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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인간을 말하다

[도서] 예술, 인간을 말하다

전원경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예술, 인간을 말하다>는 예술비평에 몸담고 있는 전원경 작가가 7년에 걸쳐 완성한

예술 시리즈의 3, 마지막 책이다.

예술을 주제에 따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궁금했는데 꽤 두툼한 책이었지만

다 읽고 나니 전작 <예술, 역사를 만들다>, <예술, 도시를 만나다>도 궁금해졌다.

 

요즘 내가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예썰의 전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같은 일반인을 위해 쉽게 예술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인데 메인테마는 그림인 것 같지만

음악과 문학이 빠지지 않고 함께 등장해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딱 예술의 한 주제, 또는 하나의 그림으로 시작해서

시대의 이야기, 다른 예술로 넘어가는 스토리인데 이 책도 그런 방식이어서

최근 보았던 내용이랑 겹치는 부분에서는 신기해하면서 읽었다.

다만 이 책을 한꺼번에 읽으려고 덤비는 것은 조금 말리고 싶다.

17개의 주제로 정리된 예술과 인간의 이야기는 17개의 강의와도 같아서

1~2강 정도 듣고, 거기 언급된 문학을 읽거나 역사를 좀 더 알아보거나, 음악을 같이 들어가면서 천천히 소화해야 그 의미가 잘 전달될 것 같다.

특히 각 장의 끝에 "꼭 들어보세요"라는 친절한 안내가 되어있는데

그 음악들은 미리 해당 부분을 읽으며 배경음악으로 들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대부분의 주제는 인간의 삶과 예술에 관한 것이다.

젊음, 사랑과 결혼, 실연과 이별, 병과 죽음 등 인간사의 큰 이슈가 되는 이벤트 뿐 아니라

노동, 자연, 여행, 신화 등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다양한 주제와 예술을 접목시켜 소개해준다.

각 주제마다 "아 그랬구나!", "맞아 그랬었지!"라는 바보같은 감탄을 하며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몇가지 기억나는 부분을 소개해본다.

 

건강이 좋지 않았고 큰 무대를 두려워했던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서는 리스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쇼팽은 리스트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리스트는 쇼팽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시인의 기질을 발견했다. 쇼팽이 1849년 사망한 후, 최초의 쇼팽 전기를 쓴 이는 리스트였다. 이 전기의 내용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리스트가 자신과는 다른 기질과 성향을 가졌던 또 한 사람의 천재 쇼팽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우정과 라이벌 의식이 낳은 걸작들"에서는 쇼팽과 리스트가 소개된다.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는 쇼팽>이라는 그림을 보면 작은 살롱에서 피아노를 치는 쇼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쇼팽은 큰 무대에서 실패한 이력이 있어 작은 살롱에서 주로 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쇼팽의 곡 자체가 큰 규모의 공간보다는 살롱에 더 어울린다는 평도 있다.

지난주 <예썰의 전당>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초대되어 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도 리스트와 쇼팽의 대조적인 모습들이 언급되었다.

조성진에 이어 임윤찬이 큰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들이 사랑받고 있는데

조성진이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임윤찬이 리스트의 <초절기교>를 준결승 곡으로 로 우승하면서 대중들에게 쇼팽과 리스트의 곡의 특징을 잘 알려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리스트의 <초절기교>는 피아니스트들조차 심호흡을 하고 연주해야하는 곡으로

일반인들은 악보만 봐도 질리는 수준이었다.

쇼팽과 리스트는 동시대를 살았던 라이벌이기도 했지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했던 사이였던 것 같다.

리스트는 충분히 성공하고 후학을 키웠던 사람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쇼팽이 사망한 후 최초의 전기를 쓴 이가 리스트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 카라바조는 드물게 당대의 인정을 받는 화가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문제는 카라바조 본인이 이 명성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카라바조는 일찍 얻은 명성에 취했는지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카라바조의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록은 당시의 법원 판결문이라고 한다. 카라바조의 만행에 질린 집주인이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그를 집에서 쫓아내자 카라바조가 한밤중에 셋집의 창에 돌을 던져 망가뜨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도둑질, 폭행, 기물파손 등 계속 말썽을 일으키던 화가는 1606년 파르네세 근위대장의 아들을 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그는 궐석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고 목에 현상금이 걸린 상태에서 나폴리를 거쳐 몰타섬으로 도망쳤다. 희대의 천재는 이렇게 스스로를 몰락시켰고 다시는 로마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에서는 카라바조가 소개된다.

나에게 카라바조는 어쩐지 좀 섬뜩한 느낌의 그림을 그린 화가로 인지되고 있는데

그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카라바조가 당대의 인정을 받는 화가였지만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은 우리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더 이상 그의 그림을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미술품 구매가 경제적으로 안전한 투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사람들은 인상파의 가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네의 <해돋이-인상> 최초 구매자였던 에르네스트 오슈데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마구 사들였으나 본인의 무분별한 씀씀이로 인해 1877년 파산했다. 그는 소장하고 있던 미술품들을 1878년 경매에 내놓았지만 당시만 해도 인상파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모네의 그림이 150프랑, 르누아르의 작품은 세 점에 157프랑에 낙찰되었고 오슈데의 재정 상태는 더욱 나빠졌을 뿐이다. 오슈데의 아내 알리스는 훗날 모네와 결혼했다.

모네는 경제적 성공에 매우 민감했던 화가였다. 뒤랑-뤼엘에게 생활비를 받으며 그의 라이벌 화랑인 조르주 프티에게 나누어 팔았다. 모네의 연작 시리즈도 어느 정도는 경제적 이유로 시작되었다. 노적가리 연작을 그리던 무렵, 그는 지베르니의 집을 막 산 상황이어서 집의 잔금을 빨리 갚아야 하는 처지였다. 모네는 같은 주제를 여러 장에 나누어 그리면 시장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모네는 이미 1877년 열린 인상파 3회 전시회에 여덟 점의 생 라자르 역 연작을 내놓았던 적이 있었다.

 

"어떤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가?"에서는 예술의 금전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명 화가들의 그림거래는 늘 뉴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이 이슈가 되었는데

금전적 가치가 높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이슈가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파리를 찾는 사람들이 놓치지 않고 들리는 곳,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의 경우

화가이면서도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던 모네의 특별한 케이스를 들려준다.

배고프지 않은 예술가를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지 않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과 문학, 그림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다양한 주제로 알아본 책 <예술, 인간을 말하다>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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