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훌

[도서] 훌

배수아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호불호가 뚜렷하고, 대중보다 평단의 호평을 받는, 다작하는 작가.  배수아. 그녀를 읽었다.

첫 작품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훌을 택했다. 그것 역시 한 서평에 의한 시작이었다. 누군가의 서평에 적힌 배수아를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알려면 훌을 읽어보라는 조언에 의한 것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고, 무작위로 선택하기엔 그녀가 지금까지 써온 작품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 일단 첫 느낌은, 관념적인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김기덕 감독의 '빈집'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 그것과 비슷했다. 그냥 전체적인 커다란 첫 느낌이 그랬다.


훌은 단편집이다. 나는 그중 회색의 시와 훌을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처음 두 단편을 읽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많은 서평들을 봤을 때 그녀는 그다지 재밌는 작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러한 나의 생각은 세 번째 단편을 읽을 때부터 맞아들어가기 시작한다. 정확히 훌이후 작품을 읽고부터, 나는 지루해져가기 시작했다. 단연 표제작이 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보통, 마음에 들지 않는 단편은 건너 뛰기도 하고 아예 책 자체를 내려 놓는데 배수아의  책은 놓기가 싫었다. 그저 '견뎌'보고 싶었다. 문장은 굉장히 긴편으로 두줄을 넘어가는 문장이 다반사이며, 심지어 세줄, 네줄까지 이어지는 문장도 종종 눈에 띌 정도로 그녀는 긴 문장을 구사한다. 문장에 거침이 없어 보인다. 신경숙의 더듬거리는 문장과 정반대이고, 김훈의 문장길이와 정반대이다.


그녀의 언어선택 또한 굉장히 관념적이다. 그녀 말대로 그녀는 뭔가 뚜렷히 나타나는 문장들을 싫어하는 듯 보인다. 또한 그녀의 글에 나타나는 주인공들은 모두 다른듯하지만 비슷한 생각들을 가졌으며, 읽다가는 이것이 주인공의 생각이 아닌 배수아, 자신의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했다. 이를 눈치채기라도 한듯, 그녀의 단편'돼지~'에서는 주인공과 친구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니 이야기를 내가 소설로 만들어도 괜찮겠느냐며 묻는데 상대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뛴다. 그리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픽션일 뿐이라고 말이다.

 

----------------------------------------------------------------------------  

 

회색의 시 ★★★

내용상 흥미라기보다 이야기에 들어난 작가의 생각들이 마음에 들었던 단편. 

 

죄의식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한다. 지나간 시간이 그 내용과 관계없이 결국은 수치이자 죄의식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나이들어 늙게 되면서 비로소 깨우쳤다. 그것의 시작은 행복하다고 느껴보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감정이 죄의식과 연결되는 것은 무언지 모를 자신의 막연한 과실로 인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느 순간들을 그대로 헛되게 흘려보냈다는 과도하게 예민한 책임감에서 기인한다. 혹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그 소심하게 겁먹은 비굴함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으리라는 지레짐작 때문이다. 내가 늙기 전에는 그것이 단지 개인사의 불행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의 계단을 점점 더 많이 내려오면서 죄의식은 그 자체가 곧 과거의 보편적인 거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각기관에서 효소처럼 비밀스럽게 분비되어 배출되는 일 없이 일생동안 조금씩 쌓이는 매우 비선택적인 물질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일생동안 어떤 윤리적인 판단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죄의식 그것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결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둔할 뿐이다. 아무런 외관상의 흠하나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영원한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는 듯하다.

 

훌★★★★★

별을 열개 주어도 아깝지 않은 단편이다. 정말정말 마음에 들었던 소설. 

사실 훌을 읽고 다른 단편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참달랐다. 훌은 뭐랄까, 좀 특별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 배수아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이건 훌과 친구 훌과 동료 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서로의 말 속에서 원하는 부분만을 듣고 원하는 식으로 이해한다. 자신의 의견을 옳다고 주장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답답해 한다. 훌은 나와 동료와 친구의 이야기이자, 나와 나와 나의 이야기다.

 

모두들 그 일에 대해서 "네가 원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 라거나 "사실대로 말했다면 나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설사 네가 정치적인 성향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들이 모두 다 바보천치 선동가는 아닐 테니까. 난 그렇게 생각해." 혹은 "난 말이야. 너를 위해서 변명해 줄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모두들 합창하듯이 똑같은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 난 말이야. 특별한 사람이니까 " 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