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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도서] 단어의 집

안희연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안희연 시인의 에세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두근두근했다.

언어의 마술사처럼, 일반인들이 잘 발견조차하지 못하는 날카로운 틈을 비집어 딱 맞는 하나의 단어를 찾는 사람. 내게 안희연 시인은 그런 이미지였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어려운 단어로 현학적인 척하지 않는 시인. 너무나도 쉽고 평이한 단어를 쓰는데, 문장으로 조립하면 놀라움을 안겨주는 시인. 아무튼 나의 팬심은 이 정도로 각설하고,

 


 

그녀의 새 책 '단어의 집'은 그동안 안희연 시인이 무수히 고민했을 법한, 단어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이 책에서만큼은 자신을 '단어 생활자'라고 소개한다.

책 이름이 '단어의 집' 인 만큼 이 책에서는 난생 처음 목격한 단어들도 많았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적산온도라는 단어. 우습게도 이 단어를 듣고 맨 처음 든 생각은 이랬다. 적산가옥이랑 연관이 있는 단어인가? (당연하게도 너무나 잘못 넘겨짚은 추측이었다...)

 


 

적산온도는 쉬이 말해 생물이 자라나기 위해 '적산' 즉 몸에 쌓아둔 온도이다. 이토록 과학적인 단어를 통해 '나의 피어남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라는 데까지 뻗어나간 사유가 놀랍다. 시인의 눈에는 모든 단어가 철학과 사유할 거리가 되나보다.

 

 

또한 삽수라는 말도 좋았다. 삽수는 삽목을 위해 필요한 잎이나 줄기를 일컫는데, 시인이 한 위와 같은 말이 좋았다. 신의 눈으로 보면 인간은 지구라는 화단에 심긴 삽수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인덱스를 붙여놓은 문장들.

'결핍이 도리어 빛나는 무늬를 만든다는 거, 모르며 사는 일도 허다하겠지'라는 그 말. 울림이 있는 말은 동시에 나에게 생각을 하게 만든다. 평생 모르고 살던 우둔한 그 사람이 바로 나 같기도 하고. 아픔과 결핍이 찾아올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들이닥쳤어야만 했는지, 늘 누군가를 원망하기만 하고 산 게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했다.

 


 

동시에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다가온 단어들도 있었다. 모루라는 단어. 흔히들 생각하는 대장간에 있는 그 딱딱하고 무거운 물체.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도 그를 '후려치는' 모루가 있다고, 시인은 자신을 후려치는 모루들을 소개한다. 눈이 오는 날, 라벤더 냄새가 나는 날. 그리고 어떤 날은 세상 전체가 모루로 변하기도 한다고. 책을 읽으며 나를 불현듯 후려치는 슬픔은 무어가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가 누군가의 슬픔을 후려치는 모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단어의 집'이라는 책이지만 시인이 쓴 책답게 단어가 아니어도 갖고 싶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다. '깨지기 직전의 어항 같고 무를 대로 무른 과일 같은 얼굴' (120P) 이라거나 '이제나저제나 울지 않는 사람은 무섭다. 울지 않기 위해 얼마나 큰 힘으로 제 속의 짐승을 억누르고 있을지 알기에' (124P) 라는 문장들. 때로는 나를 서늘하게 후벼파고, 어떤 때는 나를 다정하게 감싸기도 하는 단어와 문장들의 책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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