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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도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저/장성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씨앗, 우화 그리고 SF. 그것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미래 그리고 희망이다. 희망을 바라기 때문에 현실은 절망적일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 첫 장을 넘겼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절망적인 모습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 책의 장르를 SF로 구분할 수 있을까? 수년 후에 이 책은 일반 소설이 되어 있을 것이고 수 십 년이 지난 뒤에는 고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고작 2 ~ 5 년 후로 설정한 시대의 모습은 지금보다 그저 더 암울해져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터전에서 더 살 수 없음을 자각한 주인공이 자신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며 사람들과 유대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곳까지의 여정을 담은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일반 소설의 장르에 넣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저자의 상상력이 지금 현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93년에 발간된 책이기 때문에 발간된 당시에는 충분히 미래를 얘기하는 책이었을 것이다. 기후 환경, 첨단 과학 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SF는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과감히 비틀고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약탈과 방화 등 범죄가 일상화된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대 기업들은 도시를 만들었고 그곳에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최저의 임금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빚을 지게 만들어 평생 일하게 만든다. 신 노예제도이다. 그것은 최악의 양극화는 물론이거니와 노숙자와 부랑자들을 만들었다. 돈이 있는 자들은 무장을 한 사설 경비가 지키는 공간 안에서 생활했으며, 일자리라도 있는 사람들은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바리케이드를 치고 스스로를 지켰다. 그것마저 불가능한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였다.

  주인공은 '초공감능력'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다. 상대가 느끼는 아픔을 그대로 느끼는 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고통받지 않으려면 상대를 해치지 않거나 한 방에 목숨을 걷어야 한다. 물론 죽음을 이럴 때의 아픔마저 주인공은 느낀다. 주인공에 주어진 이 능력은 공동체의 필요와 타인을 함부로 해칠 수 없는 것에 대한 암시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극한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서로를 돕는 공동체 '지구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주인공이 나아가는 길이다.

  '지구종'의 하느님은 <변화>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이다. 극심하게 양극화된 사회 그로 인한 불만과 증오 그리고 범죄들 그것은 사회가 변해야만 한다. 그것은 사람이 변해야만 한다. 점점 더 심해지는 사회의 모습에서 작가는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변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엔트로피 얘기하는 거야?'라고 혼자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p384에 갑자기 엔트로피가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변화는 신이며, 신은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자신이 가는 변화의 방향이 신이 원하는 변화의 방향일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철학을 굳건히 하며 사람들 마음에 씨앗을 뿌리며 정착지를 선택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작품의 세계관은 지금의 현실이 디스토피아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그 속에서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도울 수 있는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얘기한다. 그 표현에 있어서 작품 속 세계는 지금의 세계보다 조금 더 암울했고, 주인공의 공감능력은 초공감능력으로 변형되어 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할 미래가 예언처럼 적힌 듯하여 우울해지지만, 종점을 향해 갈수록 응원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할 곳을 찾고 그러다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개인주의가 시대의 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피엔스에게 사회는 그저 힘을 얻기 위한 명목 상의 모임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모두 사이코패스가 되어 있지 않을까. 변화의 방향을 조금 더 사람에게 향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의식주 정도는 해결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발전도 좋지만 발전해도 삶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발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내가 가진 걸 모두 맡길 정도의 믿을 만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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