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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도서]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르 긘 저/최용준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sf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는 여류소설가 어슐러k 르 귄의 작품을 그의 초기 단편들부터 10년간의 단편을 묶은 바람의 열 두 방향으로 만났다.

작가를 알게된 계기는 이 단편집에 수록된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이 단편소설은 아주 짧지만 강렬하게 독자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인 공리주의를 말할 때 언급되고 방탄소년단의 봄날이란 뮤직비디오에도 오멜라스가 나온다.

르귄의 소설은 가독성이 좋지 않아서 처음엔 진입장벽이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고 다소 어려움이 있어 초반에 읽기를 포기할까 싶어질만큼 짜증이 난적도 있다.

단편이라 흥미로운 작품부터 골라서 읽으니까 그나마 읽기가 수월해졌고 이분이 이야기에 공통으로 흐르는 관심사와 주제의식을 발견하게 되면서 흥미로웠고 공감갔고 어렵지만 그게 또 좋아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17편의 단편에 인간의 그 심오한 정신세계는 끝이 없이 아득한 세계나 탐험해 나가는 그 여정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

<아홉 생명>, <이름의 법칙>,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네편이 인상적이라 이들 중심으로 리뷰를 남긴다.

 

  1.<아홉 생명>은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흥미롭고 경이롭지만 한편 어둠의 그늘이 보여 쓸쓸하다. 아홉생명인 클론이 인간과 다르지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뛰어난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어떤 능력은 기계처럼  아주 유능하나 어느새 인간의 모습, 그 다양성을 닮아가면서 감정들을 배우는데, 낯선이에 대한 두려움,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슬픔까지. 그리고 사랑을 배워가는데 그럼 인간과 클론은 무엇이 다른가. 다르지 않아 그들을 단순하게 클론으로 대할수 없을거 같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가 함께 떠올랐는데 거기서 느낀 슬픔은 결국 인간의 본성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카프는 전등이 내는 조그맣고 노란 불빛에 둘러싸여 그 너머로 두려운 무언가를 보는 것처렴 가만히 앉아 있었다새로운 클론. 카프가 속해 있지 않은 다중 자아였다. 망가진 세트에서 단 하나 남은 조각, 파편, 고독에 익숙지않은 존재, 다른 개인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느지조차 모르는 존재. 이제 카프는 클론 열두명으로 구성된 완전히 폐쇄된 자급자족 집단과 대면해야만한다. 그건 이 가엾은 친구에게 너무나  가혹한 요구였다. 271

 

마틴과 튜가 낯선 클론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더 이상 낯설지 않아졌을 때, 또 다른 낯선 이들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낯선 사람이 낯설다는 두려움도 인간들이 가진 본질인데 클론 역시 똑같은 것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낯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만나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외향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228

 

 

2. <이름의 법칙>에서 언덕아래씨의 이름은 사물 그 자체니까요, 그리고 참이름은 사물의 참된 본질이에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사물을 통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다 들어내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었달까. 다 드러낸 순간은 어찌보면 관계의 끝인 것 같기도하고 끝은 새로운 시작인 것도 같고 그런 생각으로 사유가 깊어졌다.

_“내 참이름은 예바우드고 내 참모습은 이 모습이다.”

 

  3.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에서 새롭게 정착할 행성을 찾아 탐사대원이 파견되어 도착한 곳은 순수 식물계로 이루어진 곳이다. 수천 만년의 침묵을 깬 이들에게 식물은 거대한 공포를 느낀다. 탐사대원은 이에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다. 식물의 입장에서 인간처럼 뿌리가 없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마치 산불이나 허리케인처럼 위험한 존재일 것이라고 탐사대원은 말한다.

 

-빛 또는 죽음을 이용할 뿐 다른 생명을 이용해 살아가는 존재는 없었다. 식물들, 끝도 없는 식물. 인간이 사는 곳에서 찾아온 방문객에게 알려진 종은 하나도 없었다무한한 그림자와 녹색 보랏빛, 자줏빛, 갈색, 붉은빛의 강렬함. 막막한 침묵. 바람만이 나뭇잎과 엽상체 사이를 가르며 움직일 뿐이었다따뜻한 산들바람은 꽃가루와 홀씨를 날랐으며, 그 어떤 발도 걸어본 적이 없고 그 어떤 눈도 본적이 없는 거대한 잔디가 깔린 평야 위, 히스 없는 황야위 꽃없는 숲 위에 달콤한 녹색 먼지를 불어 쌓이게 했다. 따뜻하고 슬픈 세계, 슬프고 평온한 세계. 321

 

인간의 세계를 바라볼 때 그 안이 아니라 밖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객관적으로 볼수 있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인간세계가 식물세계처럼 깊은 숲이지만 아름다운 세계일수 있고, 때로운 두려운 위협의 세계가 됨을 광대한 식물세계의 탐험으로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4.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역설적인 상황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같다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안락한 삶이 어떤 나약한 존재가 희생해야만 누릴수 있는 거라면 우리는 그것에대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까. 오멜라스를 떠나는 일이 그 행위임을 나타내는 것 같은데 과연 얼마나 그런 용기와 결단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는 떠난다는 것의 의미는 혁명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오지 않은 불행이라고 남의 불행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부끄러운 고백일뿐이다. ’'행복은 꼭 필요한 것, 꼭 필요하지않지만 해롭지도 않은 것이 구절에서 오래 머물며 내가 누리는 행복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것들에 대한 행복은 뭘까 생각해본다. 고기를 먹는 것, 자동차를 타는 것, 세탁기를 돌리는 것들이, 누리고 있는 편리가 꼭 행복은 아니라서 그것들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추잡한 행복을 추구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멜라스  사람들의 눈물, 분노, 자비를 베풀려는 시도 그리고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오멜라스 사람에게 김 빠지고 무책임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고상하게 지은 건축물, 심금을 울리는 음악, 심오한 과학기술을 누릴수 있으려면 지하실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아이가 있어야하며 오멜라스 사람들이 그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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