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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도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피에르 아술린 저/정재곤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누구나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요즘 사진기는 비록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가 누구이건 간에 자동보정술로 멋진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게 설계 돼 있다. 이러한 자동 카메라가 보급됨으로써 예술 사진과 일반 사진의 차이를 구분짓는 것도 무의미하게 됐다. 카메라 동호회의 회원들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그들은 고급 카메라와 그래픽 사진 보정 프로그램의 힘을 보태 감탄이 나올만큼 멋진 사진을 만들어낸다. 다른 어떤 예술분야보다 사진 예술가의 입지가 흔들리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20세기 초는 달랐다. 당시 독일에서 라이카라는 현대식 소형 사진기가 생산된 후 그걸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일부 부유한 계층이었다. 더불어 사진찍는 행위를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시킨 사람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회화 예술의 기득권에 밀려 한동안 사진이 예술의 영역에서 무시받은적이 있었다. 허나, 앙리 카리티에 브레송같은 사진가들의 힘을 빌어 사진은 20세기 중반 예술의 한 분파로 성장한다. 브레송은 본래 회화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실공장집 아들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난 그는 대학진학에 실패했다는 특이한 경력을 제외하곤 부유층 자제로서 예술을 직업 아니면 평생에 전념해야할 하나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직업은 라이카를 구입한 이래로 사진 예술가의 길이다. 그건 당시엔 몹시도 용기 있는 일이었다. 초기의 어려움을 견디어 낸 것을 제외하곤 그가 선택한 사진 분야는 당시엔 신생의 예술 영역이었다. 남부러울게 없는 부르주아 집안의 자손이 집안의 넉넉한 지원을 발판삼아 예술가로서 대성할 영역을 찾는 일은 당시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브레송이 예술가를 목표로 둔 것은 20세기 초 프랑스라는 부르주아 사회에선 그닥 특별할 일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 가치가 있다. 바로 이 순간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삶은, 조금 후면 벌써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린다. 바로 이 점이 그의 라이카가 일깨워주는 진리이다." 21쪽


젊은 시절 브레송은 예술가로서 자가발전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멕시코로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여행을 통해 시야를 넓힌 그였지만 평생 전념해서 사진분야에 열정을 쏟아야만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애송이 예술가 지망생에 불과했다. 그에게 인생과 예술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뒤바뀌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군입대와 전쟁포로 생활, 그리고 수용소 탈주, 지인들의 죽음 등을 목격한 애송이 예술가는 인생철학을 부여잡는다.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그는 결심하기에 이른다. 브레송은 20세기 주요한 예술가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의 렌즈를 비켜간 유명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가운데 작가 알베르 카뮈의 사진은 오래전 내가 만난 브레송의 가장 친숙한 사진이다. 담배를 물고 코트깃을 올린 카뮈의 초상은 인상적이다. 단순히 외양적인 부분만을 담지 않고, 조작이나 연출된 느낌이 일지 않는 사진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인물초상에서 이러한 느낌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는 인물사진을 찍을 때 상대가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에는 절대로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외양 뿐 아니라, 진실된 내면까지 포착하려 했기에 기회가 오지 않으면 셔터를 누르는 일을 삼갔다. 라이카를 통해서 세상과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전념했다. 어느 인터뷰를 통해 브레송은 이 세상에서 모든 순간은 결정적이란 명언을 남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란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일이란 사실을 대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유일하게 영향을 주었던 사진이다. 거기엔 강렬함과 솔직함, 삶의 환희, 경이가 담겨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눈이 부실 정도이다. 형식의 완벽함, 삶의 의미, 남다른 전율감.... 나는 어떻게 이런 사진을 기계로 찍을 수 있었을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누가 내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뭘 하고 있어, 이 게으름뱅이!'" 111쪽

20세기 중요한 순간마다, 그 결정적 순간들마다, 브레송은 사진가로 입회했다. 전세계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생각하고 작업했던 그의 역량은 놀랍다. 그는 시대의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해 한 세기를 동분서주한 사진작가였다. 그는 언제나 카메라와 사진 뒤에 숨었고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려들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이 이름붙인 어떠한 예술분파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동료이자 선배이기도 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조언을 따른 덕분이다. 일찍이 로버트 카파는 생전에 그에게 세상 사람들이 붙이는 딱지를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일순간 기분은 좋겠지만, 그것이 예술가를 속박하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브레송은 카파의 조언을 잘 받아들였고, 그는 일평생 어느 정치적 주의에도 포섭되지 않았고 어떤 장르에도 자신의 사진을 가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정치적으론 무정부주의자였다. 안쪽 호주머니에 비닐에 싼 라이카 사진기를 담고 다닌 것으로 사진가로서의 임무를 잃지 않았다. 그러한 그의 노고 덕분에 오늘 우리는 20세기의 흘러간 시간들을 영원속에 가두워두고 내내 꺼내볼 수 있게 된 게다.

브레송이 들고 다니던 그 조그만 라이카를 보면서,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오기 위해선 장비가 아닌 그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다. 예술이란 모름지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다른 시선을 두는 일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자 해석이다.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자. 좋은 사진은 그때서야 찍을 수 있다. 멋진 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세상을 보는 내 눈과 마음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괜한 장비탓은 그만하고 말이다. 브레송의 소박한 라이카가 내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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