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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테러

[도서] 여자들의 테러

브래디 미카코 저/노수경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여자들의 테러'는 서로 다른 장소에 살았으나 각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여성 투사들에 관한 책이다.

책의 표지에는 각각의 실로 직조한 꽃이 그려져 있는데, 이게 꽤나 상징적인 디자인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들이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는 마치 연작 소설, 하나의 옴니버스같이 읽힌다. 그것은 그녀들이 비슷한 적과 싸웠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적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3명이다.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던, 그러나 사회에서는 존재 자체도 없었던 무자격자 가네키 후미코. 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서프러제트 에밀리 데이비슨,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부활절 봉기에 뛰어든 빼어난 저격수 마거릿 스키니더.

1900년 초반의 이야기들이지만, 이야기는 시간을 제약을 뛰어넘어 현실을 관통한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일까? 나쁜 사상에 물든 여자들이 나라를 파괴하려 한다. 신문은 서프러제트의 활동을 선정적으로 다루었다. (19P)

서프러제트 활동이 과격화되면서 정치가들은 왜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소리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성들의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서프러제트의 행동 자체가 여성의 특징인 불안정하고 히스테릭한 성질을 보여준다고 했다. (62P)

(...) 서프러제트란 인기 없는 외로운 여자들의 모임이라고 했을 정도다. (63P)

에밀리 데이비슨의 이야기를 읽으며, 점점 그녀가 가진 용기와 담대함에 경이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에밀리는 "나는 어쩐지 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 (96P) 라고 생각하였으며, 그 생각이 허투가 아니었다는 것을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그녀는 의회의사당 안으로 세 번이나 몰래 잠입을 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투쟁하여 물대포를 맞았으며, 단식하고, 투신 자살을 기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끝내 엡섬 더비(Epsom Derby)에서 여성참정권을 상징하는 깃발을 꽂은 후 국왕의 말 앞에 뛰어 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도덕이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며, 지배 계급을 그 위치에 고정하고 유지하기 위한 '계급 도덕'이라는 것을 후미코는 간파했다. 후미코에게 계급이란 부자와 빈자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지배 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계급이 있었다. (49P)

따라서 나는 인간 위에, 아니 자기 자신 위에 있는 '천직'이나 '사명'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자신의 행위를 다루는 유일한 법칙이며 명령입니다. (...중략)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봤을 때는 무슨 주의인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 뿐입니다. (234P)

일찍이 계급 사회에 대해 깨우친 가네다 후미코는 누구보다 예리하고 빛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박열의 시를 읽고 그에게 반해 결혼하게 되고 폭탄 테러를 기획하다 결국 옥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사상의 전향을 강요받고서도 절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것은 사상을 위해서, 이상을 위해서도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건 선택(226P)이었다. 그리고 후미코는 옥 중에서 자살하게 된다. 가네다 후미코는 자신 그 자체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아나키스트 그 자체였다.

 

주권의 회복. 통치자에게서, 부자에게서, 기득권층에게서 주권을 돌려받는다. 독립이란 스스로 제 인생의 주권을 돌려받는 것이다. 살려달라고 부탁해서 어쩌자는 거냐.

총을 들고 다이너마이트를 배에 감고 살아가라.

삶의 주권은 나에게 있으니. (44P)

내가 쏘는 모든 총탄이 공화국의 독립 선언이다. (158P)

아일랜드의 봉기는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아일랜드인들은 겨우 일주일 동안의 봉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16명의 아일랜드인을 처형했다는 소식에 분노했다.(249P)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조차 싸우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책 속의 여자들의 테러, 그녀들의 투쟁은 소설처럼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녀들은 죽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운다. 하지만 한번의 혁명이 실패했다고, 한번의 투쟁이 실패했다고 그걸 '실패'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이 그 때에 느꼈던 낭패감, 허망감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조금의 불씨만 남아있다면 언제고 다시금 타오르는 게 불길이다. 그리고 나는 책을 보면서 그러한 불씨를 느꼈다.

때론 세상은 아무리 투쟁해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것도 같다. 뉴스에는 하루걸러 하루 혐오적인 뉴스와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인터넷에는 분노에 가득찬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도 한다.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내가 나로써 나의 권리를 찾아서 사는 게 때로는 까마득하고 요원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실패해도 단지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걸 책은 보여준다.

내가 나라는 여성으로 단지 존재하기 위한 자유와 권리의 값은 너무나도 비싸다. 그리고 나는 책에 나오는 여성들에게 그 값을 빚졌다. 빚을 갚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 준 너무나도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은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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