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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예감

[도서] 좋은 예감

정채봉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언제봐도 좋은 정채봉의 글을 간직하고 싶어서 한 권씩 구입하고 있다. <좋은 예감><멀리가는 향기>, <향기 자욱>에 이어서 만난 책인데, 에세이인 덕분에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겨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맑음은 막히지 않는다)3(파도에게 주는 말)는 저자가 그때그때 쓴 에세이를 모은 것이고, 2(흰 구름 가는 길)맑고 향기롭게모임의 지면에 다달이 쓴 편지글이며 4(동화 인생론)는 여성지 우먼센스에 연재했던 것이라고 한다.

 

<좋은 예감>에는 공유하고 싶은 좋은 글이 많아서 독서 이벤트 게시판과 향기나는 글 게시판에도 자주 올렸다. ‘꽃을 던져 넣다어떤 연하장은 향기나는 글 게시판에도 올린 글인데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함께 옮겨본다.

 

 

1부 맑음은 막히지 않는다

결혼은 하였으나 총각 같은 모습으로 이민을 떠났던 친구가 실밥같은 흰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섞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자취 생활을 했던 왕십리역 부근을 약속 장소로 택하였으나 거기도 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눈에 익은 곳이라고는 오직 한 곳인 우리들의 자취방이 있던 골목 입구에 섰다. 신통하게도 우리가 콩나물이며 불쏘시개를 사러 드나들었던 구멍가게만은 주인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있었다. 친구와 나는 그 구멍가게 앞의 파라솔 밑에 앉아 술을 마셨다.

 

어느덧 자정이 된 모양이었다. 아직 순박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보이는 가게 주인은 하품을 하면서 문을 닫아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술만 두어 병 더 내달라고 하고선 그때부터 가로등 불빛 속에서 술잔을 비웠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모른다. '서울역까지 걸어가자'고 우리들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어나서 걸었다. 다리가 아프면 아무 데고 풀썩풀썩 주저앉아서 쉬다가 다시 걷곤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걸어서 남대문 시장께에 이르렀을 땐 새벽 3시쯤이었다.

 

해장국을 먹고 나서다 말고 문득 나의 친구가 말했다.

"우리도 장 보러 가자."

"어디로?"

"꽃 시장에."

"그곳엔 왜?"

"꽃 사러 가는 거지 뭐."

"꽃은 사서 뭐 하게?"

그러자 친구는 답답한 녀석 본다는 듯 나의 어깨를 툭 쳤다.

", 무슨 일이 있어야만 꽃을 사니? 그냥 한 아름씩 사서 안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우리는 즉시 꽃 상가로 들어가서 호주머니를 털어 한 아름씩의 꽃을 샀다. 장미며, 백합이며, 국화를.

 

이번에는 내가 친구한테 제안했다.

"이 꽃을 어디든 가져다주어야 할 게 아냐?"

"허긴 그래."

"우리 왕십리로 다시 가자."

"? 거기에는 왜 가자는 거야?"

"이런 답답한 친구 같으니라구. 거긴 가난했을망정 우리 젊음을 아름답게 보낸 곳이 아니냐."

"그건 인정해. 그런데?"

나는 친구의 어깨를 떠밀면서 말했다.

"그래서가 뭐야. 지금 우리가 자취했던 그 골목으로 찾아가서 집집마다에 꽃다발을 하나씩 던져 주자는 거지."

안경 너머로 친구의 눈이 반짝거렸다.

"생각해 봐. 아침에 눈을 비비며 나오던 골목 안 사람들이 마당에 들어와 있는 난데없는 꽃다발을 보고 놀라워할 것을."

 

그날 새벽 왕십리 그 골목 안 집집마다에, 그리고 우리의 주정에도 끄덕하지 않고 견뎌 준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꽃다발 하나씩을 던져놓은 사건이 아마도 금년도 나의 10대 뉴스에 첫 번째를 장식하게 될 것 같다.

 

- ‘꽃을 던져 넣다중에서

 

책에 담긴 이야기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글은 단연 꽃을 던져 넣다이다. 다운되었을 때 읽으면 바로 충전이 되는 기분이다.

 

꽃다발과 함께 하는 아침은 어리둥절하면서도 기분좋을 것이다. 꽃다발을 받은 이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꽃을 선물한 이를 알아내지 못할 때, 그것을 두고 간 이들이 지을 미소는 얼마나 행복할지. 때때로 엉뚱하지만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금년도 나의 10대 뉴스를 몇 개 장식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특별히 떠오르는 무엇이 없는 것을 보니,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부 흰구름 가는 길

어떤 방송에 나갔더니 진행하시는 분이 "자랑할 것이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있지요." 하고 간단히 대답했더니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무엇입니까?" 하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나는 "친구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방청객 가운데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계계' 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았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누리는 복을 말한다면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라고 고백하겠습니다. 삶의 질을 중요시하고, 작은 기쁨을 크게 안아들이는 가슴을 형성케 하여 주신 분들의 은혜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친구들도 여러 친구들이 있습니다만 근년에 이런 친구가 있어 보고드리려고 합니다. 키가 나보다 목 하나는 더 있을 만큼 크고 술도 그만큼 센 친구지요. 그런저런 일로 만나서 술을 마시면 나는 늘 비몽사몽간에 헤매게 되는데 이 친구는 그저 무릎이나 약간 흔들고 있을 뿐입니다.(중략)

 

지난해 송년 모임에서였습니다. 친구가 수첩 중의 한 장을 끊어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써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쪽을 들여다보니 웬 택시 번호가 줄줄이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심히 무슨 택시 번호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친구가 씩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금년에 너 태워 보낸 택시 번호들이야. 마음이 안 놓여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바깥으로 나오니 그날따라 눈이 오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을 걸었습니다.

 

스님, 이만하면 괜찮은 나의 자랑거리가 아닌가요?

청안(淸安)하셔요.

 

- ‘어떤 연하장중에서

 

택시를 태워 보내는 불안한 마음에 그때마다 택시 번호를 수첩에 적어 둔 친구.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는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스님, 이만하면 괜찮은 나의 자랑거리가 아닌가요?’라는 글에서 미소가 번진다. 좋은 친구들이 선물하는, 아름다운 추억 덕분에 하루를 견디는 힘이 생기는 듯하다.

 

3부 파도에게 주는 말

나는 바쁘기만 한 현대인인 당신에게 고독한 시간을 가질 것을 전하고자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고독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언제부터인가 허둥거리면서 살아오는 동안 고요라는 말조차도 아득해져 있지 않는가.

 

시골 대청마루에 세상 편하게 대()자로 누워서 듣던 한낮의 수탉 울음소리, 벽시계가 정시를 알려 주던 그 데엥 데엥하는 여운……. 이러한 것들을 잃고 산다는 것은 소음으로 우리의 시간이 사살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내가 말하는 소음이란 시끄러운 소리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느끼지 못하는 분주함, 눈 뜨면 옭조이는 걱정거리들, 아니 눈 감아도 떠날 줄 모르는 저 매임이 아우성처럼 들끓고 있으니 소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에 아차 고개가 있다고 들었다. 이 세상을 떠나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에 아차해 보았자 이미 때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 ‘순간이라는 탄환중에서

 

스트레칭이나 운동 후에 대자로 누워 있는 것을 좋아한다. 고요함 속에서 잔잔히 들려오는 새소리도 좋아하고. 오늘에 파묻히지 않게 고독의 시간을 틈틈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4부 동화 인생론 

개구리 아줌마는 휴가철이 되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참 동안 길을 가다보니 불쌍한 거북이 한 마리가 딱딱한 등껍질 아래서 달달 떨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개구리 아줌마는 몰고 가던 꼬마 오토바이를 세우고 소리쳤습니다.

이봐, 거북이. 그러다 내 오토바이 바퀴에 치이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자 거북이가 말했습니다.

개구리 아줌마, 난 지금 휴가를 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도저히 길을 건널 수가 없어요. 이러다간 바닷가에 언제 닿을지 알 수가 없군요! 아줌마가 뒤에 끌고 가는 수레에 내가 들어갈 만한 자리가 없을까요?”

 

개구리 아줌마는 몹시 난처했습니다. 짐수레는 가득 찬 데가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쓸모없는 물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거북이가 말했습니다.

아줌마, 고무보트를 내려놓고 가시지요. 제 등에 아줌마를 태워서 이리저리 바다 위를 구경시켜 드릴게요.”

그러자 개구리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그럼 좋아요. 어서 올라타세요. 그리고 떨어져 나가지 않게 잘 붙어 있어야 해요. 내 오토바이는 바람처럼 달려가니까.”

 

조금 가다 참새 가족을 만난 개구리 아줌마는 이번에는 기타를 내려놓고 그 가족을 태웠습니다. 그러다 달팽이 한 마리도 짐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에는 판다곰이 오토바이를 세웠습니다.

아줌마, 짐 중에 두꺼운 책들을 내려놓으세요. 나는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줌마가 원하기만 하면 내가 아는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대해 아줌마에게 이야기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좋아요. 비좁지만 어서 올라타서 자리를 잡으세요.”

 

그러나 판다곰까지 올라타자 이제는 오토바이가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었어요. 언덕 위를 올라갈 때까지는 모두 함께 오토바이를 뒤에서 밀어야만 했지요. 언덕 꼭대기에 오르니 너나 없이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였습니다. 꼬마 달팽이는 지친 나머지 짐 가방 위로 올라갔습니다.

 

갑자기 달팽이가 소리쳤어요

바다다! 바다가 보인다!”

그러자 겁이 나 있던 거북이도, 자동차라곤 타본 적이 없던 참새 가족도, 길에서 차를 세웠던 판다곰도, 그리고 조금 게으른 달팽이도 걸음을 재촉하며 바닷가 모래사장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그 뒤를 따라다가 말고 개구리 아줌마가 짐수레를 바라보았더니 그 안에는 이제 긴 의자 하나와 짐 가방 몇 개, 그리고 그동안 먹을 식량만 남아 있었습니다.

 

개구리 아줌마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제는 짐수레가 조금 비었네……. 하지만 이번 휴가는 얼마나 멋질까! 거북이하고는 물 위를 산책하고 저녁이 되면 참새들하고 노래를 할 거야……. 판다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세상을 발견하게 될 거고…… 그리고 달팽이하고는…… 그래, 달팽이하고는 그저 천천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 <피서 가는 개구리(프랑스 동화)> 중에서

 

고무보트를 내려놓고 거북이를, 기타를 내려놓고 참새네 가족을, 그리고 달팽이와 판다곰을 두꺼운 책과 바꾸어 싣고 바다를 향해 간 개구리 아줌마. 이들과 함께 바다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신이 난다.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빛나게 해 주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른 나라의 동화를 소개하는 글을 읽고 흥미로워서 관련된 책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 동화인 피서 가는 개구리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개구리를 태울 때, 많이 망설이던 개구리 아줌마가 결국 판다곰까지 태우면서 짐을 확 줄인 일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다음 번에는 오래 전에 읽었던,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를 읽을지 아니면 정채봉 에세이를 읽을지 행복한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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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march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이네요. 아침에 일어나 꽃다발을 발견하는 사람이 나인양 행복해졌어요. 멋진 분들이네요. '피서 가는 개구리'도 그렇구요.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군요. 이루님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오늘도 행복한 시간들 보내세요.^^

    2020.04.27 09:2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이루

      제가 책을 통해 느낀 것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아침에 일어나 꽃다발을 발견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더라고요.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피서 가는 개구리' 이야기에서는 여행의 필수품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march님~ 오늘도 웃음꽃 피는 시간들 보내세요^^

      2020.04.28 08:33
  • 열공생

    이렇게 좋은 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채봉 작가님은 제가 생소한 작가였는데
    이루님이 공유해 주신 덕분에 좋은 작가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

    2020.04.29 12:4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이루

      열공생님께 정채봉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게 되어 무지 기쁩니다~^^
      오래 전에 <내 가슴속 램프>를 읽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행복한 시간들로 자리잡고 있어서, 그의 책을 한 권씩 구입해서 읽고 있어요.

      2020.04.30 09:46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이루님이 이 책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하셨는지 리뷰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되네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우리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하여 삶의 의미와 기운을 북돋워주는 저자의 글들이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져서 아마 이루님의 간직하고 싶은 작가 또는 책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거 샘터를 그래도 곧잘 읽곤 했는데, 이 책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소재를 활용하고 있어 샘터를 좋아하신 분들에게도 잘 읽혀질 것 같습니다.
    리뷰와 날마다의 독서로 좋은 책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루님 ^^

    2020.05.02 10:3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이루

      정채봉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순우리말도 있어서 검색하면서 그 의미도 알아가니 또 다른 기쁨이 있고요.
      샘터에서 나오는 책들은 그 특유의 따뜻함과 정이 있어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더이상 샘터에서 나오는 새 작품들을 만날 수 없다는 슬픔이 크지만 그동안에 나온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으니 그것들을 보면서 마음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책찾사님과 좋은 책을 공유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2020.05.0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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