것만 같은데? 아니 킴노박1)도 아닌 허리슨 박이라는 사람이 소설의 설정마따나 정치인으로 입후보하기란, 벌써 그 이름 때문에라도 한 30%는 표를 까먹고 들어갈 것만 같은 원초적 핸디캡2)이 발생하는 것 아님?(소설의 배경은 대략 1920년대) 그럼 이건 소설의 개연성 문제와도 직결되는 바 있다. 심각한 문제다. 그럼. 사람 이름이 허리슨 박이 뭔가, 대체. 차라리 후라이보이나 트위스트 김을 호출할 일이지.


허리슨 박은 자수성가한 한국계 미국인이 전혀 아니다. 원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arrison Burke.

그의 이름은 '해리슨 버크'였던 것. 오!

역자분이 설마 일어 외에는 아무 외국어도 해독할 능력이 안 되어서, 이처럼 닛뽄삘 풀풀 나는 흔적을 무려 책에 남겨 놓았으리라곤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고럼! 아마도 일종의 번안(등장인물의 한국화)풍을 시도하고자 한, 애국심과 항일 항미 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아무렴.


재미있는 번안(?) 흔적은 이뿐이 아니다. 소설을 온통 휘저어 놓을 것만 같던 무시무시한 포스의 악역 캐릭터가 템포 빠른 메이슨의 행보 덕에 뜸들임 없이 빨리도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무슨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로망에, 그것도 여성으로나 출연함직한 '베르타'다. 난 읽으면서 설마 이런 이름을 작가가 취했을까 싶어 재빨리 원서를 뒤져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그의 이름은,

Belter

였음.

아니 20세기 초반이라 벽지의 이민자가 대거 몰릴 시절도 아닌데, 이름도 아닌 성에 어떻게 '베르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베르'까지도 필요 없고 벌써 '타'에서 에러가 아니겠나! (계속)



1) Kim Novak. 매우 특이한 성씨이나 당연 한국과는 아무 상관 없다. 한국의 올드팬들 사이에는 이 체흐(체코) 혈통 여우의 이름을 두고 낡은 농담거리가 많이 있었다.


2) 실제로 1988년 공화당의 부시와 민주당의 듀카키스 후보가 맞불었을 때, 선거 기간 내내 메사추세츠 주지사 출신 이 리버럴 후보는 낮은 인기로 고전했다. 어떤 유권자는 심지어 "듀카키스는 발음하기조차 힘들다." 며 소수 민족 출신에 대한 차별성 멘트까지 날려 당시 분위기의 상징으로 남기도 했는데, 그는 이름에서 곧 알 수 있듯 그리스계 이민의 후손이다. 물론 그로부터 24년이 흐른 지금은 흑인 출신이 재선에까지 성공하는 등, 세상은 천지개벽이라 할 만한 변화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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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별

    예전에 번역되어 나온 걸 수정없이 출판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서 문화사는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서 좋지만 가끔 저런 번역부분이 당황하게 하죠. 그래서 모으다가 포기했습니다.

    2012.11.29 11:2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조르주

      네, 맞습니다. 수정없이 예전 책을 출판해서이겠죠. 모으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출판사라고나 할까요? ㅎ

      2012.11.29 15:18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