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것이 '테헤란에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됐다. 그러자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


-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테헤란에서의 죽음'에서

--------------------------------------------------------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고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면서 죽음의 수용소 생활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조금 감이 잡힙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죽음의 신을 만나게 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가 하인의 얘기를 듣고 함께 테헤란으로 떠났어도 죽음의 신을 만났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야기의 내용처럼 자신의 정원에서 죽음의 신을 만날 운명입니다.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은 받아들이고, 선택할 수 있는 경우에는 직관력을 발휘하여 발 빠르게 움직여야겠어요. 그리고는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다짐합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이런 비슷한 우화들을 다른 곳에서 본 것 같아요.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기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기 때문에 다양하게 인용되는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물론 죽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오히려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이 우화처럼 적어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무조건 피하고만 하려고 하니까 허망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2020.10.24 13:3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이루

      '내가 페르시아 사람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저도 그의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죽음의 신이 자신을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때에 내게 익숙한 장소로 갑작스럽게 방문하면, 죽음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왜 그를 위협했는가?"라고 당당하게 대응할 것 같아요.
      죽음은 언제든 내가 올 수 있는 것인데 영원을 살 것처럼 오늘을 보내는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되도록 늦게 맞이하고 싶지만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만날 수 있는 것이니,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고 즐겁게 보내자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2020.10.26 11:05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