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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도서]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언제 나온 책인가 들여다 보니 꽤 오래된 책이긴 하다.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은 꼭 읽어보고는 싶었다. 익숙한 듯 친근(?)한 제목이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적힌 글귀여서 더 그랬나보다. 삶에 대한 희화화, 그리고 인생에 대해 내가 읊조리는 한 마디와 닮아서 이기호식의 갈팡질팡을 읽어보고 싶었다.

 

나쁜 소설
2006년에 나왔다고 한다면 이런 글의 형식이 특이하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당시엔 내가 책을 잘 안 읽었으므로 모르겠다. 지금도 독특하고 충분히 신선하다.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 그에 대한 가이드라니... 역시 마지막도 웃음 '풉' 주의! ㅎㅎㅎ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요리방송의 대본같다. 흙만 아니었다면 따라 해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흙을 가지고 요리를 한다는 발상이 웃겨서 가볍게만 생각했다. 화자만 가볍게 이야기하지, 독자는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볍게 시작해 어두운 단면을 건드리는 건, 이기호식 소설답다. 누군가와 흙(취향)을 공유하고 싶지만 사회로부터 철저한 소외, 고립 속에 홀로 된 이의 모습이 안타깝다. 

 

원주통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박경리 선생님께 소설 속의 작품을 다루는 건 허락을 받으신 걸까? 당시 유행이었던 과거의 <토지> 명성이 생생하게(ㅋ) 느껴진다.  자신들의 동네에 상당한 영향력이었던 <토지>의 원작자 박경리 선생님을 등에 업고 주목받고 싶었던 나의 마음과 현실은 200원도 없어 버스 조차 못 타는 상황이 대조적이다.
이또한 이기호작가답다 싶은 소설이다. 인물의 찌질함 역시 최근의 것이 아니라 그의 소설에 애초부터 스며들고 있었나보다. 

**
죄송합니다. '찌질함'은 작가님을 폄하하려는 단어가 아니고, 그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잡은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하기에 자꾸 거론합니다. ㅎㅎㅎ 

 

당신이 잠든 밤에
 이기호 작가의 다른 소설 <사과는 잘해요>를 떠올렸다. 그 소설에 나왔던 인물 '시봉'이란 이름이 이 소설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소설을 발단으로 발전시킨 소설이 <사과는 잘해요>는 아닐 런지. 두 인물의 케미가 마치 <사과는...>의 나와 시봉이의 케미를 떠올리게 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처럼 순수해보이다 못 해 약간은 바보같은 진만도 화가 나나 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객인 여학생이 자신에게 한 행동 때문이다. 그로부터 돈을 뜯어낼 심산으로 그녀의 차(?)와 부딪혀 보려 연습 해보지만 결국 처음본 학생들에게 진만과 시봉은 두들겨 맞고 돈도 뜯긴다. 찝찝하고 처참한 중에 또 코미디 같은 반전에 '빵!' 터진다.

 

게양대 로스-당신이 잠든 밤에 2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이럴 생각을 하지? 
정말 작가님도 이렇게 게양기 같은 데 매달려 봤을까? 싶을 정도로 이기호 작가의 발상은 독특하고 새롭다. 매달리기를 못 하는 나는 꿈도 못 꿀 자세지만, 게양대에 매달려 뻗치는 사랑, 그리고 직업정신(?), 추억 등 각자의 이야기는 진지하면서도 상상을 초월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전혀 평범하지 못한 세계다. 

 

수인
'최근에 세워진 '나의 안정감'에 생각지도 못 한 위협이 가해진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었다. 남동 남서부에 세운 핵발전소가 폭발해버렸다. 나라가 망했고, 세계 곳곳으로 국민들을 내보내는 중이다. 대한민국 안과 공항, 항구 곳곳이 난리가 났다. 
노력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기반이 완벽하게 사라진다면? 
그 와중에 세상에 무슨 일이 났는지도 모르고 산 속에서 소설을 쓰던 주인공 수인. 광화문 약속의 장소이자 만인의 아지트였던 교보문고에 곡괭이질을 하는 과정 과정은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나는 여기 왜 있는가?
이것을 난 왜 하는가?
앞으로 어떻게 무얼 할 것인가? 
라고 고민하지만, 교보문고의 벽에 곡괭이질을 해대는 수인의 모습은 그저 관성의 법칙처럼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외에 별 도리가 없어보이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다.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할머니가 보여준 귀신들에 대한 이야기같아서 소름이 끼쳤었다. 소설이 더해 갈수록 할머님의 과거와 한마디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삶에 대한 욕망이, 두려움이 나이가 어리다고 덜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다고 더 한 것도 아니다. 사는 내내 아품을 품고 살아야 했던 한 역사의 희생자인 할머니가 안타깝다. 그런 할머니를 통해 나는 배웠고, 나를 자라게 한 인물이 할머니였음을 두 번이나 말한다. 역사를 짊어졌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울음과 아픔을 우리가 디디고서야 지금을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소설가로써의 고뇌가 솔직하게 담겨져있다. 
자신은 '에라히 뿅!' 만큼만 살았으니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한다는 작가의 겸손함은 공감 못하겠다. 에라히 뿅! 치고는 너무나도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것 아닌가. 그런 삶이 있었기에 이기호만의 소설이 있었다는 걸 이 소설을 보니 알겠다. 그가 묘사한 폭력의 장면들, 찌질한 인물들의 속내, 대한민국의 역사의 한 장면들. 그의 삶을 통해 그는 드러내 보였다. 그가 받아낸 것들로 충실히 현실을 찔렀고, 소설 속에 담아냈다. 갈팡질팡하다가 이럴 줄 안 삶이라도 했는데, 우리 모두 그렇게 자신에게 닥친 일에 어쩔 수 없어 이리뛰고 저리뛰어 감당하며 여태껏 살아냈고 살아왔다.

 

그가 30대였을 때 썼을 이 책이 40대인 내게도 충분한 울림이 있었다. 소설가는 역시 삶을 쓰고 아픔을 쓰고 역사를 쓰고 사명이 있는 걸까? 이 책을 통해 그 삶을 그리고 역사를 읽고 또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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