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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도서] 리아의 나라

앤 패디먼 저/이한중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해외여행 중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는 아니었는데, 지도와 번역기 앱은 말을 듣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그 나라 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가 전부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걷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길을 묻는 것뿐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국제 미아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영어를 통하는 친절한 사람을 만났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정말 세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었다. 고작 길을 잃었을 뿐인데도 두려워 말 그대로 ‘눈물이 줄줄’흘렀다.
그런데, 만약 내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아팠다면? 혹은 내 일행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도움이 필요했다면?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달라서 내가 하는 보디랭귀지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찌어찌 도움을 받은 것 같은데 그게 정말 도움인지도 모르겠다면? 내가 살겠다고 했던 행동이 그 나라에선 법으로 금지되어 처벌받는다고 한다면? 이 모든 게 잠깐의 해프닝이 아니라 매 순간 반복된다면? 나는 그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막막함을 이겨내고 버텨낼 자신이 있을까? 아마 나는 겁이 많아 차라리 삶을 포기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번엔 반대로 누군가 정말 간절하게 무언가를 요청한다고 치자. 그런데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이 하나도 안 통한다. 손짓 발짓해가며 부탁하길래 알아들은 대로 도와주는데 그걸 바란 게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해주는 걸 믿지 못하는 눈치다. 최대한 친절하고 쉽게 알려주려 했지만 날 믿지 않고 무서워한다. 그리고 자꾸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근데 내 상식에선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을 직업상 매주 만나야 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상대방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상식적이지 않은 게 그 사람에겐 상식일 수 있다고 믿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것도 자신 없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양쪽의 상황도 모두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리아의 가족과 병원(때로는 미국 사회) 모두 풀리지 않는 실을 잡고 당기기만 해서 더 세게 묶이기만 하는 것 같았다. 서로 거주고 받은 말들은 고장 난 번역기를 돌리는 것 같았다. 이유가 뭘까. 조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지 않고 말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 나의 세계에 맞춰 해석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석만 할 뿐 문화를 이해하는 중개인의 부재 때문이다. 나라의 시스템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뿐.
그런데 이걸 과연 미국과 몽족의 이야기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다. 타국의 난민이 입국한다고 했을 때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어땠나? 우리는 그들을 환영하긴 커녕 배척했다. 떠도는 흉흉한 소문을 사실 확인 없이 믿어버렸다. 그들이 받은 것들을 혜택이라고 역차별이라고 했다. 그들이 힘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만 하길 바랐다. 아무렇지 않게 부끄럼 하나 없이 그들을 혐오했다. 나라가 그랬을 뿐 나는 아니라고? 마음속에 아주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그런 태도는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냈나? 적어도 나는 아니었고 그래서 떳떳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이 책은 우리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를 말해준다.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지, 어떤 노력과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 어떤 실수를 할 수 있는지, 혐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과 그렇지 않을 경우 나올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 담담한 말투로.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처럼 책을 읽고 생각이 많아질지 모른다. 생각이 깊어지다 못해 머리가 아프고 울적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왜냐면 이제는 그 생각들이 이 모든 이해와 배움의 첫걸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지에 있던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모두 갖춘 책이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은 책의 모든 미덕을 갖춘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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