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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무관심

[도서] 다정한 무관심

한승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의 작가 한승혜가 새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한승혜 작가가 엄청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뭔가 전문작가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던 것이 첫 책이 책 리뷰에 관한 것이어서

다른 분야의 책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냥 단순하게 책리뷰라고 생각하고 첫번째 책을 집어들었지만

한승혜 작가의 글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리뷰 비슷한걸 나도 이렇게 블로그에 끄적거리고 있지만

초등학생 일기장도 아니고 내맘에 들었다 안들었다 좋다 안좋다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와는 결이 다른 글들이었다.

어쨌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두번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책은 개인주의를 표방한 책으로,

다양한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입장을 정리한 글들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적나라하게 서술한 부분에서는

많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청 공정한척 배려하는척 하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특히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이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돌파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회피해왔던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자신이 누군지 알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규정짓는다. 성별, 학벌, 출신지, 결혼 여부 등으로 뭉뚱그려서 파악한다. 자신은 너무나 복잡한 반면, 타인은 너무나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각각의 정보마다 특정한 값을 설정해둔 다음, 해당 값에 인물을 가져다 맞춘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사람은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정보마다 특정 값을 설정하여 해당 값을 모두 더하는 것은 사람을 파악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보 값이 편견과 선입견에 근거하여 틀린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면, 그렇게 도출해낸 결과값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라떼세대가 되어 젊은 세대에게 늘 "창의성"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사실은 감정적 소모와 노력이 싫어서 이런 정보값을 입력해두고 잘난척 하며 살았다.

전직 대통령이 자주 말했던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시전하며

척하면 척이라고 사람을 내 마음대로 재단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엄청 섬세하고 복잡한 대상으로 대접해주길 바라면서

타인은 내가 마음대로 정한 잣대로 판단해버리진 않았는지.

그녀가 이 책을 펴낸 이유가 명확했고,

나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토록 고통을 겪어도 참았는데, 그렇게 참고 또 참으며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겨우 내 자리를 찾았는데, 드디어 인정받게 되었는데, 그게 모두 헛수고가 된다고? 남들은 이렇게 안 해도 된다고?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해온 건 다 뭐야? 하는 반발심에 더하여, 나 정도면 잘 버티고 있는 거지, 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평범한 많은 여성에 비해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거지, 하는 자기 위안을 페미니즘이 깨부수는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비루한 현실에서 발버둥치며 버티어온 자신의 노력과, 그로 인해 남자들의 세계에서 아주 미약하게나마 인정받았던 성과가 무너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여성 근로자가 많은 직장, 아니 압도적으로 많은 직장이면서 그 여성들의 기여도가 적지 않은 곳이다보니

다른 곳에서 힘들다는 "육아휴직"의 건수가 꽤 많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복직의 과정을 처리하는 부서로서

가끔은 "좀 심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동료들과 뒷담화를 하곤 했다.

해당 부서에서는 몇 개월 일을 같이 안해서 존재를 잊어가는 반면,

우리는 계속되는 행정처리 때문에 그 직원의 이름이 아주 친숙했던 아이러니한 경우였다.

두번의 출산, 육아휴직 후 퇴사를 했는데 같은 직군에서도 굉장히 뒷말이 많았다.

"나는 육아휴직이 뭔지도 모르고 애를 키웠다."

"나는 출산휴가가 두달이었다."

"임산부 단축근무라는게 뭐냐. 세상 좋아졌다."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약간의 분개(?)와 더불어

대체인력 수급에 전전긍긍했던 상황은 이해가 되지만

사실 아무도 그 직원이 퇴사했어야만 하는 사정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입밖에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그 직원에 대한 다양한 부정적 반응을 공유했었던 것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한국은 여러모로 큰 변화를 겪는 중이다. 정비해야 하는 제도와 돌아봐야 하는 약자들이 많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마음속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가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적었다시피 사이비 종교는 무엇으로든 대체될 수 있으며, 그러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단순히 해당 단체를 강제 해산시킨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다른 무엇보다 결핍과 불안함을 견뎌내는 개개인의 내면의 힘,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견디는 균형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진 숙제는 정말 많다.

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상되는 미래라는게 있었다.

영화,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펜데믹 상황이 현실화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다는 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한 작가님의 말대로 정비해야하는 제도, 돌봐야하는 약자들도 많지만

개개인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불안과 결핍을 극복해내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불안을 느꼈고,

그래서 비대면의 방법이라도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펜데믹 시대, 한승희 작가가 생각해본 전방위적 담론,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 <다정한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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