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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도서] 뉘앙스

성동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요 근래 기온이 부쩍 내려갔다. 비교적 따뜻한 남쪽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영하의 온도를 견디면서, 책을 읽는 동안 시인을 생각했다. 겨울이 유독 긴 시간처럼 여겨질 시인이, 올해 겨울은 잘 견디고 있는가 싶어서. 차에 산소통을 들고 다니고, 방한 제품으로 무장하지만, 추위 속에서 5분도 걷기가 힘들어 실내로만 다닐 시인을 떠올린다. 산책을 좋아하는 그가 많이 답답할 것 같았다.

아픈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 그건 단순한 걱정일까 연민일까. 걱정이 연민에 가까운 걸까 봐. 혹시라도 내 걱정이 당신을 아픈 사람으로 낙인 찍는 것처럼 느껴질까봐 저어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글도 좋아하고, 당신이라는 사람도 응원하므로 부디 내 걱정과 응원이 말보다는 마음으로 느껴지면 좋겠다. 내 감정이 기도보다는 마음에 가깝기를. 직선보다는 곡선같이 여겨지기를 바란다.

 



 

새 책이 나와서 너무 기뻤다. 이번 책은 바로 전작인 <아네모네>와 비슷한 적박을 두르고 있다. 성동혁 시인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색은 투명과 적색이다. <아네모네>의 표제작인 '아네모네'에 나오는 '붉은 제라늄 내 엉망인 심장'인 탓도 있겠지만, <6>에서도 주로 느낀 색깔은 투명과 적색이었다. 홍조, 나의 투우사―식사 기도, 붉은 광장. 붉은색은 시인에게 특히나 가까운 색이었을 것이다. 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표지를 갈라 내용을 살펴보면, 안에 실린 글들은 또 한없이 투명하다.

 

<어린이에게 받은 것들> 41P

'모두 삐뚤빼뚤하고 버릴 수 없으며' 라는 대목에서 누군가는 쉬이 여길 어린이의 마음을 소중히 대하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에게 '어린이'가 조금은 더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계속 소아과병동에 다니고 있으니까. 예전 인터뷰에서 몸안의 많은 곳이 기형이어서, 어릴 때부터 계속 다니던 병원을 다녀야만 한다던 그의 이야기를 봤다. 그에게 어린이는 애틋하고 안쓰럽지만 사랑스러운 존재겠지, 생각한다. 가끔 뾰족한 것들이 자라나도 어린이들은 그에게 "내 마음 뾰족한 가지를 치는 성실한 정원사" 일 것이다.

 


 

<오늘 본 나무들은 모두 트리 같아> 45P

글을 읽으며 시인의 에세이란 이런 것인가(이런 표현 싫어할 것같지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에세이집인데도 얼마나 시적이고 함축적인지. 소설보다 시가 쓰기에도, 읽기에도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에는 함축이 많기 때문이다. 그 행간을 읽어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일이겠지. 어디에도 답은 없겠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지만 시인이 그 글을 썼을 때의 마음으로 가닿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입원> 55P

또한 익숙한 글들이 꽤 있었다.

작가의 인스타를 오래도록 구독해왔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살펴보기도 했다. 무려 몇년 전 글에 '좋아요'가 눌러져있는 것을 보고 이때 좋아요도 눌렀단 말이야? 새삼 소회에 잠겼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얄팍한지. 그러나 그때에 느꼈던 감정을 지금 다시금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책 속에서 그는 아픈 이야기를 자주 한다. 당연하다. 아픔은 그의 삶의 일부니까. 아픈 것이 삶이 된다는 게 얼마나 고달플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독주회

너는 언제쯤 우리라는 말 안에서 까치발을 들고 나갈 거니

내 시집의 번역은 죽어서도 네가 맡겠지만

너 말고는 그 누구도

아픈 말만 하는 시인을 사랑하진 않을 것이다

시집 <6> 수록시

 

시에서도 그는 '언제쯤 우리라는 말에서 나갈 거냐고, 너 말고는 아픈 말만 하는 시인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우리'가 되고 싶다. 내게 그는 아픈 말만 하지 않는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을 위로 하는 사람이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 정말이야. 언젠가 어딘가가 아프겠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겠어" <구월> 137P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진심으로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 글을 읽지 않는 분들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요." <일부> 179P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남을 위로하는 사람의 말을 어떻게 기꺼이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건강을 기원해주는 말이 유독 진심으로 여겨진다. 일방적인 기도가 아닌 함께하는 마음같다.

또한 에세이에 나온 친구들에 대한 말들이 진심으로 뭉클했다. 아픈 시인을 업고 함께 등반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도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그들에게 환하고 밝고 아름다운 단어를 덧붙여주는 시인의 마음도 너무나도 투명하게 여겨졌다. ("친구가 왔다 가면 방이 환하다. 친구가 두고 간 빛으로 일주일을 지낼 걸 안다." <무제> 115P)

방한 제품을 사주는 엄마의 마음, 줄 서서 산 마스크를 아들에게 건네는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그가 친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두 똑같은 선에 서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염없이 남을 위하는 마음들을 가감없이 목격할 수 있어 좋았다.

 

 

많은 글들이 좋았지만, <부럽지도 부끄럽지도 않게> 148P 라는 글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가 원고료를 받으면 꽃을 산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꽃을 사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어느 순간부터 꽃을 사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인간은 꽃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

시인의 밥벌이, 아픔으로 인해 나갈 수 밖에 없는 비용, 시인의 가난은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시인의 말이 납처럼 내 마음을 억누른다. 시집은 최대한 빌리지 말고 사서 보자는 주의인데, 예술이라는 숭고한 이름 아래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 다정하고 아름다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 뉘앙스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하면 더 커지는 말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 옆을 지켜준 따뜻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에 건네고 싶은 책이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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