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당신이 옳다 (리커버판)

[도서] 당신이 옳다 (리커버판)

정혜신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정혜신이라는 사람을, 나는 세월호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연결해 기억하고 있다.

시사잡지을 매주 읽다보면, 우리가 쉽게 잊고 사는

마음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떠올리게 되는데,

그들을 위해 한결같이 활동하는 심리치유자는

오직 정혜신 그녀 뿐이었다.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저 사람은 참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낸 책의 제목이 <당신이 옳다>라고 했을 때

참 그녀다운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힘듦과 슬픔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자식을 잃고, 직장을 잃고 그런 어려움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많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괜히 책에서 안정을 얻고 싶어서 힐링북이 인기를 끌기도 하고,

소확행이니, 가성비갑이니 하며 쇼핑으로 풀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많은 노력을 해보지만 위로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었을 때,

왈칵 눈물이 먼저 떨어지는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

 

책의 서문을 특이하게도 남편 이명수가 썼다.

자신이 보는 정혜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꽤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사전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쓰고 감수해주고 조언을 해주고 함께 가고,

그들의 모습이 또 부러웠다.

 

그녀는 의사다. 정신과 의사.

그래서 처음엔 그도 다른 정신과 의사들처럼 "냉정한 의학 기능공"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미로를 거쳐 이 자리에 왔는지는 알기 어려웠기에

그저 환자로 보았다는 것.

그랬던 그녀가 여러 사람을 만나며 변화한 과정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부부간에, 자녀를 키우면서 이런 경우 많이 겪었을 것이다.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면

어찌난 잘났는지 교과서적인 답을 해준다.

그럴땐 직장에서 억울하게 만든 사람보다 남편이 더 미워지고

그렇게 싸움을 한 경우도 한두번이 아닌 것같다.

전후사정을 따져 조언을 구한 것이 아니고

감정적 동조를 원했던 것인데 어찌 그런 반응을 보이냐고 했더니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냐며,

해결방법을 몰라서 그 부분을 의논한 줄 알았다며 오히려 억울해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런 경험 많이 한 것 같다.

나름 냉정하게 얘기한답시고

"친구도 잘못했지만 너도 잘못했지"라고 황희 정승 흉내를 낸 적은 없었던가.

우선 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고 다독여준 다음

차근차근 말했어도 늦지 않았을텐데.

치유의 말을 건네는 것이 먼저였다.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데 '너는 옳다'라고 지지해 주면 상대가 오판하지 않을까.

자만심에 빠져 결국 잘못되지 않을까.

쓴 약처럼 따끔한 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게 어른다운 걱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건 사람을 어리석고 표피적인 존재로만 상정하는

틀에 박힌 생각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오만한 시선이다.


나 역시 오만했던 것 같다.

아니면 아이에겐 무언가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줘야하는 거라고

초짜엄마는 그렇게 생각했었나보다.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 강력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우주라서 그런 것이다.

근사한 수식이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신비한 팩트다.

사람은 그 '한 사람'이라는 존재의 개별성 끝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세상의 전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든 결정적인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공감자, 치유자로서만 살아간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항상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은 그녀 조차도

언제나 내가 먼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무가 되면 내가 먼저 나가 떨어진다고 조언해준다.


언제나 나를 놓쳐선 안 된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그게 공감의 중요한 성공 비결이다.

공감하는 일은 응급실 당직 의사처럼 상대에게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의무가 되면 내가 먼저 나가떨어진다.


가끔 '니가 힘드니까 내가 이야기 들어줄께'라고 해서 만나고선

자꾸 내 얘기를 많이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

왜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하고

자꾸 내 얘기를 했을까.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감자가 되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다.


그녀는 서문에서 "경계를 품은 공감"을 강조했다.

경계를 침범하는 사람에게까지 공감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요즘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경계를 침범하는 행위다.

주권이 훼손되면 사람은 모욕감, 모멸감, 수치심과 함께 그로 인한 분노가 생긴다.

이런 감정들이 올라온다면 내 경계가 침범당하고 있다는 신호다.


경계가 침범당했다는 것은 분명한데,

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는 파괴적인 행위이고

상대는 이미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양쪽 모두에게 불행한 것 같은데 관계를 끊을 수 없다면?

이 부분의 답은 얻을 수 없어서 좀 아쉬웠다.

나 스스로 관계를 끊었다고 생각하면 될까?

참 어려운 일이다.


관계를 끊는 것이 너와 나를 동신에 보호하는 불가피한 선택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울며 겨자먹기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나에게는 파괴적인 행위고 상대에게는 자기 행동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양쪽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결국 또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지금의 나에게도 단 한 사람의 공감자가 필요하구나,

또 내가 우리 아이들에겐 단 한 사람의 공감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며 살아가야하는 우리를 위한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개론,

<당신이 옳다>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